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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와 애국의 모범을 보여준 에스더(에 4:4-17)
 
효도와 애국의 모범을 보여준 에스더(에 4:4-17)
2022-06-30 22:01:02
오덕호
조회수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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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변수1 에스더 4:4-17
확장변수1 https://www.youtube.com/watch?v=r32Y9q1OAK8

효도와 애국의 모범을 보여준 에스더

(에 4:4-17; 435장. 2022. 7. 1[금]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


 

7월 첫날을 맞아 월삭새벽기도회로 모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든 성도님들 가정과 주님께서 세우신 서울산정현교회 위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 바랍니다.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소원이 뭐겠습니까? 크게 세 가지일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 나라가 독립을 되찾는 것, 하나님께 마음껏 제사드리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

 

하나님은 이 중 두 가지를 단번에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사가 바벨론을 정복하게 하신 후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해 유다 백성이 고향에 돌아가게 해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전을 재건해서 제사도 드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다만 나라의 독립은 아직 허락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유다 백성에게는 이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유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 중에는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냥 바사에서 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만 해도 바사에서 왕의 술관원으로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바사에서 살고 있던 유다 백성 중에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에스더 2:6-7을 보십시오.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이니까 모르드개의 사촌여동생입니다.

 

여러분은 에스더를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까? 우선, 아름다운 여인이었지요. 에스더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이 왕비 와스디가 왕을 무시했다고 폐위한 후 새 왕비를 뽑을 때 새 왕비로 뽑힌 사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성경도 에스더를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애국자였습니다. 하만이 모든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에스더는 민족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이때 에스더가 한 유명한 말이 있지요? 에스더 4:16입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또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에스더의 아주 중요한 특징은 모르드개의 말에 철저히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에스더 2:20을 보십시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을 때 모르드개의 말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왕비 후보로 나갈 때도 모르드개의 말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심지어 왕후가 된 후에도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해서 목숨을 걸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갑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에 철저히 순종한 것은 정말 중요한 모습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딸 같이 양육한 사람입니다. 에스더의 입장에서는 부모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에 철저히 순종한 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 제5계명을 철저히 지킨 모습입니다.

 

우리는 에스더를 위대한 신앙의 선조로 존경합니다. 에스더의 어떤 모습이 그렇게 훌륭한 신앙의 모습입니까? 목숨을 걸고 민족을 살리려고 나선 모습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고 민족을 사랑한 모습입니다. 정말 훌륭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강하게 권하지 않았어도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아하수에로 왕 앞에 가서 유다 민족을 위해 간구하라고 했을 때 에스더는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모르드개는 이렇게 말을 전합니다. 에스더 4:13-14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너는 왕후니까 이 고난 속에서 혼자 살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것이고 너와 네 집은 멸망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에스더는 이 말을 듣고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하여 목숨을 걸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갑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한 이유가 뭘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원래 모르드개를 공경했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효도의 마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르드개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지금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이 투철한 성도입니다. 에스더가 가만히 있는다고 유다 민족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라도 유다 백성을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명을 다하지 않은 에스더가 오히려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모르드개는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권세와 사랑과 심판과 섭리를 믿었습니다. 에스더에게 이런 믿음이 생기니까 모르드개가 믿음으로 한 말을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더의 가장 위대한 모습인 목숨을 걸고 민족을 구원한 믿음은 사실 에스더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모르드개의 믿음을 배워서 얻은 믿음이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믿음을 배운 것도 훌륭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만일 모르드개가 없었다면 에스더는 이런 위대한 신앙의 선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에스더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모범이 뭘까요? 믿음이 좋은 모르드개에게서 믿음을 배우고 모르드개를 공경하며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사촌오빠지만 부모님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의 모범적인 모습은 믿음 좋은 부모님의 믿음을 배우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순종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이런 효도를 통해 믿음이 자라고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애국자, 신앙의 선조가 된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사에 그냥 남아서 산 사람들도 결코 애국심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나 모르드개나 에스더는 대단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혹은 목숨까지 걸고 자기 민족을 도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기 때문이고 또한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철저한 믿음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족을 위해 헌신하여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모르드개는 자신의 믿음이 그렇게 성숙하여 그런 위대한 삶을 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기 믿음이 그 정도로 성숙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모르드개의 양육을 잘 받고 모르드개를 공경하며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의 모습을 보십시오. 우선 어려서부터 모르드개의 말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좋은 모르드개의 신앙교육을 잘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에스더는 어려서부터 기본적인 신앙교육을 잘 받은 데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모르드개에게 순종하는 가운데 믿음이 더욱 성장하여 위대한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에스더는 왕후 후보가 되었을 때도 모르드개의 말에 따라 자기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가 왜 이렇게 하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에스더가 민족을 말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하만이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할 때 에스더가 유다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방심했다가 오히려 에스더의 역습을 받고 하만이 죽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에스더 입장에서는 자기 민족을 말하지 않는 게 별로 중요한 일 같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이 사소한 일도 철저히 모르드개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태를 역전시켜 민족을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의 순종과 신앙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은 바사의 관습을 깨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면서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에스더가 이때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했기 때문에 에스더는 위대한 신앙의 선조가 되고 유다 민족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에스더가 효도하는 마음으로 모르드개에게 순종했기 때문에만 일어난 게 아닙니다. 에스더도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갈 때 어떻게 준비하고 나아갑니까? 철저히 기도하고 나아갑니다. 그것도 자기만 기도한 게 아닙니다. 수산 궁의 모든 유다 민족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자기와 자기 시녀들도 기도하고 나아갔습니다. 그것도 3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나아갔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순종할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순종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을 구원하고 위대한 신앙의 선조가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우선 우리는 모르드개처럼 자기 스스로 굳건하게 설 수 있는 성도로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장하면 우선 나 자신이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성도의 모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나부터 철저히 예배, 성경공부, 봉사, 선교에 참여하면서 이런 성도로 성장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양육한 것처럼 우리가 양육해야 할 대상을 철저히 보살피며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는 말할 것도 없고 친족 중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도와드려야 합니다. 특히, 한 교회 안에서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은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해드려야 합니다.

 

신앙양육은 복음과 진리로 신앙이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성경지식만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약한 성도가 교회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합니다. 교회 나오기 어려울 때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합니다. 세상 유혹에 빠져서 악을 행하는 성도를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돕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삶의 어려움을 도와준다면 우리도 모르드개 같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은 모르드개처럼 항상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내 가족, 내 회사, 내 교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항상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공평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보호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항상 바르게 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모르드개 같이 성숙한 성도가 되는 길입니다.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성도님들은 에스더의 모범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항상 부족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신앙의 선배나 교회지도자들로부터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을 배울 때는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순종한 것처럼 순종하며 배워야 합니다.

 

신앙의 선배와 교회지도자를 진심으로 공경하며 따르고 순종할 때 에스더처럼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신앙지도자를 공경하는 것은 제5계명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길입니다. 이렇게 신앙지도자를 공경할 때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더 큰 사명을 감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에 참여하는 귀한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를 보면 이런 모습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교회지도자를 지나치게 따르는 것도 잘못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지 목사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의 더 큰 문제는 교회지도자를 지나치게 따르는 게 아니라 아예 무시하고 내 생각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겸손히 신앙지도를 받지 않으면 결코 에스더처럼 신앙이 성장하여 하나님 뜻을 이루어드리는 귀한 성도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에 분쟁과 해를 끼치는 악한 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이 성숙한 성도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배와 교회지도자를 존중하며 말씀을 잘 따라 내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바랍니다.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 뜻을 이루어드리며, 세상에 큰 유익을 끼칠 수 있기 바랍니다. 믿음이 자라면 다른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양육하여 좋은 교회를 이룰 수 있기 바랍니다. 특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헌신하여 세상에 큰 덕을 끼칠 수 있기 바랍니다.

 

이제 합심해서 작은 소리로 기도하시겠습니다.

 

1) 우리가 신앙훈련을 잘 받고 믿음의 선배와 신앙지도자를 공경하며 순종하여 믿음이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해주소서.

2) 다른 성도를 양육하고 도우며 함께 믿음이 자라 좋은 교회를 이루고 나라와 민족,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게 해주소서.

3) 우리교회에 주님 마음에 꼭 드는 선한 종을 담임목사로 보내주소서.

4) 환우들을 치유해주시고, 성도들 가정과 생업에 평강과 복을 주셔서 더 힘차게 주님과 세상을 섬기게 해주소서.

5) 우리나라에 정의를 세워주시고, 코로나를 종식시켜주시고, 북한동포를 구원해주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구원과 축복이 임하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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