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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자와 유혹자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후 11:1-4)
 
중매자와 유혹자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후 11:1-4)
2022-07-06 05:38:51
박현덕
조회수   109
확장변수1 20220706
확장변수1 박현덕
확장변수1 고후 11:1-4
확장변수1 https://www.youtube.com/watch?v=_h1ol7F_RMc

44. 중매자와 유혹자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후 11:1-4 찬송 462. 2022.7.6()

 

고린도후서 말씀을 읽다 보면 바울이 자신에 대해 변호한 내용이 꽤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가 자기 자랑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바울도 이 점을 의식했던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고후 11:1).” 사실 남이 해주는 말도 아니고 자기가 나서서 자기 자랑한다는 것은 좀 민망한 일이지 않습니까? 겸손의 미덕에도 어긋나는 것이고 바울 표현대로라면 어리석은 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자기 자랑을 일삼으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자신들을 서로 비교해 가면서 얼마나 그들이 바울보다 훌륭한 지도자인지 자랑했습니다. 바울의 권위를 깎아내려서 자신의 귄세를 높이려 했던 겁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일인지 조금만 잘 지켜보면 드러날 일인데도, 이런 거짓에 현혹되는 교인들이 있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 입장에서는 부득이 자신을 자랑해서라도 성도들이 거짓에 미혹되는 것을 막아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성도들에게 내 자랑을 좀 하더라도 너그럽게 용납해 달라고 한 겁니다.

 

예를 들어 이단들이 이런 전략에 능통합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사람이 내가 잘 아는 선교사님이 있다. 전도사님이 있다면서 한 번 같이 만나보자고 합니다. 그러면 친분관계 때문에 거절을 못하고 만나봅니다. 상대방은 자신을 선교사나 전도사로 소개하면서 반갑게 인사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너무나 내 형편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꼭 집어서 말을 해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자신에 대한 정보가 그를 소개 시켜준 사람을 통해 이미 그 사람에게 전달된 것도 모르고 있는 거죠. 처음엔 살짝 의심이 들다가도 선교사다. 전도사다하니까 일단 수긍하고 얘기를 듣습니다. 성경공부도 함께 합니다.

 

그러다가 더 깊이 빠져들면 이번에는 교회 목사들을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속한 교회를 다녀야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하죠.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금방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한 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가 싶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거짓에 현혹되어서 신앙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이단의 기본 전략은 비슷합니다. 우리가 진짜이고 당신이 다니는 교회와 가르치는 목회자들은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참여한 여러 봉사활동을 열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에 합류했는지 자랑합니다. 몇몇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교리가 완전무결하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이단만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게 아닙니다. 이단으로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위험스러운 가르침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규모가 큰 교회 목사라든가, 교수라든가, 아주 활발하게 전도 활동을 해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선교사라는 분들이 자신의 경력과 사역과 인기를 자랑삼아 성도들의 신앙을 혼란스럽게 하는 발언들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복음을 오해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2-3).”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중매자로 소개합니다. 중매자는 결혼이 이뤄지도록 중간에서 소개해주는 사람을 말하죠. 그런데 이 본문에서 바울이 전하는 중매자는 결혼정보회사나 개인 중매인을 말하는 게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구약 전통에서는 신부 아버지가 주로 중매자였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약혼하면 결혼할 때까지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순결을 지킬 의무가 있었습니다. 만약 신부가 순결하지 않다는 게 밝혀진다면 신부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중매자라고 비유한 것은 바로 이런 당시 배경을 토대로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을 성도들의 영적 아버지로 보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로는 바울이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냈다고 했을 때 사용한 열심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여기서 열심부지런하다라는 뜻보다 시기나 질투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냥 남자와 여자 사이를 이어주는 중매자가 두 사이의 결혼관계 때문에 시기하거나 질투하지는 않죠. 아버지는 딸이 순결을 잘 지켜서 좋은 남편에게 시집가기를 염원합니다. 딸을 극진히 사랑하기 때문이죠. 사랑에는 당연히 질투와 시기가 따릅니다. 다른 자들이 함부로 내 딸을 헐뜯고 순결을 빼앗아 가는 것은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이처럼 바울이 자신을 중매자로 표현한 데는 그가 고린도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했는지, 또한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 사역을 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가 하는 사역은 무엇입니까? 그의 사역은 고린도 지역 사람들이 신랑인 예수님과 약혼을 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소개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예수님과 결혼하면 어떤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했습니다. 즉 복음을 전한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예수님만 믿으면 죄와 죽음에서 건져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예수님과 약혼을 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고린도교회가 세워지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뭡니까? 아직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과 약혼만 했지, 결혼까지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예수님과의 결혼은 언제 이루어지는 겁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중매자로서 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약혼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신앙의 순결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역자로서 직업적인 소명으로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말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딸처럼 여겼습니다. 아비의 심정으로 성도들이 끝까지 영적 순결을 잃지 않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영적 아버지로서 그가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 때문에 신앙의 순결을 잃었거나 잃을 위기에 처한 성도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들은 바울처럼 예수님과 성도들을 이어주고 끝까지 믿음의 순결을 지키도록 힘쓰는 중매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유혹자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바울은 그들을 하와를 유혹했던 뱀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비판했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죠. 그런데 어느 날 에덴동산에 갑자기 뱀이 나타나 하와를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뱀으로 가장한 사탄은 하와를 능수능란하게 속여 가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도록 유혹하죠. 그래서 결국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야 맙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침범한 거짓 교사들이야 말로 하와를 유혹한 뱀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부턴가 그들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와서 성도들을 하나둘씩 미혹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려 했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니라, 다른 메시지를 전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유혹에 넘어간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예수님과 약혼한 그들이 결국 결혼하지 못하게 될까 봐, 정말 영적 아버지로서 애끓는 심정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강하게 질책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중매자와 유혹자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예수님과 약혼하게 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결혼까지 하도록 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약혼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고사하고, 약혼한 성도들을 유혹해서 주님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들이 존재합니다. 가장 눈에 보이는 세력은 이단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단으로 판명되지는 않았어도 우리를 바른 신앙에서 멀어지도록 유혹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경향이 있죠. 더 좋은 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그 제품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관심을 가집니다. 소위 튀어야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을 기대합니다. 물론 이런 성향이 세상의 진보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구원의 길은 다릅니다. 구원의 길은 진리를 알고 믿는 자가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는 변치 않는 겁니다. 진리가 변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영원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사람의 본성을 따라 새로운 신학이론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고, 또 진리에 어긋나더라도 요즈음 문화에 편승하여 말씀을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학자들나 목회자들이 이런 유혹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바울처럼 딸을 사랑하는 아비의 심정으로 성도들과 예수님을 중매하는 사람으로서 소임을 다해야 합니다. 새롭고 신선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순수한 복음 위에 굳게 서서 주님과 결혼을 방해하는 세력에게 유혹을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인기가 많다거나 재미가 있다거나 새롭다거나 특별하다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정말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 믿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 의지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기 바랍니다. 비록 언변이 부족하고, 별로 내세울 것은 없어 보여도 우리와 예수님 사이에 중매자로서 말씀을 전하며 기도하고 성도와 세상을 섬기는 일에 힘쓰는 목회자와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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