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 바벨론의 안락함을 과감히 내려놓고
예루살렘의 영적 복원을 위해 떠난 1,500여 명의 위대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이 결단한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인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이르렀을 때,
에스라는 행진을 잠시 멈추고 백성들을 점검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사명의 길을 떠나기 전 꼼꼼하게 대열을 살피던
에스라의 눈에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발견됩니다.
이제 지어진 성전에서 다시 예배를 복원하고,
성전의 제사를 회복시켜야 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사역을 맡아야 할 ‘레위 자손’이
단 한 사람도 이 귀환 대열에 참여하지 않은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왜 오지 않았겠습니까?
성전 건물은 이미 58년 전에 스룹바벨을 통해 다 지어졌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레위인들이 해야 할 일은 고생길이 훤한거다.
가면 거친 성전 바닥을 닦고,
무거운 제물을 나르고, 문을 지키는 궂은 육체노동뿐이었습니다.
바벨론 땅에서 편안하게 정착해 살던 레위인들에게 이 일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에스라는 낙심하지 않고
즉시 지혜로운 영적 지도자들을 바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수종 들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강하게 설득합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18절 보십시오.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하시자 굳게 닫혔던 레위인들의 마음이 녹아내려,
마침내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 등 250여 명의 예배 수종자들이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부족했던 레위인들까지 채워졌다.
예배 사역자들까지 다 채워졌으니 이제 기쁘게 출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또다시 백성들의 발걸음을 멈추어 세웁니다.
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제 예루살렘으로 길을 나서기 출발 직전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전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철저히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귀환 공동체 안에는 엄청난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이 대열에는 건장한 군인들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 그리고 평생을 모은 가축과 전 재산이 섞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닥사스다 왕이 성전을 아름답게 하라고
듬뿍 얹어준 엄청난 양의 은과 금, 보물들이 수레마다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수개월의 길은
거친 사막과 광야를 지나야 하는 험난한 여정입니다.
사방에 굶주린 도적 떼들이 눈을 부릅뜨고
이 무방비 상태의 ‘황금 마차’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무기를 든 군대도 없이 길을 나선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습니다.
에스라는 왜 왕에게 군대를 요청하지 않았을까요?
22절에 그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평소에 왕 앞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완벽하게 지키십니다!"라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막상 길을 떠나려니
도적 떼가 무서워서 "왕이시여, 보병과 마병을 좀 붙여주십시오"라고
군대를 구걸하려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같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적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 권세를 의지하기를 부끄러워했던 에스라가 택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백을 잡는 것이 아니라,
아하와 강가에 무릎을 꿇고 더더욱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세상 마병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재산을 지켜주시옵소서!"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상이 제시하는 가장 쉽고 안전해 보이는 길을 눈앞에 두고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길을 거절하는 '거룩한 고집' 말입니다.
인간적인 계산기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위기의 순간,
눈에 보이는 사람의 빽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에스라처럼 스스로 아하와 강가를 찾아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세상의 마병보다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을 삶으로 증명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영적 자존심이다.
에스라와 온 백성이 세상의 보병과 마병이라는 든든한 안전장치를 스스로 거부하고,
오직 여호와의 손만 바라보며 부르짖었을 때 하늘의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오늘의 마지막 절인 23절입니다.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응낙하다? 기꺼이 승낙하시다. 들어주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과 자존심을 걸고 세상의 힘을 거부한 채
오직 주님께만 매달리는 백성들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차가 없으신 하나님의 완벽한 보디가드 손길이 이 여정 위에 임하게 된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갈 때
자꾸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보병과 마병'을 구하느라 분주합니다.
돈이라는 마병, 인맥이라는 보병이 있어야 내 미래가 안전하고,
내 어린 자녀들의 앞길이 평탄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라고 멋지게 고백하다가도,
막상 현실의 위기가 닥치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의 힘을 구걸하느라 영적 자존심을 팽개치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편한 대안을 과감히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옷자락만 붙잡을 때, 하늘의 군대는 비로소 우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생의 중대한 출발선에 서 계십니까?
사방에 도적 떼 같은 위협과 두려움이 가득하여 밤잠을 설치고 계십니까?
세상의 마병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걸음을 멈추고,
오늘 아하와 강가에 장막을 치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약함과 무력함을 인정하며 금식하며 부르짖으십시오.
이번 한 주간, 내 잔머리와 세상의 힘을 내려놓고
오직 주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거룩한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르짖음에 "내가 너를 응낙하노라" 응답하시고,
인생의 험한 사막 길을 평탄한 길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삶으로 경험하는
산정현교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설교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3027 | [7월 21일]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창 43:16-34) | 손병호 | 2026-07-21 | 9 | |
| 3026 | [7월 20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15) | 손병호 | 2026-07-20 | 11 | |
| 3025 | [7월 18일] 가슴을 찢는 한 사람만 있으면... (스 9:1-15) | 최종운 | 2026-07-17 | 16 | |
| 3024 | [7월 17일] 거룩한 예물을 지키는 자의 충성 (스 8:24-36) | 최종운 | 2026-07-16 | 23 | |
| 3023 | [7월 16일] 세상의 마병보다 강한 하나님의 손 (스 8:15-23) | 최종운 | 2026-07-15 | 16 | |
| 3022 | [7월 14일] 눈 앞의 마지막 소망을 놓을 때야 보이는 하나님 (창 42:26-38) | 전소리 | 2026-07-15 | 22 | |
| 3021 | [7월 14일] 고난이라는 자극을 신앙성장의 도구 삼으시는 하나님 (창 42:1-25) | 전소리 | 2026-07-14 | 25 | |
| 3020 | [7월 13일] 준비된 한 사람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창 41:37-57) | 전소리 | 2026-07-13 | 32 | |
| 3019 | [7월 11일] 사명의 길에 올라선 자를 하나님은 잊지않으십니다 (스 8:1-14) | 최종운 | 2026-07-10 | 30 | |
| 3018 | [7월 10일] 세상이 하나님의 사람을 주목할 때 (스 7:11-28) | 최종운 | 2026-07-09 | 41 | |
| 3017 | [7월 9일] 에스라를 준비하시는 하나님 (스 7:1-10) | 최종운 | 2026-07-08 | 36 | |
| 3016 | [7월 8일]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 41:1-36) | 손병호 | 2026-07-08 | 37 | |
| 3015 | [7월 7일]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창 40:1-23) | 손병호 | 2026-07-07 | 34 | |
| 3014 | [7월 6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창 39:1-23) | 손병호 | 2026-07-06 | 40 | |
| 3013 | [7월 4일]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 | 최종운 | 2026-07-04 | 3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