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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 10:12-18)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 10:12-18)
2022-07-05 04:49:39
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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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변수1 20220705
확장변수1 박현덕
확장변수1 고후 10:12-18
확장변수1 https://www.youtube.com/watch?v=4-Q0Han9tAU

43.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고후 10:12-18 찬송 312. 2022.7.5()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을 가지고 자신들을 판단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들 기준으로 자기를 자랑하며 칭찬했다는 뜻입니다. 자신들이 잘하고 우월한 점을 자랑하면서 그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던지, 혹은 그렇게 판단되는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유대인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영적인 능력이 강하다는 것도 자랑거리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자화자찬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기준으로 바울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가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고후 10:12).” 즉 나는 당신들처럼 자화자찬하는 부류에 끼어들거나 당신들과 비교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울의 태도는 우리가 교회를 섬기거나 세상을 살아갈 때 아주 중요한 삶의 지혜를 알려줍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교만한 부류와는 함께 하지 않는 게 지혜입니다. 이런 부류와 자신을 비교하며 만족감에 젖어 살거나, 반대로 상대적인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에서는 물론이고 교회에서조차 서로 비교하면서 교만해진다거나 뭔가 자신에게 부족한 게 보이면 열등감에 빠지곤 하는 겁니다. 이렇게 안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비교 대상이 아닌 걸 가지고 쓸데없이 자신과 비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판단기준을 뭐가 돼야 합니까? 오직 주님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분도 주님이시고, 일을 맡기신 분도 주님이시고, 능력을 주신 분도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어떻게 교만해지거나 열등감에 휩싸일 수 있습니까? 바울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행위는 스스로를 교만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성도들도 교만과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의 주장대로 자신들이 참 사도이며 신실한 주님의 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특히 바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불손한 동기였습니다. 대적자들은 자신의 외형적인 것을 자랑하면서 고린도교회에서 그들의 권세를 높이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 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에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바울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에 대해 험담과 비난을 하면서 성도들이 바울을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도록 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순수하게 선교적이거나 신앙적인 관점에서 바울을 비판한 게 아니라, 더 깊은 내면에는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의 영향력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그들이 대신 차지하려는 그릇된 야욕을 보였던 겁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바울이 거짓말쟁이라든지, 능력이 없다든지, 편지 내용은 힘이 있어 보여도 막상 만나보면 별것 아니라든지, 바울은 예수님의 사역을 직접 본 일이 없다는 등 갖은 이유를 대면서 그를 흠잡았던 거죠.

 

그런데 이들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은 고린도지역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본래 고린도 지역에서 선교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약속을 깨고 불법적으로 고린도에 와서 교회를 세웠다는 겁니다. 따라서 바울의 선교는 거짓이고, 그의 거짓된 선교로 성도가 된 사람들도 거짓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가짜라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화가 안 날 수 있습니까?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둘째 치고, 성도들의 신앙까지 의심하고 부정하는 자들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해 아주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눠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후 10:13).” 즉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해주신 범위 안에서 사역했다는 겁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주님께 선택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지역은 이방지역이었고,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먼저 고린도 지역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대적자들은 바울이 개척한 교회에 침투해서 바울과 동역자들의 섬김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통해 복음을 믿게 된 사람들마저 부정하거나, 최소한 자신의 세력보다 못한 존재들로 취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고린도교회에서 큰 갈등의 요인이었던 계파 간의 분쟁으로 다시 회귀하는 게 아니고 뭡니까?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서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며 다투면서 얼마나 소모적인 일에 힘을 뺐습니까? 그런데 대적자들은 이런 행태를 통해 고린도 지역에서 맺은 바울의 선교열매를 부정하고 자신들이 고린도지역에서 선교열매를 맺은 것처럼 주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성도들의 신앙을 구분 지으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너희들이 어떻게 주장하건 고린도 지역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맡겨주신 지역이라고 강조합니다. 절대로 교회의 덕을 해치고, 주어진 권세를 남용해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후 10:14).” 이처럼 그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범위 내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정당하게 고린도 지역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전합니다.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 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게 함이라(고후 10:15-16).” 바울은 이 말씀에서 대적자들의 소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게 아니다는 말씀은 당신들은 나와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헌신하여 세웠던 교회에 어느 날 갑자기 들어와서 마치 자신들이 이 교회를 세운 것처럼 자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남의 터에 침범한 게 아니고 오히려 대적자들이 남의 터에 침범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바울은 대적자들이 어떤 점을 잘못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지적한 다음, 왜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섬기고 있는지 밝힙니다.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게 함이라.” 다시 말해서 바울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고린도교회를 교두보로 삼아서 더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는 선교전략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서 이룬 선교의 열매를 보고 이것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권세를 높이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이미 세워진 고린도교회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라야 합니다. 바른 영적분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하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영혼구원이지, “이 교회를 내가 세웠네, 니가 세웠네. 이것은 내가 힘써서 일군 열매네, 아니네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나 큰일을 많이 했는데, 나를 이렇게 대접할 수 있어?” 이런 게 다 쓸데 없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행하신 일이며, 우리는 주님께서 귀하게 쓰신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어떤 식으로든 선용하셨다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일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시험이 듭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섬긴 사역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자랑하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모든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 교회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다른 교회를 잘 다니는 교인을 설득해서 우리 교회에 등록시키는 것은 남의 영역에 침범해서 도둑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웃교회가 분란이 생겨서 교회가 시험에 들 때 그 교회와 가까이 위치한 교회에서 저 교회 성도들이 이제 우리 교회로 오게 될 것이야라는 마음이 있다면,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그런 그릇된 기대를 가지고 일해서 실제로 교인 수가 늘어나면 그게 하나님의 축복이고 선교의 열매인 겁니까? 전임자의 사역을 그릇된 것으로 함부로 부정하고, 자신의 사역이 진짜인 것처럼 호도하는 게 얼마나 악한 짓입니까?

 

바울은 그의 대적자들의 그릇된 형태를 다음과 같이 꼬집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10:17-18).” 굳이 자랑하고 싶으면 너희를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가짜는 자기가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이고, 진짜는 주님께서 칭찬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자신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게 진짜입니다.

 

바울은 107절에서 너희는 외모만 본다고 안타까워 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공동번역에서는 여러분은 사실을 똑바로 보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사심을 가지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것인지 똑바로 보라는 겁니다. 자기자랑을 하고 있는지, 정말 사심 없이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사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자신에게도 항상 물어봐야 합니다. 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누구나 자기 자랑과 자기 업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이런 대원칙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오직 주님만 기준으로 삼고 주님만 자랑한다. 모든 것은 주님이 맡겨주신 것이므로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나를 칭찬하거나 타인의 칭찬을 기대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칭찬만 바라며 선교에 힘쓴다.” 이런 대원칙을 항상 마음에 되새기며 구원의 길을 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귀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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