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2절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시간이 계속 지나갑니다.
야곱 가족은 기근이 금방 끝날 것으로 생각했겠지요.
애굽에서 곡식을 가지고 오면 그것을 먹고 있는 기간 동안만 버텨주면 다시 농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판입니다. 지금 시점은 흉년이 시작된지 2년도 되지 않은 때입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계시를 통해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면서 시간만 낭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 시므온은 애굽에 붙잡혀 있고
- 총리는 야곱의 아들들에게 (42:15)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자신을 만날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 (42:37) 장자 르우벤이 짐짓 큰소리를 치지만 이미 그는 야곱에게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물론 형제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비참한 존재감입니다.
( 많은 성경학자는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간통한 이후에 장자로서의 권위를 심각하게 상실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요셉 사건이 벌어질 때도 형제들은 르우벤의 말을 대놓고 무시합니다. 그의 존재감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9절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유다가 나섭니다. 신기한 것은 르우벤이 말할 때는 모두가 무시하다가
유다가 똑같은 말을 (43:8) 할 때는 야곱과 다른 형제들이 듣고 실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맏형인 르우벤은 존재감이 하나도 없고, 둘째인 시므온은 붙잡혀 있고,
셋째인 레위도 이전의 디나 사건 때문에 아직도 야곱의 눈 밖에 난 듯 하고,
( 야곱은 그의 유언에서까지 시므온과 레위에게 뒤끝을 보여줍니다.
디나 사건 때문에 야곱이 그 두 아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두려움을 느꼈는지를 알게 하는 부분입니다.)
다음 서열인 유다가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창세기의 저자는 은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다의 리더십은 르우벤과는 다릅니다.
- 르우벤은 베냐민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자기 아들들의 목숨을 건답니다.
난데없는 자기 아들들의 목숨은 왜 겁니까?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게다가 그가 총리를 상대로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좀 황당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이것이 전형적인 세상의 방식입니다.
나 대신 네가 죽어라, 책임진다고 말은 내가 하고 생색내지만, 피해는 엄한 사람이 봅니다.
- 그러나 유다는 똑같은 조건에서 자신의 목숨을 겁니다. 너 대신 내가 죽겠다, 입니다.
이런 유다의 모범을 멀리 내다보았을 때 유다 지파의 후손,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담보가 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믿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방패막이로 내세울 것 없습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내가 스스로 누군가의 담보가 될 때, 누군가를 위한 희생제물이 될 때,
막혀 있던 통로가 뚫리고 생명의 물길이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11절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야곱이 명령을 내립니다.
대기근의 때에 이런 음식물들이 줄줄이 있었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야곱은 그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성의를 보입니다. 늘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선물을 주어도 총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베냐민이 필요합니다.
13절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드디어 야곱의 입에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진작 이렇게 했다면 가족들이 굶지는 않았을텐데 베냐민 하나 지키려다가 온 가족이 굶주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 베냐민을 미워하게 되었을 다른 가족의 심정은 어떠했겠으며
- ‘너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어’ 졸지에 온 가족의 원수가 되어버린 베냐민의 심정은 얼마나 좌불안석이었겠습니까?
가족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처음부터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몰라서 못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고집이 온 가족을 위기에 몰아넣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참된 생명은 내가 그렇게 꽉 잡고 있던 것을 놓을 때부터 비로소 시작됩니다.
아직 내가 붙들고 있는 베냐민, 그 베냐민 때문에
내 가족이 죽어가고 교회가 죽어가고 학교와 직장이 죽어 가는데도
나는 좌우를 살피지 못하고 그것만 애지중지하고 있는 베냐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부터 100까지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 했던 예전과 다르게
야곱의 신앙은 14절에서 한층 성숙한 고백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만약 예전의 야곱이었다면 11,12절로 끝났을 것입니다. 좋은 선물, 돈까지 덧붙여서 보내는 인간의 최선입니다.
그러나 14절은 그 이상의 영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는 야곱의 고백은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견줄만한 비장하고도 위대한 결단입니다.
(1) 나는 최선을 다합니다.
(2)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며
(3) 나는 그 뜻에 순종합니다.
두 믿음의 선배들의, 얼마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1) 최선을 다하지도 않습니다. 최선이라는 단어 앞에 정말 떳떳하십니까?
(2) 하나님의 손이 아닌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다 해치우려고 달려듭니다.
(3) 결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당연히 인생에서 시원하게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야곱이 참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이었으나 그의 신앙과 견주어 보았을 때
나는 과연 어디까지 와 있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기도가 언급되는 것은 모두 두 번입니다.
첫 번째는 32장에서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면서 에서를 만나기 전에 했던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오늘입니다.
두 기도 모두 조상들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께 자신과 가족들을 구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와 늘 함께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는 특별한 호칭이었습니다.
- (28:3) 이전에 야곱이 에서를 피해 집을 떠날 때 아버지 이삭이 그를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 (35:11) 아들들이 세겜 성 사람들을 잔혹하게 보복하고 야곱이 큰 두려움에 빠졌을 때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
- 오늘 말씀에서 야곱은 자기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기 인생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관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기도의 결과가 반드시 좋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야곱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야만 우리는 참된 풍요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나의 베냐민을 버리고,
내 노력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하게 구합시다.
그렇게 끝 모를 기근과 두려운 총리 같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당당하게 마주하시고,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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