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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창 44:1-34)
 
[7월 22일]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창 44:1-34)
2026-07-22 00:00:00
손병호
조회수   16

 

 

시간관계상 1절부터 13절까지 봉독하는 것은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에서 앞의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겠습니다.)

 

14절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16절 유다가 말하되

형제들이 빠짐없이 모두 모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넷째인 유다가 이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가 형제들의 선두에 섰고, 그가 총리 앞에서도 대표로 말합니다.

 

요셉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형들이

과거의 모습, 질투하고 증오하고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경쟁하는 모습에서 달라졌을까변화가 되었을까?

함께 나의 부를 나누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도 그 구원을 감사함으로 누릴 사람들인가?입니다.

 

요셉은 마지막 테스트를 시작합니다함정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운명이 걸려있는 테스트입니다.

(44:2) 총리의 은잔을 일부러 베냐민의 짐에다 넣어놓고 그가 도둑인 양 몰아갑니다.

 

과연 과거처럼 난관과 역경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입니다.

그들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전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요셉으로서도 굳이 그들을 가족이라고 데리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

천덕꾸러기인 형제들을 가족이랍시고 갑자기 데리고 오면 가는 곳마다 좌충우돌, 총리인 자신에게도 정치적으로도 부담입니다.

도움이 안 되는 가족은 냉정하게 봐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합니다.

 

형제들은 무엇이 되었든 답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치졸한 처세처럼 잠시 피하거나 입을 다무는 방법은 옵션에 없습니다.

 

무죄하지만 명백한 물증 때문에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돌파구를 찾습니다.

바로 결백을 주장하기보다는 (16)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악을 찾아내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은잔을 훔쳤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동생 요셉을 팔았던 죄를 고백합니다.

 

지난번 자루 속에서 돈이 도로 나왔을 때, 오늘 자루 속에서 은잔이 나왔을 때를 비롯해서

자신들에게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일들을

그들은 모두 요셉을 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징표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난관 앞에서의 훌륭한 돌파구입니다.

 

이전의 형들처럼 책임회피에 눈이 빨개진 사람들이 아니구나,

이들이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요셉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유다의 본격적인 변호는 요셉의 마음을 더욱 엽니다.

 

16절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예전의 형제들은 자기 눈 밖에 나면 누구든 가만두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누구 한 사람만 없애버리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까지도 인신매매하고, 누이동생을 모욕한 세겜 성 사람들을 학살까지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바로 야곱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간사하게 속이고 거꾸로 큰소리치고 협박까지 하는 막장 아들들입니다.

나만 아니면 돼!’ 그냥 세상도 아니고, 지독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 지독하게 살고 있는참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는 총리 앞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목이 매달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베냐민의 죄(라고 여겨지는 부분을)종들의 죄라고 연대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다말 사건이 유다가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생각합니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내 것만 계산하며 살던, 아버지와 다를 것 없던 유다의 삶이었는데

그런 자신 때문에 아들들이 줄줄이 죽고 멀쩡한 며느리까지 죽일 뻔하면서

그가 받았을 충격이 그의 생각과 삶을 많이 바꾸었다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 증거가 오늘 우리가 만나는 유다의 모습끝까지 책임지는 리더십, 위기의 순간에 앞장서는 리더십입니다.

조금의 손해도 볼 수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아버지와 형제와 가족을 지키겠다는 의젓한 모습입니다.

 

(17) 요셉이 오히려 베냐민만 남고 나머지는 고향에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싫다는 말입니다. 엄청난 희생정신입니다.

이전의 형제들 같으면 아이고 맞습니다. 총리님, 우리는 아닙니다. 저놈이 잘못했습니다라는 식으로 안전하게 빠져나가려 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철없는 막내인데 예전에 요셉을 죽인 것처럼 동생 하나 더 죽인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아버지 야곱이 오열할 것이 불 보듯 뻔하지만 그것은 차차 해결하고

일단은 위기만 모면하자는 식의,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인생들입니다.

다 누구에게서 배웠겠습니까? 아버지 야곱에게서 배운 인생 처세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시각은 시작부터 다릅니다.

 

30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전에 형제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한다는 이유로 그를 팔아버립니다.

그러나 오늘은 다릅니다. 유다는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동생을 살려달라고 합니다.

 

이전에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혔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받을 충격이나 심경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무슨 상관이냐는 투입니다. 요셉이 죽었다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다릅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를 위해 유다는 온 힘을 다해 달려듭니다.

심지어 유다는 아버지의 생명과 베냐민의 생명은 하나라는 표현까지 씁니다.

베냐민마저 비명횡사한다면 아버지는 정말 돌아가실지도 모릅니다.

유다는 진정으로 아버지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로서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며 사랑하시는지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자식으로서 존중하는 도리가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다른 지체 또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내 시야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의 마음 하나도 지켜드리지 못하면서 무슨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34절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나만 살아서 고향에 간들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투입니다.

이전의 유다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다의 중보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봅시다.

우리도 주께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자들로써 다른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리 중 많은 이들이 피상적인 사랑 고백을 얼마나 멋지게 하느냐에만 취해있고 구체적인 헌신을 외면합니다.

 

구체적인 헌신은 예나 지금이나 간단합니다. 나를 실제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서워서 자꾸 말을 빙빙 돌립니다.

그러나 오늘 유다가 보여준 모범처럼,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모범처럼 사랑은 직진입니다.

 

요셉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이러한 진실함과 간절함이었습니다.

이들로 하여금 사랑과 생명을 되찾게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닥친 고난이었습니다.

고난은 사랑을 깨지게도 하고 회복하게도 합니다.

고난은 그들의 양심을 일깨워줬고 형제들은 더 이상 외면하지도 않고 정직하게 직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의 죄인임을 인정하고

다른 형제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자신을 내어줄 때

참된 공동체의 회복이 일어나고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 땅에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의 은혜를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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