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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악플을 이렇게 대처했습니다(고후 10:1-6)
 
바울은 악플을 이렇게 대처했습니다(고후 10:1-6)
2022-06-21 05:31:15
박현덕
조회수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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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변수1 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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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변수1 https://www.youtube.com/watch?v=J8a9Chq6od8

40. 바울은 악플을 이렇게 대처했습니다

(고후 10:1-6 찬송 352. 2022.6.21()

 

악플이란 말을 아시죠? “인터넷의 게시판 따위에 올려진 내용에 대해 악의적인 평가를 하여 쓴 댓글을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악플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악플을 쓴 사람은 그냥 몇 글자 적은 건데 괜히 그런다고 하겠지만, 악플을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화살이나 총알이 자기 몸에 박히는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누군가 나를 헐뜯고 비난한다는 말을 들으면 교회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급기야 신앙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헐뜯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영적 살인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사실 바울도 심한 악플에 시달렸던 사역자였습니다. 바울이 전한 내용을 보면 당시 고린도교회 일부 사람들이 그에게 어떤 악플을 달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 10:1).” 먼저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가 나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유순하다가도, 성도들을 멀리 떠나 있으면 강경해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울이 자신을 그렇게 평가한 게 아니라, 바울을 헐뜯었던 일부 사람들이 달았던 악플이었습니다.

 

그럼 바울을 비난한 자들이 어떤 상황을 근거로 이런 비난을 했던 걸까요? 예를 들어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해서 곤란한 일을 당할 때는 변변하게 말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떠나더니, 나중에 보내온 편지 내용에는 담대하게 말했던 상황을 염두에 뒀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겁이 많고 비열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할 말이 있으면 고린도교회에 왔을 때 다 할 것이지, 막상 왔을 때는 양처럼 굴다가, 정작 떠난 다음에 보낸 편지에는 마치 사자처럼 으르렁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 얼마나 겁이 많고 비굴한 사람이냐는 겁니다.

 

본문에는 또 한 가지 바울을 향한 악플이 등장합니다.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고후 10:2).”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을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라고 비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적자들은 바울을 평가하면서 그는 별로 영적이지도 않고, 욕심은 많아서 돈만 밝히고, 약속을 잘 지키지도 않고, 자기 권위만 강조하려는 독단적인 사람이라고 마구 악플을 달았던 겁니다.

 

예를 들어 그가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교회 일을 한 걸 가지고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방언도 잘 안하고 특별한 환상이나 계시를 말하지 않는 것은 영적이지 않아서라고 비방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온다고 해놓고서는 자주 일정을 변경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 교회에서 구제헌금을 모아다가 예루살렘교회로 가져가려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업적과 권위를 높이려는 야망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여간 바울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은 바울이 무엇을 하건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이런 내용을 성도들에게 세뇌시켰습니다.

 

사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도 흔히 보는 현상이 아닙니까? 나와 다른 당에 속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봅니다. 인신공격은 기본이고, 얼마나 강경한 폭언과 혐오스런 표현을 쓰며 서로 공격합니까?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고 무조건 내 편의 말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반지성주의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더 고착화 되고 있는 것 같아서 큰일입니다. 이러면 우리 사회가 조폭문화와 뭐가 다릅니까?

 

반지성주의를 말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왜 일본이 우경화가 되어가고 소수집단에 대한 협오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는지에 관한 일본 지식인들의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반지성주의의 대표가 음모론이라는 것입니다. 음모론의 역사에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대인 음모론이었습니다. 19세기 말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유대인 음모론은 50여 년 후에 60만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반지성주의의 음모론은 결국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폭력사태가 벌어진 후에야 비로소 반지성주의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반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지성주의는 무지한 사람들이 늘어놓는 궤변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인들이 지식을 악용해서 반지성주의적인 주장을 합니다. 사실이 틀렸거나, 자기주장이 왜곡된 게 밝혀져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자기에게 유리하것만 받아들이고 다른 것들은 배척합니다.

 

바울을 대적했던 자들도 이런 반지성주의적 성벽을 견고히 쌓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고린도교회가 직면한 갈등이나 신학적 논쟁에 대해 얼마나 잘 설명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이 서신을 어떤 편견 없이 묵상했다면, 회개하고 바른 신앙의 길을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릇된 신앙지식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었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건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록 소수라도 아직도 반지성주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짓교사나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비굴하고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비뚤어지게 바라보고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군요. 어떻게든 나의 사도직과 사역을 부정하고 짓밟으려고 합니다. 당신들은 내가 멀리 있을 때만 담대한 척하는 비굴한 자라고 비난했었죠?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강경한 태도를 취할 작정입니다. 부디 나중에 당신들을 만났을 때 제가 강경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바울이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자신을 향한 악플이 도를 넘은 것은 물론이고, 이런 악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성도들에게까지 미치는 악영향을 심각하게 고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지성주의의 결과가 결국 폭력사태를 가져오듯이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바울에 대한 그들의 음모론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점차 문제가 확대되어서 고린도교회가 큰 갈등과 대립으로 치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단호하게 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게 얼마나 엄중한 상황인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능력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3-6).”

 

당신들 말처럼 나는 육신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세속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 역시 연약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들과 세속적인 방법으로 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내게는 당신들을 무너뜨릴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나님의 강한 무기를 가지고 싸웁니다. 나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로 잘못된 이론을 무찔러 버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오만과 교만을 쳐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당신들이 어떤 계략과 음모를 꾸며도 다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킬 것입니다. 당신들의 계략에 속았던 성도들은 결국 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는 사도로서 끝까지 저항하는 악한 세력을 징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믿음의 길을 가면서 여러 악플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사역자는 물론이고 성도들도 교회에서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악플에 시달릴 수 있죠. 본문은 특히 교회 안에서 바울에 대한 악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악플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죠. 그것은 세속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흔들리지 말고 올바른 말씀을 가르치고, 행동으로 바른 신앙을 보여줘야 하고, 성도들도 성경에 대해 바른 지식을 쌓고 기도하면서 바른 분별력을 갖추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자꾸 부정적인 비난과 모함을 하는 세력과는 절대 동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요즈음은 사회가 교회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어서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불편한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도라는 정체성이 확고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성도로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고 고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악플에 시험이 들거나 낙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일방적으로 비방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담대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해줘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힘은 세속적인 게 아니라, 어떤 견고한 요새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기도, 성령의 역사,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 복음의 능력 등 하나님의 무기를 들고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실 기독교의 역사는 무수한 악플에 대항했던 역사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때로는 세상적인 지식이나 힘으로 악플에 대항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정작 기독교인들이 육신에 따라 싸우는 어리석을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바른 신앙의 개혁을 이끈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향한 순전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어떤 견고한 성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세상적인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무기로 삼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악한 계략에도 넘어가지 말고 어떤 악플에도 시험이 들지 말고, 우리 스스로도 반지성주의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승리하는 그리스도가 군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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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 투명한 헌금관리와 선용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에게도 기쁨이 됩니다(고후 8:16-24) 박현덕 2022-06-07 29
2208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바라보며 구제에 힘쓰십시오(고후 8:7-15) 박현덕 2022-06-06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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