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변수1 | 2022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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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변수1 | 박현덕 |
확장변수1 | 고후 11:7-11 |
확장변수1 | https://www.youtube.com/watch?v=NsdJRwG5rd0 |
46. 사심 없이 사랑으로 섬기십시오
(고후 11:7-11 찬송 450장. 2022.7.8. (금)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이 바르냐, 틀리냐를 판단하는 최고의 기준은 물론 성경입니다. 성경 내용과 다르게 메시지를 전하면 거짓된 사람입니다. 그런 목회자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문제는 성경의 전문가가 아니면 그 목회자가 올바른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분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말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참 어려운 숙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성도님들은 최소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성경 지식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 손에 성경이 쥐어져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겁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말씀의 토대 위에서 바른 목회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회자가 섬기는 태도입니다. 목회자가 사심 없이 사역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 속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사람의 본심은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사심 없이 고린도교회를 섬겼는지 밝힙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조심하리라(고후 11:7-9).”
먼저 바울은 자신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낮추었고,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갈 때 아무런 보수나 대가 없이 섬겼다는 겁니다. 바울은 주로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에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재정지원을 받는 게 고린도 상황에서는 오히려 복음전파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했던 겁니다(고전 9:12).
그런데도 바울의 대적자들은 오히려 이걸 꼬투리 잡아서 바울은 진짜 사도도 아니고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당신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복음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충당한 게 죄가 되느냐고 반문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은 고린도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았지, 다른 교회의 경제적인 지원은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마게도냐지역 교회들이 바울이 고린도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그를 후원했었다는 겁니다. 이런 사실까지 굳이 밝혀야 했던 것은 바울은 자격이 없어서 사례를 받지 못한다는 대적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까지 표현한 것은 마치 자신이 마게도냐지역 교회 성도들의 것을 억지로 빼앗은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표현은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 사도들이 성도들의 돈을 강탈하려는 사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폐를 안 끼치려고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했는지 밝힙니다.
사실 그는 고린도지역에서만 아니라, 그 이전에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자비량 선교를 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나(살전 2:9).” 이처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그들에게 폐를 안 끼치려고 직접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서만 유독 자비량 선교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역자들이 교회에서 재정지원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게 잘못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이 문제를 고린도전서에서 상세히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전 9:3-7).”
이처럼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인정했습니다. 이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 권리를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권위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떤 지장도 주지 않으려고 고린도교회에서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참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게 뭡니까?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사욕을 부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교회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사례를 받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단, 필요한 것 이상으로 받아서 사치를 누리면 안 되는 겁니다. 교회에서 재정지원을 받거나 특수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후원을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헌신한 자들의 생계를 교회와 성도들이 감당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사욕을 부리면 안 됩니다.
그럼 사례를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은 사심이 없다고 봐야 할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역자들과는 다르게 전혀 교회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섬기고 있다는 게 자기 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점을 부각 시켜서 자신이 참된 종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비량으로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단, 그를 모함하는 세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자비량으로 교회를 섬긴 일을 밝혔던 겁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다른 교회 성도들이 그에게 재정지원을 했다는 것도 밝혔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자비량 선교는 자랑도 아니고 자기 업적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비량 선교를 하면서도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즉 그가 추구한 최고의 일은 선교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편안하게 지내는 게 인생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자비량 선교를 하는 사역자들은 이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사례를 받으며 사역하건, 자비량으로 사역하건 사욕에 빠져 있다면 바른 사역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자비량으로 선교한 사실과 또 다른 지역교회 성도들에게 재정지원을 받은 일을 전하면서 얼마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애썼는지 밝힌 다음 이렇게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후 11:10-11).” 즉 바울은 자신이 어떤 심정으로 고린도 지역을 섬기며 교회를 세웠는지 전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다시 말해서 나는 당신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게 바울이 선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선교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신을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삼아주신 은혜가 너무나 컸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러 지역을 다니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성도들을 자신의 목회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을 통해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이 복음을 잘 믿고 복음대로 살아서 구원의 길을 가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조차 내려놓고 힘들게 생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모델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도였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뭡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이처럼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끔찍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사리사욕을 챙기기는커녕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명하신 게 뭡니까? 너희도 나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면서 사욕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 안에 어떤 마음이 있어야 할까요?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심 없이 주님과 이웃을 섬기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섬김의 삶으로 구원의 길을 가며 선한 싸움을 마칠 때 주님께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큰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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