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애굽을 포함한 온 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애굽에만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아들 열 명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다만 막내 베냐민만은 혹시 재난을 당할까 두려워 집에 남겨둡니다.
형들은 애굽에 이르러 총리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데,
이 총리가 바로 그들이 오래전 노예로 팔아넘긴 동생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요셉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우며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고,
나머지는 곡식을 가지고 돌아가되 반드시 막내 베냐민을 데려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형들은 자기들끼리 우리가 아우에게 행한 일 때문에 이 화가 임했다며
요셉을 팔았던 옛 죄를 떠올리며 괴로워합니다.
요셉은 그 말을 다 알아듣고 돌아서서 웁니다.
그리고 형들 모르게 돈을 다시 자루 속에 넣어 돌려보냅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형들과 아버지 야곱이 눈 앞의 마지막 소망,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붙들고 있는 유일한 삶의 이유를 내려놓아야 하는가? 라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결정을 고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의 연약함이 고백되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여전히 남아있는 원망의 쓴뿌리(26-28)
27-28절을 보면, 한 형제가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열었다가
자루 아귀에 돈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지금 이 상황은 요셉이 베푼 은혜였습니다.
형들의 잘못을 추궁하기 위한 함정이 아니라,
오히려 값을 다시 돌려주는 선한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형들의 첫 반응은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라는 원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형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쓴뿌리를 봅니다.
이들은 아직 자신들의 죄를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내어놓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는 우리가 아우에게 행한 일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자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회개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회개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습관적으로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을 행하시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때로 그 질문 뒤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
회개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형들은 총리의 진짜 정체를 몰랐기에,
자신들이 오해받는 상황 자체가 하나님의 저주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2. 은혜의 손길도 두려움으로 왜곡시키는 죄
35절을 보겠습니다.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인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요셉은 형들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돈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므온을 제외한 형제들에게 충분히 먹고 살 양식까지 채워 보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정탐꾼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던 형들이
오히려 곡식과 돈을 함께 가지고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백한 은혜 앞에서 형들과 아버지 야곱이 느낀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다 두려워하더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화의 전조로 해석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형들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아넘긴 그 죄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죄의 짐을 진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온전히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최악의 경우를 상상합니다.
이것이 죄가 사람을 메마르게 하는 방식입니다.
풍족한 곡식과 돈이 눈앞에 있어도, 마음은 결코 평안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38절에서 그는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며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말합니다.
야곱의 삶 역시 아직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은혜인데,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고 불안해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도 아직 해결되지 못한 죄, 회개하지 못한 짐이 남아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해결되지 못한 죄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원치 않으심을
오늘 말씀을 통해 온전히 깨닫고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3. 마지막 희망 베냐민을 놓지 못하면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야곱에게 베냐민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마지막 자녀요, 요셉을 잃은 후 그의 마음의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그렇기에 야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베냐민만은 내어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38절의 말씀처럼 그는 베냐민을 내려가지 못하게 붙잡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베냐민을 데려와야만 시므온이 풀려나고,
형들의 죄가 드러나고, 마침내 요셉과의 재회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회복과 화해의 길은,
야곱이 가장 붙잡고 싶어 했던 것을 내려놓는 지점에서부터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아직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마지막 소망,
곧 베냐민을 붙들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보다 훨씬 크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눈앞의 마지막 소망을 붙잡고 있는 한,
그는 그 너머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숨겨놓은 인간적인 소망, 베냐민이 있습니다. 내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것,
절대 내려놓을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나의 계획이나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그것을 붙잡은 손을 펴기 전까지는,
그 다음에 예비하신 은혜와 회복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내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속 형들과 야곱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죄의 쓴뿌리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분명한 은혜 앞에서도 두려워하며, 눈앞의 마지막 소망을 놓지 못해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내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그것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손을 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해오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새벽, 내가 붙잡고 놓지 못하는 나의 베냐민이 무엇인지 조용히
주님 앞에 내어놓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손을 펴는 순간,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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