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 즉
어느 나라든 왕은 늘 주체입니다. 메시지를 내는 당사자입니다. 늘 명령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바로는 등장하자마자 주도권을 빼앗깁니다.
그는 말하지 못합니다. 듣고 있어야 합니다.
제 아무리 인간의 왕국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그분의 뜻을 경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펼쳐 보이십니다.
(성경에서 ‘꿈과 해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본문을 보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꿈으로 말씀하신다고 적용하는 것은 큰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꿈으로 말씀하실 수도 있지요. 나귀의 입을 열어서까지도 말씀하시는 분이신데 무엇인들 못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조상들에게는 없었던 성경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실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그리고 정교한, 누적된 통로를 두고
직통 계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계시의 역사적 흐름을 역행하는 어리석음입니다.)
(2-4절)
바로의 첫 번째 꿈입니다.
나일 강에서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가 올라와서 갈대밭에서 풀을 뜯는데
뒤이어서 흉하고 마른 일곱 암소가 올라와서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잡아먹습니다.
암소는 당시 애굽의 신 가운데 하나를 상징합니다. 중요한 신입니다.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에게 생명의 근원이자 힘과 부의 근원이며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애굽 사람인 바로에게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미심장함이었을 것입니다.
4절 마지막에서 창세기의 저자는 바로가 잠을 깨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런 희한한 꿈을 꾸면서도 깨지 않는 강심장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5-7절)
깨었다가 겨우 다시 잠이 든 바로는 다시 두 번째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뒤이어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와서 앞의 일곱 이삭을 먹어버립니다.
풍부한 곡식은 나일 강이 주는 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나일 강으로 인한 풍부한 곡식 때문에 애굽은 기근을 잘 견뎌 낼 수 있었고, 가축들도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꿈은 그 애굽의 풍부함이 사라지는 것을 예언합니다.
애굽을 지탱하던 힘이 뿌리째 뒤흔들리는 불길한 예언이었습니다.
8절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15절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이쯤 되면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꿈의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수많은 상징은 애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애굽의 신, 애굽의 영토, 애굽의 경제입니다.
그것들이 다 쓸려가고 사라집니다. 코흘리개 아이가 봐도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애굽에 재앙이 닥쳐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입니다.
문제는 그 메시지를 누가 목을 내놓고 바로에게 직언(直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재수 없는 소리를 해?’ 자칫 왕의 심기를 거스르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 판입니다.
그러니 수많은 지혜자가 모여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서 대답은 했겠으나 정곡을 찌르지 않았기에
그들의 해석은 바로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바로는 나라를 걱정하는 군주였고
자신과 자신의 왕국을 향한 하늘의 뜻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큰 나라들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지혜롭고 강한 사람들입니다.
애굽이 그랬고, 앗수르가 그랬습니다. 바사가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이 많은 대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꿈 앞에서 똑같이 번민하고 불안해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은 인간 중 최고라는 왕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입니다.
그들의 지식이나 힘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8절) 번민합니다. 불안합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으로 시선을 옮겨와 봅시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나름의 대단한 왕국을 이룬 것 같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막힙니다.
지식은 자랑할 수 있으나 직언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
당신의 백성,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 비밀을 알려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불안한 마음으로 물을 때, 교회는 과연 그 해석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까?
이웃이 불안한 마음으로 다가올 때, 나는 과연 요셉과 같은 위로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까?
나는 작은 요셉이 될 수 있습니까?
말씀을 품고 기도할 때 ‘내가 그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기도로 준비되게 하소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요셉처럼 다듬으시고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12절 그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드디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 냅니다.
그는 요셉을 다소 경멸하는 듯한 투로 말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바로의 종인 친위대장도 아니고 그 친위대장의 종 중에서도 외국인 종입니다.
본토인 애굽 사람들, 그 중에서도 엘리트들이 보았을 때 결코 대단할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왕의 앞에 올릴만한 해결책으로는 너무나 격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반면 그만큼 답이 없는, 갈데까지 간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 처음부터 외국인 노예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럴듯한 이야기부터 나오다가 모든 대답이 다 떨어지자 남은 것을 긁어 모으는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마음먹으시면 일이 이런 식으로도 진행이 되는구나!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14절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바로가 참으로 절박했음을 알 수 있는 다음 장면입니다. 그는 즉시 요셉을 부릅니다.
사람을 보내고 – 부르고 – 나오고 – 수염을 깎고 – 옷을 갈아입고 – 바로 앞에 섭니다.
이 모든 동사가 연속으로 사용됨으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모든 일들이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바로의 심정이 대단히 절박하고 이제 요셉에게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요셉의 인생에서 옷으로 표현되는 그의 부침(浮沈)을 볼 수 있습니다.
- 어렸을 때는 아버지 야곱이 채색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 형들의 시기로 팔려갈 때는 강제로 채색옷을 벗김 당했습니다.
-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벗겼습니다. 수치와 아픔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 이제는 그에게 왕의 이름으로 옷이 입혀집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은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눙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영광과 존귀로 반드시 옷을 입혀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15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바로는 요셉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든 소망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요셉은 바로의 김을 빼는 소리부터 합니다.
16절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신하들이 왕에게 직언할 때는 목숨을 걸고 합니다.
왕이 ‘이 신하는 나의 왕국에 그래도 필요한 사람이다’ 자비를 베풀어야 목숨을 부지하지,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왕의 말에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대담하게 왕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주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해몽을 하는 게 아닙니다. 바로에게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들었을 때는 위대한 신앙고백 같지만 지금 이 자리가
하나님을 하나도 모르는 세상 왕국의 왕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장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소리를 요셉은 태연하게 합니다.
어떻게 이런 담대함이 가능할까요?
(32절)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요셉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정하시고,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을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지만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미 창세기에서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드러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바로와 애굽이 당할 일도 미리 알려주셔서 재앙을 피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그런 제한적인, 유치하고 속 좁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요셉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꿈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요셉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 하나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선택하신 백성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꿈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를 통해 그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나는 가족과 이웃, 교회와 지역과 나라와 민족 가운데
요셉에게 주신 꿈, 하나님의 꿈, 구원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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