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 에스라 9장을 통해
예루살렘 공동체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있던 참혹한 영적 민낯을 보았습니다.
삶이 편안해지자, 백성들은 사탄의 달콤한 ‘섞임과 동화’의 전략에 말려들어
이방 민족과 통혼하고 우상숭배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 참담한 배신 앞에서 에스라는 백성들을 향해 칼을 빼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자신의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라고
가슴을 찢는 회개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바로 그 에스라 한 사람의 눈물 어린 회개 기도가
예루살렘 땅에 어떤 영적 지진을 일으켰는지 이렇게 증언합니다.
1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 한 사람이 눈물로 씨를 뿌리자,
영적으로 꽁꽁 얼어붙어 죄에 무감각했던 온 백성의 심령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큰 회중이 성전 앞에 모여들어
함께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회개의 대부흥’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라의 눈물의 기도가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영적 개혁과 결단으로 이어지는지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전 앞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을 때,
엘람 자손 중 하나인 ‘스가냐’라는 사람이 백성들을 대표하여
에스라 앞에 나아와 영적 대반전의 포문을 엽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2절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스가냐는 "우리가 범죄 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습니다!"라고 외칩니다.
그 소망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감정적으로 울고 후회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율법대로
"이 모든 이방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합시다"라는
참혹할 정도로 철저한 단절의 결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는 어떤면에서 자책하며 후회하는
눈물의 양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방향전환이다.
죄의 자리에서 돌이키고, 죄악된 자리에서 청산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부흥회나 기도의 자리에 나아와 눈물을 흘립니다.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주님,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난 뒤,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는 내가 짓던 세상과의 달콤한 타협의 끈을
여전히 손에 쥐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짜 회개가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단한 ‘이방 아내와 소생을 내보내는 일’은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피눈물이 나는 일입니다.
가족을 이루었잖아요? 자녀들도 낳았잖아요?
그럼에도 가족의 정을 끊어내야 하는 가슴 찢어지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그들은 영적 전염병처럼 공동체를 갉아먹고 있던
서서히 동화되고, 섞이는 죄악을 끊어내지 않으면
민족 전체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죄의 본질을 내 삶에서 도려내는 ‘삶의 청산’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영적 무너짐은 멈추고 거룩한 재건의 역사가 다시 시작될 수 있었던 줄 믿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결단을 확인한 후,
즉시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통보하여
삼 일 내로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엄한 명령을 내립니다(7-8절).
마침내 9일째 되는 날,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9절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당시는 이스라엘의 우기(雨期)로 사정없이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과 살을 파고드는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모든 백성이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에스라는 당당하게 외칩니다.
"너희는 이제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
그러자 온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11-12절)
그런데 이때, 백성들은 이 거룩한 개혁을 어떻게 시행하나?
얼렁뚱땅 감정에 치우쳐 한 번에 해치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13절과 14절을 보십시오.
13절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14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백성들은 이 개혁이 비가 내리는 길거리에서
하루 이틀 만에 대충 분위기에 휩쓸려 끝낼 일이 아님을 직시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고 정밀한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에스라는 각 가문별로 리더들을 따로 임명하고,
10월 초하룻날에 자리에 앉아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의 명단과 상황을 하나하나 조사하기 시작합니다(16절).
그리하여 그 이듬해 첫째 달 초하룻날까지,
자그마치 ‘석 달’ 동안 전수조사를 진행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말씀의 저울 위에 정밀하게 달아 확인했습니다.
물론 모든지 거룩을 위해 행할 때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15절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몇몇 사람의 반대가 있었지만(15절),
거룩한 개혁의 파도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무너진 거룩함을 재건하는 일 역시 결코 대충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고 뜨겁게 결단했다고 해서
내 삶의 모든 죄의 뿌리가 단번에 뽑혀 나가지 않습니다.
에스라가 석 달 동안 골방에 앉아 백성들의 명단을 정밀하게 조사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내 삶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내 스마트폰 속에, 내 지갑 속에, 내 은밀한 언어 습관과 가치관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과의 ‘섞임의 죄’를
아주 정밀하고 철저하게 매일 점검하며 도려내야 합니다.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영적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수행해 낼 때,
우리 안에 참된 거룩함의 능력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에스라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 건물을 짓는 화려한 성공 스토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9장과 10장은 도리어 그 화려한 성전 안에서
세상과 섞여 썩어가던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한 사람의 눈물의 기도를 통해 참혹하리만큼
철저하게 죄를 끊어내는 ‘영적 개혁’의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성전 재건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심령의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 영혼을 시들게 만드는
세상의 죄악을 부여잡고 눈물 흘리는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십시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를 넘어,
내 삶에 도사린 불순종의 조각들을 과감히 내버리는 구체적인 청산의 결단을 내리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한 손이 붙드시는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우리 산정현교회와 여러분의 가문 위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부흥의 역사를 찬란하게 꽃피우는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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