| 확장변수1 | 20220627 |
|---|---|
| 확장변수1 | 박현덕 |
| 확장변수1 | 고후 10:7-8 |
| 확장변수1 | https://www.youtube.com/watch?v=kD0nmzV4dAQ |
41. 겉만 보지 말고 주님이 주신 권세를 선용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고후 10:7-8 찬송 383장. 2022.6.27(월)
바울이 10장부터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보면 화가 단단히 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를 모함하고 비난했던 세력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고 화가 나는 일이었겠지만, 이보다도 그들의 비난과 모함이 고린도교회를 흔드는 것은 물론이고,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선교사역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말 단호하게 이 문제를 대처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우선 바울은 그의 대적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모함하고 비난했는지 밝힙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 10:1).” 이 말씀에서 그는 간접적으로 대적자들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비난했는지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 앞에서는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정작 성도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마치 자기가 대범한 것처럼 군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이렇게도 비난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고후 10:2).” 이 말씀에는 대적자들이 바울을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라고 비난하고 있었다는 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육신에 따라 행한다는 것은 바울이 사역하면서 자기 실리를 챙기고 약속도 잘 안 지키며 영적이지도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신적으로 즉 세속적인 방법으로 싸우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대적자들의 모함과 비난에 대해 단호하게 맞설 것이며, 세속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당신들의 궤변과 교만과 그릇된 생각을 무너뜨려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한다면 기꺼이 그들을 처벌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제발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 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후 10:7).”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판단기준을 지적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사람의 내면을 보고 판단한다면, 누가 참된 사도이고 거짓 사도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사람을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대할 때 꼭 떠오르는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이 자꾸 하나님 뜻을 어기고 악행을 일삼자, 당시 제사장이었던 사무엘에게 내가 택한 새 왕에게 가서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의 아들들을 만납니다. 그는 이새의 장남 엘리압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b).” 이처럼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 다윗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다윗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어떤 면을 보고 왕으로 삼으셨는지 짐작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이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사울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을 내가 감히 어떻게 심판할 수 있느냐는 이유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목숨을 걸 정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의 시가 많이 나오죠. 다윗의 시를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많이 나옵니다. 다윗만큼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람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떠나서 이런 다윗의 마음 중심을 보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반면에 사람은 아무래도 사람의 외형적인 것을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실망하는 차원을 넘어 외형적인 것에 현혹되었다가 오히려 큰 곤혹을 당하기도 하고,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는 일들도 곧잘 일어나곤 하지 않습니까? 바울이 보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사람의 외형적인 것에 취하지 않고 내면을 면밀히 살펴봤다면 누가 거짓 사도이고 참된 사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교회에 침투한 대적자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앙고백의 차원이 아니라, 자기들이야 말로 진정한 사도라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을 목격하거나 따라다녔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아주 중요한 자격조건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고 주장한 것은 바울은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곁에 있거나 따라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을 보거나 따라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에 고린도교회 일부 성도들이 현혹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우선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대적자들이 바울을 비난하며 보인 태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물론 그들의 신앙이 바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자신을 대적한다는 자들에게 너희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라고 정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당신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도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을 비난한 세력은 자신들은 예수님과 같은 유대인 출신이며,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점도 부각시켰던 것 같습니다.
“나는 예수님과 같은 유대인이다. 나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을 보고 따랐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리스도인이다.” 이처럼 외형적인 것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했던 겁니다. 고린도후서 3장을 보면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이 추천서를 가지고 권위를 높이려 했다는 내용도 나오죠. 10장에서 바울을 공격하는 세력도 이들처럼 추천서를 가지고 권위를 높이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역시 외형적인 것을 가지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자신의 외형적 모습으로 교회 안에서 권위를 높이려 했고, 바울의 권위를 깎아내리거나 부정하려고 했던 겁니다.
반면에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가지고 같은 주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깎아 내리거나 부정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점과 다양성을 존중하며 사역하기를 원했습니다. 바로 이런 전제 위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후 10:8).”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우리에게 영적 권세를 주신 분이 누구냐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는 우리의 노력이나 업적으로 얻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게 주어진 권세를 스스로 높이려 하거나 드러내고 자랑할 수가 없는 겁니다. 즉 바울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세력들이 외형적인 것을 가지고 자신의 권세를 내세우며 자랑하는 그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말씀에서 자신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말하는 자랑은 자신의 외형적인 것을 자랑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왜 그에게 사도라고 하는 영적권세를 주셨는지 잘 알았습니다. 성도들을 넘어뜨리고 무너지게 하려는 게 아니라, 세워주고 잘 자라게 해주라고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의 신앙이 잘 자라도록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선용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선 마음의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연약해서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누가 성도들의 신앙을 잘 자라게 하고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려고 하는지 자세히 지켜보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위임을 받은 참된 권위는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참된 권위와 거짓 권위를 구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판단기준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부합하느냐, 그렇지 못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과 권위로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나를 높이고 자랑하고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아야 할까요? 아니면 내게 직분과 권세를 주신 주님만 높이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에 귀하게 쓰여야 할까요? 사실 우리는 이런 문제 앞에서 얼마나 소모적인 싸움과 논쟁을 일삼곤 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싸움과 논쟁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성도들이 낙심하여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와 교단이 분열하고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고,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며, 우리는 오직 주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어떤 권세와 직분을 주셨든 간에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덕을 끼치는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쁨을 드리고 세상에도 유익을 끼치는 복된 인생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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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6 | 예수님의 고난은 대속의 길이며 바른 삶의 모본입니다(눅 22:63-65) | 오덕호 | 2022-06-14 | 48 | |
| 2215 | 하나님은 헌금을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 9:6-15) | 박현덕 | 2022-06-14 | 45 | |
| 2214 | 선한 영향을 끼치는 좋은 교회가 됩시다(고후 9:1-5) | 박현덕 | 2022-06-13 | 43 | |
| 2213 | 경건한 삶을 사십시오(딤후 3:10-12) | 조광윤 | 2022-06-11 | 63 | |
| 2212 | 복음을 거부하게 만드는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세력의 미래(디모데후서 3:6-9) | 조광윤 | 2022-06-10 | 32 | |
| 2211 | 예수님을 부인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눅 22:54-62) | 오덕호 | 2022-06-08 | 62 | |
| 2210 | 대제사장도 사탄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눅 22:47-53) | 오덕호 | 2022-06-07 | 53 | |
| 2209 | 투명한 헌금관리와 선용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에게도 기쁨이 됩니다(고후 8:16-24) | 박현덕 | 2022-06-07 | 29 | |
| 2208 |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바라보며 구제에 힘쓰십시오(고후 8:7-15) | 박현덕 | 2022-06-06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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