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    새벽기도회
[7월 29일]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창 47:13-22)
 
[7월 29일]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창 47:13-22)
2026-07-26 13:49:00
손병호
조회수   6

 

 

13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온 땅이 점점 더 황폐해져 갑니다.

a. 하나님께서 요셉을 부르신 이유는 이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고

b. 자기 가족을 구원해서 언약을 이어가도록 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부르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a. 이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b.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언약을 이어가도록 함에 있습니다.

요셉의 오늘 이야기는 교회의 사명의 모형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개되는 사실만 놓고 봤을 때 어떤 분들은

- (18) 애굽 사람들이 자신의 가축을 나라에 다 내놓고

- (20) 애굽의 온 땅이 왕의 소유가 되고

- (24) 수확의 5분의 1이나 세금으로 바치게 되었고

- (25) 결국 모든 백성이 왕의 종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이 계획적인 독재고 폭정이 아니냐고 반문하시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그 어떤 가치도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 내 가축을 지키면서 굶어 죽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내 땅을 지키면서 굶어 죽겠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 내가 누군가의 종이 되더라도 먹고 살길이 그 길밖에 없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24절에서 언급하는 토지세의 문제도 역사를 알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늘날에야 20%나 토지세를 받는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구약시대는 물론 이후 동양에 등장한 왕조 - 서양은 왕조가 없을 때입니다 들을 봐도

일반적으로 5:5, 많이 관대한 군주나 지도자가 6:4 정도를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기근을 이용해 폭리를 취한 것이 아니라 기근임에도 오히려 더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 준 것입니다.

종자를 받아 농사를 지어 소출의 20%는 바로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나와 가족이 먹습니다.

백성은 지금 종자도 없고 땅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정책이 과연 백성을 착취하는 정책이겠습니까, 백성을 지키는 정책이겠습니까?)

 

(잘 모르니까, 어리석으니까) 그래서 생명은 독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은 독선적으로 보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이러는데, 영원한 생명은 어떻겠습니까?

사람이 죽고 사는 판에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같은

짐짓 배려해 주는듯한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닙니다.

마음대로 선택하게 하는데 그 길이 죽는 길이어도 가만히 보고 계시겠습니까?

생명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는 그래서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 가축이 중요하고 땅이 중요하고 자기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내 인권이 어떻다, 내 자유가 어떻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가치들을 결코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 심판의 날, 구원의 날이 임할 때는

세상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가축도, 땅도,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허둥지둥 다 버리고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정말 안타깝고 무서운 사실은 이거 안 버리면, 이거 안 내려놓으면 죽는 길밖에 없는데

끝까지 고집부리다가 결국 영원한 멸망의 길로 빠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칭얼거리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일일이 설명하거나 설득할 수도 없습니다. 신앙은 이성 이상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모든 백성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줍니다. 선택은 그들의 몫입니다.

 

14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20절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요셉은 바로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는 참으로 어디를 가나 그를 고용하거나 의지하는 사람에게 충실합니다.

보디발이 요셉 덕분에 잘 되었고,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 덕분에 잘 되었고바로까지 요셉 덕분에 잘 되었습니다.

 

요셉은 바로가 꿈으로 계시받은 내용에 따라 충실하게 수행하고 모든 이익이 바로에게 돌아가도록 정책 설계를 합니다.

 

바로는 애굽의 온 땅을 소유하게 되었고 애굽의 모든 백성이 그의 종이 되었고 큰 부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그가 한 일이라고는 요셉을 총리로 세운 것 뿐인데 엄청난 복이 호박 넝쿨째 굴러 들어온 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후대했더니 바로 자신도 복을 받았습니다.

(12:3) 하나님께서 먼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그분의 사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신다는 그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축복의 통로인 줄로 믿습니다.

부름 받은 사람은 자신을 부른 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복의 통로로서 우리는 이웃이 잘되고 복 받도록 해야 합니다.

 

27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절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이 난리 통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주실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 말입니다.

심지어 얼마 전 만해도 요셉도 잃고 베냐민도 죽게 생겼으니 나는 이제 정말 충격을 못 이겨 죽겠구나, 소리 지르던 야곱인데

17년이나 더 삽니다. 참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염려와 슬픔과 근심과 걱정을

하나님께서 오히려 부끄럽게 만드시는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내가 왜 그리 염려했을까, 왜 그리 슬퍼하고 근심 걱정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을 위해 놀라운 역전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야곱은 기근으로부터 보호받으며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꿈과 같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마음을 완전히 놓지 않습니다.

 

29절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절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야곱의 마지막 말은 그가 (46:4) 가나안 땅을 떠날 때 브엘세바에서

반드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겠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고 믿음의 조상들도 그렇고 왜 이렇게 땅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가나안 땅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애굽 땅에는 안 계신,단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땅 집착을 하나님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야곱도 똑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애굽에 살면서 여기 묻힌들 어떠하며 저기 묻힌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에게 있어서 땅은 단순한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문제는 인간입니다.

인간이 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역사 속에서 실제로 만나고 교제하십니다.

성육신의 미리보기 버전인 셈인데땅은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이 현실로 구현되는 구체적인 장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함이 아닙니다. 인간을 위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인간이 땅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통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과 세상의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려는 불신앙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지리적 이동이라기보다는

약속의 자리를 버리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야곱이 자신의 뼈를 애굽이 아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어달라고 부탁하는 이 모습은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향수병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록 내 몸은 지금 풍요로운 애굽에 살고 있지만,

내 영혼의 뿌리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 위에 내려져 있다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세상의 풍요와 안전이라는 애굽에 마음을 빼앗겨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믿음의 자리를 지키고 있느냐?"

 

세상은 지금도 끊임없이 내 가축, 내 땅, 내 권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적 기근으로 죽어가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세상의 가치를 좇는 사람이 아니라,

요셉처럼 생명을 살리는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함이나 현실의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이 맡기신 기도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가 임하는 약속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야곱처럼

이제는 끝났다, 소망이 없다며 슬퍼하고 염려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기억합시다하나님은 그분의 언약 백성을 기근 중에도 고센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부끄럽게 만드시고 놀라운 반전의 역사를 준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처럼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살며

야곱처럼 약속의 자리를 끝까지 지킴으로서 언약의 복, 영원한 복, 생명의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설교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3034 [7월 29일]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창 47:13-22) 손병호 2026-07-26 6
3033 [7월 28일]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6:28-47:12) 손병호 2026-07-26 7
3032 [7월 27일]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창 46:1-27) 손병호 2026-07-26 9
3031 [7월 25일] 회개 후 하나님이 부으시는 공동체 회복의 은혜 (창 45:1-28) 전소리 2026-07-25 12
3030 [7월 24일] 다시 열려지는 소망 (스 10:18-44) 최종운 2026-07-23 15
3029 [7월 23일] 눈물의 기도가 몰고 온 개혁의 파도 (스 10:1-17) 최종운 2026-07-22 18
3028 [7월 22일]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창 44:1-34) 손병호 2026-07-22 16
3027 [7월 21일]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창 43:16-34) 손병호 2026-07-21 23
3026 [7월 20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15) 손병호 2026-07-20 30
3025 [7월 18일] 가슴을 찢는 한 사람만 있으면... (스 9:1-15) 최종운 2026-07-17 24
3024 [7월 17일] 거룩한 예물을 지키는 자의 충성 (스 8:24-36) 최종운 2026-07-16 31
3023 [7월 16일] 세상의 마병보다 강한 하나님의 손 (스 8:15-23) 최종운 2026-07-15 24
3022 [7월 14일] 눈 앞의 마지막 소망을 놓을 때야 보이는 하나님 (창 42:26-38) 전소리 2026-07-15 30
3021 [7월 14일] 고난이라는 자극을 신앙성장의 도구 삼으시는 하나님 (창 42:1-25) 전소리 2026-07-14 32
3020 [7월 13일] 준비된 한 사람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창 41:37-57) 전소리 2026-07-13 40
1 2 3 4 5 6 7 8 9 10 ...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