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장변수1 | 20220614 |
|---|---|
| 확장변수1 | 박현덕 |
| 확장변수1 | 고후 9:6-15 |
| 확장변수1 | https://www.youtube.com/watch?v=yCOrM0qnzjw |
38. 하나님은 헌금을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고후 9:6-15 찬송 50장. 2022.6.14(화)
구제사역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교회가 계속해서 지속되어왔던 섬김의 방법이었습니다. 구제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켜서 불신자들이나, 타종교인들을 전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약하고 어려운 교회가 성장할 수 있게 하고, 교회들이 서로 화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헌금은 이런 구제사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헌금은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헌금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불신자들이야 헌금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성도들마저 헌금에 관한 설교를 듣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품으면 될까요?
교회는 성도들에게 헌금을 바치는 게 아주 중요하고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헌신의 방법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헌금을 드리는 헌신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기여하고 이웃사랑에 참여하는 아주 효과적이고도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길이라고 알려줘야 합니다. 교회에서 헌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교회가 헌금을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합니다. 특히 헌금을 드리는 바른 자세를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또 고린도전서 16장에서도 헌금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드리는 일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고, 이 일을 더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실행하게 하려고 대표단까지 보냈습니다. 얼마만큼 그가 이 일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는 헌금을 드리는 것과 관련해서 이런 말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이처럼 바울은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반법칙을 통해서 헌금을 설명합니다. 잠언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 이 본문은 헌금을 많이 드릴수록 그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더 풍성히 받는다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처럼 단순히 헌금의 액수의 많고 적음으로만 해석해 버리면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고 있는 메시지와 잘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사람들을 바라보신 적이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헌금함에 헌금을 많이 넣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여기서 화폐의 단위인 렙돈은 팔레스타인에서 통용되던 화폐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였습니다. 따라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다는 것은 정말 작은 액수의 헌금을 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3b-44).”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단순히 헌금의 액수를 가지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과부가 그녀의 모든 소유를 다 털어서 생활비를 헌금으로 바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부자들은 분명히 과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액수를 드렸지만, 생활비 전체를 바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했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헌금액수가 아니라, 헌금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의 헌신을 보신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에 이어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여기서 바울이 강조한 것은 헌금을 드리는 성도의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입니다. 헌금을 아까워하거나 마지못해 내지 말고 마음에 우러나는 데로 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도 보면 바울은 헌금의 양이 아니라, 헌금을 드리는 성도의 바른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에서 적게 심는 자는 인색하게 억지로 내는 사람을 말하고, 많이 심는 자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을 가지고 무조건 헌금의 양이 적으면 적은 축복을 받고 헌금의 양이 많으면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헌금을 드리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각자 10만원을 벌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10만원을 모두 자기를 위해 쓸 계획입니다. 반면에 또 한 사람은 성도라서 십일조 만원을 드리고 감사헌금으로 만원을 드려서 총 2만원을 헌금했습니다. 그럼 10만원을 가진 사람과 8만원을 가진 사람의 한 달 생활은 어떨까요? 어느 쪽이 더 여유로울까요? 산술적으로만 생각하면 당연히 10만원이 있는 사람이 더 여유롭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금을 드린 성도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붙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린 성도는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내가 이 정도 헌금을 바쳤으니 하나님이 더 많은 물질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산술적인 기대로 헌금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은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헌금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따라서 성도가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면서 기대하는 것은 그저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지속하도록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이웃을 구제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울은 시편 112편 말씀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후 9:9).” 이처럼 본문은 우리가 정말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더 선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선순환의 구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헌금을 드리면 내 생활이 더 쪼들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벗어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통해서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구제하게 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게 합니다. 그러면 구제헌금을 통해 도움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신뢰하고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즐겁게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의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0-11).”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제헌금을 드리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의의 열매는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은 언제나 부유해서 아낌없이 이웃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이고, 우리가 당신들이 드린 구제헌금을 전달할 때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며 우리도 축복을 받고 다른 이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너무나 귀하고 값진 헌신입니다. 바울은 당신들이 낸 구제헌금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한다는 것과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을 마음을 다해 섬긴다는 증거가 되어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고후 9:13-14).”
이 말씀처럼 헌금이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증거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은 성도들도 그 은혜에 감사하며 구제헌금을 드린 성도와 교회를 위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기도해 줄 것입니다. 이처럼 헌금을 통한 구제는 교회가 영적으로 하나 되게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헌금 드리는 것을 잘 가르치고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또한 성도들도 헌금에 관한 메시지를 들을 때 부정적인 마음을 품지 말고 이게 나에게도 큰 은혜가 되는 것이고, 이웃에게도 큰 은혜를 끼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가 헌금의 중요성을 알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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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8 | 말씀의 능력으로 경건한 삶을 사십시오(딤후 3:13-17) | 조광윤 | 2022-06-17 | 66 | |
| 2217 | 무지와 악한 마음이 메시야를 죽였습니다(눅 22:66-71) | 오덕호 | 2022-06-15 | 51 | |
| 2216 | 예수님의 고난은 대속의 길이며 바른 삶의 모본입니다(눅 22:63-65) | 오덕호 | 2022-06-14 | 48 | |
| 2215 | 하나님은 헌금을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 9:6-15) | 박현덕 | 2022-06-14 | 46 | |
| 2214 | 선한 영향을 끼치는 좋은 교회가 됩시다(고후 9:1-5) | 박현덕 | 2022-06-13 | 43 | |
| 2213 | 경건한 삶을 사십시오(딤후 3:10-12) | 조광윤 | 2022-06-11 | 63 | |
| 2212 | 복음을 거부하게 만드는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세력의 미래(디모데후서 3:6-9) | 조광윤 | 2022-06-10 | 32 | |
| 2211 | 예수님을 부인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눅 22:54-62) | 오덕호 | 2022-06-08 | 62 | |
| 2210 | 대제사장도 사탄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눅 22:47-53) | 오덕호 | 2022-06-07 | 54 | |
| 2209 | 투명한 헌금관리와 선용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에게도 기쁨이 됩니다(고후 8:16-24) | 박현덕 | 2022-06-07 | 30 | |
| 2208 |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바라보며 구제에 힘쓰십시오(고후 8:7-15) | 박현덕 | 2022-06-06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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