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    새벽기도회
[3월 4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9:1-24)
 
[3월 4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9:1-24)
2026-03-04 00:00:00
손병호
조회수   8

 

 

7절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19장의 주인공은 어린양의 신부, 교회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신앙의 순결을 지킨 자들입니다.

비슷한 개념은 구약과 신약시대 전반에 흘렀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부부관계로 비유한 선지자들의 글이 있고 (2:14-22)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고후 11:2) 그들을 정결한 처녀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했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혼인 관계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5:25-27)

마치 정혼한 이후에(결혼은 이미 확정되었고 = 승리는 이미 확정되었고)

임박한 결혼 디데이(종말의 날, 심판의 날, 구원의 날) 를 기다리는 신부가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 교회라고 보면 됩니다.

 

8절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어린양의 신부가 입는 옷은 우리가 17장에서 본 음녀의 옷과 대조를 이룹니다.

성경에서 옷은 인간의 영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태초의 인간은 옷이 없었습니다. 동산에 내려오시는 하나님과 말 그대로 벌거벗은 것처럼 순수하게 교제했습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도 그러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류하심과 사랑하심 같이 인간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며 창조했다고도 합니다.

가림도 숨김도 거짓도 없습니다태초의 인간을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랬던 인간이 타락 이후 가죽옷을 입습니다.

그들의 상태가 누군가의 죽음을 딛지 않고는 가릴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채로 타락, 말 그대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이제 가립니다. 숨깁니다그렇게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음을 향해 가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16장에서 대제사장의 옷이 등장합니다. 대 속죄일에 그는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단순하고 깨끗하고 비어 있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그에게는 직함도 없습니다. 장식도 없습니다그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순결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서도 그는 머리에 쓰는 관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씁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이마에 새겼기 때문입니다내가 누구에게 속했냐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죄 용서도 받고, 온전해지고, 회복되고, 구원의 길로 갑니다.

 

이제 계시록까지 와서 신부가 세마포 옷을 입는다고 성경은 다시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이제는 공동체 전체가 거룩의 옷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옷, 정체성의 옷, 구원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거룩은 내가 깨끗해진 상태를 넘어서 하나님께 속해 있는 상태입니다.

단순한 깨끗함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의 소유이냐가 더 핵심입니다.

계시록에서도 반복해서 언급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인 치신 백성, 그의 백성그의 자녀들이라는 표현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어린양신부입니다.

결혼식이 신랑과 신부의 결합을 의미하듯이 어린양의 결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나는 그분의 소유입니다.

 

8절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화려한 옷과 온갖 장신구로 치장한 음녀와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세상에 물들지 않은 거룩함과 성결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나라를 상징하는 바벨론의 부와 사치를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옳은 행실로 자신을 꾸민 정결한 신부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절대 잊지 않아야 할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7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우리가 앞에서 바벨론을 떠나서(18:4) 옳은 행실로 나의 삶을 단장할 때(19:8)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신부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그리고 (7)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1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이제 신랑이 오십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백마는 오직 황제만이 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곧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이런 표현들이 로마인, 특별히 위정자들의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예수는 주라는 선언은 그들의 생사를 가르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희생당하는 양이 아니라 심판하시는 승리자로 오십니다.

그분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라고 하는데 앞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분은 신실하고 진실하신 분이시기에 공정한 심판, 온전한 심판을 집행하실 수 있습니다.

 

12절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심판자 예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를 피할 자는 없습니다그분의 심판은 정확하고 준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머리의 왕관은 이제 실현될 완전한 통치를 가리킵니다.

세상 그 어떤 왕도 해내지 못한 일을 주님께서 완성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모르는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의 인식을 벗어난 영역입니다.

예전에 삼손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온 천사에게 삼손의 아버지가

(그 천사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물어볼 때 천사가 나의 이름은 기묘이다. 라고 말한 구절이 (13:18) 있습니다.

심판자 예수님은 그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17절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18절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큰 잔치에 먹을거리가 있어야 할 텐데 그 먹을거리가 (18) 심판받은 세상 왕, 장군, 장사, , 사람들의 살이라고 합니다.

무시무시합니다심판은 여전히 준엄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17) 새가 시체를 먹는다는 말은 죽어서도 매장되지 못하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는다는 말입니다.

(20) 짐승은 잡힙니다. 거짓 선지자도 잡힙니다. 산 채로 유황 불못에 던져집니다.

 

지금까지 짐승은, 사탄·마귀는 교회의 원수였습니다택하신 성도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산 채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도망치거나 피할 수도 없는 심판입니다.

 

이 싸움의 승리를 우리는 오늘로 당겨와서 가불(假拂)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선지급은 해당 시점이 왔을 때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당겨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선지급은 거룩한 선지급입니다아무리 당겨서 써도 미래에 또 쓸 것이 있는 영원한 선지급입니다.

 

(6:12)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싸움도 아니고 물리적 싸움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본 것처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향한 싸움입니다.

말 탄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그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도 승리할 것이고,

우리도 그 무리에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직장과 캠퍼스, 교회와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은

종말과 심판과 승리와 영광의 그날에 어제보다 하루 더 가까워진 기쁜 날인 줄로 믿습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설교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2910 [3월 6일]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대하 20:1-13) 최종운 2026-03-05 2
2909 [3월 5일] 징계 너머의 회복 (대하 19:1-11) 최종운 2026-03-04 3
2908 [3월 4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9:1-24) 손병호 2026-03-04 8
2907 [3월 3일]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계 18:1-24) 손병호 2026-03-03 13
2906 [3월 2일]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계 17:1-18) 손병호 2026-03-02 13
2905 [2월 28일] 변장해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화살 (대하 18:12-27) 최종운 2026-02-27 12
2904 [2월 27일] 누구와 손을 잡고 계십니까? (대하 18:1-11) 최종운 2026-02-26 15
2903 [2월 26일] 말씀의 강물이 흐르게 하십시요 (대하 17:1-19) 최종운 2026-02-25 13
2902 [2월 25일] 주님이 우리 믿음을 견인하십니다 (계 16:1-21) 전소리 2026-02-25 21
2901 [2월 24일] 믿음으로 고난을 이긴 자들의 노래 (계 15:1-8) 전소리 2026-02-24 21
2900 [2월 23일]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 (계 14:1-20) 전소리 2026-02-23 21
2899 [2월 21일] 마무리가 아름다운 신앙이 진짜 실력입니다. (대하 16:1-14) 최종운 2026-02-20 24
2898 [2월 20일] 승리보다 중요한것은 전심입니다. (대하 15:1-19) 최종운 2026-02-19 26
2897 [2월 19일]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습니다. (대하 14:1-15) 최종운 2026-02-18 26
2896 [2월 18일] 위기의 순간 하늘의 도움을 구하라 (대하 13:13-22) 최종운 2026-02-17 25
1 2 3 4 5 6 7 8 9 10 ...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