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장변수1 | 20220702 |
|---|---|
| 확장변수1 | 오덕호 |
| 확장변수1 | 누가복음 23:13-25 |
| 확장변수1 | https://www.youtube.com/watch?v=OroE-o_5dac |
306. 예수님은 우리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이루십니다
(눅 23:13-25; 찬송: 143장. 2022. 7. 2[토]. 새벽기도회)
오늘도 아침 첫 시간을 주님께 바치며 새벽기도회로 모인 모든 성도님들 가정과 주님께서 세우신 서울산정현교회 위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후 대제사장 집에서 밤새도록 불법적인 심문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날이 새자 공회 재판을 받으시고 다시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내서 예수님은 헤롯에게도 재판을 받으십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반역죄인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돌려보내자 빌라도는 헤롯도 예수님을 무죄로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아 말합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은 공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고, “관리들”은 유대 백성의 지도자들입니다. “백성”은 일반 백성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유대의 모든 계층을 총망라한 군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백성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잘 따랐습니다. 또한 백성은 숫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반응이 예수님의 재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빌라도는 다시 무리에게 자기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그냥 보낸 것도 예수님을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라고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과 타협을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라고 믿기 때문에 죽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죽이라는 공회의 고발을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빌라도가 말하는 때리는 것은 십자가형 전에 때리는 채찍질보다 약한 채찍질입니다. 빌라도의 태도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나름대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 무리와 타협하려는 모습입니다.
빌라도는 정확히 예수님의 죄를 판정하지도 않고 그냥 무리를 무마하기 위해 예수님을 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엄격히 정의를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타협하려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이런 모습은 상황이 어려워지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죄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형에 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고발한 사람들의 의도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빌라도의 타협안에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형을 요구합니다. 18절은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라고 하는데 헬라어 원문에는 “무리”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냥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누구일까요? 지금 빌라도 앞에 있는 자들은 공회원을 비롯한 유대지도자들과 백성입니다. 그런데 “일제히”라는 말은 “모두 함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백성까지 모두가 이렇게 소리 질렀다는 뜻입니다. 18절은 지금까지 예수님에게 호의적이었던 백성이 이때부터 예수님을 적대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백성의 태도가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누가복음에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을 보면 유대 지도자들이 백성을 그렇게 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20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백성은 유대 지도자들을 따라 그렇게 바뀐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요청하는 것은 당시에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으로 옥에 갇힌 사람입니다. 민란은 폭동이나 반역을 뜻하는 말입니다.
백성이 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했다는 것은 바라바에게 호감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라바는 폭동을 일으켰지만 개인 욕심을 위한 폭동이 아니라 유대의 독립을 위해 폭동을 일으키고 살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라바는 열심당원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 예수님을 잘 따르던 백성이 유대 지도자들의 선동에 쉽게 넘어갔을까요? 그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나라를 구원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로마에 붙잡혀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크게 실망하고 배신감까지 느낀 것입니다.
반면에 바라바는 정치적으로 로마와 대적해서 싸운 독립투사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백성은 쉽게 선동에 빠져 예수님은 죽이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대속의 메시야가 아니라 세상적인 구원자로 생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세상에서 내 뜻을 이루어주지 않으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 지도자들이나 빌라도나 백성이나 모두 자기들의 세상적인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때 나의 세상적인 욕심을 위해 믿으면 안 됩니다. 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나의 사업이 잘되기 위해, 내 자녀가 잘되기 위해 예수님을 믿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진정한 구원과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참된 믿음을 가져야 구원도 받고 세상의 축복까지 받아서 더 크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의 욕심을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구원을 받아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이루어드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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