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기도 하시고 가져가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온 천하가 식량부족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하나님의 백성인 야곱과 그 열한 아들들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속에서 그들만 풍요를 누리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유일하게 먹을 것을 저장하고 있던 애굽으로
아들들에게 식량을 구해오라는 미션을 줍니다.
잠깐 이전 본문 이야기를 상기해보면, 야곱은 형들이 잘 있는지,
양을 잘 치고 있는지 살피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요셉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뭄과 식량 부족이 일어나자 야곱은 요셉의 형들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아직 야곱과 형들은 요셉의 존재를 모르지만,
그가 총리가 된 애굽 땅으로 가서 요셉에게 식량을 구하러 간다는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에서 요셉과 형들의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살피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
그들을 살리는 지혜자입니다. 반면 형들은 요셉을 인정하지 않고 죽이려 했던 자,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똑같이 30년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환경이 바뀌었지만 어제 살펴봤듯이
끝까지 성실함과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반면 형들은 육신의 아버지 야곱과 30년을 함께했지만
어떠한 영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평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눈에는 여전히 사랑을 주지 못할 어리석고 부족한 아들들이며,
야곱 역시 여전히 라헬의 아들 베냐민만 곁에 두는 편애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 대조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영적 반면교사를 발견합니다.
바로 하나님과 진실되게 동행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신앙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본론 1. 고난을 마주했을 때 드러난 신앙의 민낯 (창 42:1-5)
본문 1절에서 5절은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고 하며 내려가 곡식을 사오라고 명하는 장면입니다.
이 짧은 본문 속에서도 우리는 두 사람의 30년이 어떻게 다르게 열매 맺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릇의 크기란 얼마나 많은 소유나 권력을 담아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을, 그러니까 고난과 결핍의 순간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하고 감당해내느냐의 문제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아 구덩이에 던져지고, 종으로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극한의 자리를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자리에서 원망과 자기 연민으로 무너지지 않고
성실함과 하나님의 임재를 붙드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환경이 줄어들 때마다 오히려 그의 내면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총리의 자리에 올랐을 때도 교만하지 않았고,
훗날 형들을 마주했을 때도 복수가 아닌 분별과 긍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야곱과 그 아들들은 가나안 땅에서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외적으로는 안정되어 보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편애, 형제간의 시기와 다툼,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내면은 자라지 않았습니다.
4절에서 야곱이 베냐민만은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않는 모습은 여전히 계속되는 편애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영적 성장은 환경이 편안한가 험난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얼마나 진실하게 동행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 붙들고 싶은 것을 붙들고 살아온 영적으로 빈약한 삶입니다.
요셉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타인을 품지만,
아버지 야곱, 그리고 요셉의 형들은 동일한 위기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합니다.
어제에 이어지는 오늘 본문속에서도 계속해서 상기하면서 묵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내면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워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것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이 오늘 말씀부터입니다.
본론 2. 형들이 마주한 위기, 요셉의 의도 (창 42:6-25)
본문 6절부터 24절은 형들이 애굽의 총리 요셉 앞에 나아가 엎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요셉이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사흘간 옥에 가두고, 이후 형들이 서로 죄를 고백하며,
요셉이 남몰래 우는 장면까지 이어집니다.
형들은 양식을 받으러 갔지만 정탐꾼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9절).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입니다.
13년이라는 물리적 시차 속에서 요셉은 자신을 외면했던 형들을,
자신이 13년 전에 직면했던 위기의 순간과 동일한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이는 단순한 의심이나 보복의 감정이 아니라,
형들로 하여금 과거 요셉이 겪었던 것과 동일한
두려움과 무력감의 자리에 서보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갇힌다는 것,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은
과거 요셉이 형들로 인해 겪었던 고통과 정확히 겹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형들의 내면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21절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죄책감이 위기 앞에서 비로소 터져 나온 것입니다.
22절에서 르우벤 역시 그때 자신이 경고했음을 상기시키며 자책합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애굽의 관리 앞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이 마주하고 있던 것은 지나간 죄의 기억이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었습니다.
24절에서 요셉은 형들 몰래 통역을 통해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고, 결국 그들을 떠나 돌이켜 웁니다. 그는 형들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을 참된 회개와 하나님 앞으로 이끌기 위해 이 모든 과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통로였습니다.
고난은 이렇게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모든 것이
우리 삶의 수면위로 드러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유익합니다.
모든 고난이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를 발견합니다.
마치 거울앞에서 내 모습이 어떠한지를 발견하듯이 주님이 우리를 보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세상에 찌들어 있는 부분들을 보게 해주시고
영적으로 단정해지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회복할 수 있는 영적 자정의 힘을 주십니다.
결론
이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결핍과 위기의 자리를 통해 사람을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당신 앞으로 이끄십니다.
형들이 애굽까지 내려간 것은 단지 양식을 구하기 위함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여정을 통해 그들의 묵은 죄를 드러내시고 회개의 자리로 부르고 계셨습니다.
위기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실 앞에 세우시는 은혜의 통로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결핍과 시련의 계절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마주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순간에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정당화하기에 급급한 자입니까,
아니면 그 결핍을 통해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죄와 상처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는 자입니까.
요셉의 형들처럼 우리의 그릇 역시 평온할 때가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결핍과 위기를 통해 우리를 세상이 아닌 당신 앞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 회피하지 않고 진실하게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을 키워가는 시작점에 우리가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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