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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계 17:1-18)
 
[3월 2일]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계 17:1-18)
2026-03-02 00:00:00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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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계시록에 나오는 개념을 볼 때는

특정 누구이다, 특정 세력이다, 국가이다. 식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록을 편협하고 한정적으로 보게 되며

우리 삶에 적용하기도 힘들어지는 큰 맹점이 생깁니다삶과 연결되지 못하는 앎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음녀(淫女)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공포감이 있지만 냉정하게 한 발 떨어져서 보아야 합니다.

그 단어 자체에 함몰될 것이 아니라 넓게 여유 있게 숲을 보는 마음으로 말씀을 볼 때

오히려 하나의 단어가 주는 풍성한 의미를 음미할 수 있습니다.

 

당장 바로 옆인 19장으로만 가도 음녀와 바로 비교 대조가 가능한 신부가 나옵니다.

음녀가 대단하구나, 이런 의미가 아닐까? 무섭구나할 것이 아니라

글을 차분하게 계속 읽어가면 ‘(음녀는) 신부와 비교가 되는구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초적인 문해력의 문제입니다. 국어 공부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단어 하나를 보고 거기에서 멈춰서 난리를 부리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신부는 소박하고 순결합니다. 음녀는 화려하지만 더럽습니다.

 

4절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음녀는 화려한 복장과 귀금속으로 치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화려함에 빠지지만 음녀의 실체는 음란과 더러움입니다.

왜 음녀를 악하다고 합니까? (6) 하나님의 종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도 음녀의 입술은 꿀같이 달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 끝은 쑥같이 쓰고 칼같이 날카롭다고 (5:3-4)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쾌락은 장차 받게 될 끔찍한 형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14) 어린양과 함께하며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는다는 삶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그러한 유혹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9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1절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15절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계시록이 그 당시의 로마 시대의 사람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을 다시 기억해 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만한, 그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수사를 당연히 썼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 로마가 건국할 때 일곱 언덕을 끼고 시작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그 시절에 그들에게 일곱 산은 곧 로마입니다.

-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는 지중해를 완전히 통일했습니다요한도 대놓고 그 물을 가리켜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지중해는 제국의 호수입니다. 단수 명사 물에 불과합니다.

거대한 지중해를 단순한 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로마는 오히려 위용을 떨칩니다.

 

요한이 갑자기 2,000년을 지나 지구 반대편, 완전히 다른 문명과 다름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배려했을 가능성은 0입니다.

누구는 성령께서 영감을 주시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성령은 그렇게 인간의 맥락을 다 무시하고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역사하는 영이 아닙니다.

그런 식이면 우리는 매주 꾸준히 설교 듣고 차분하게 성경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선택하셨다는 사람들에게서 직통 계시만 들으면 됩니다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815'라는 숫자를 들으면 모두가 광복절을 당연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이 갑자기 나서서

‘8+1+514 여서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한다라고 억지주장을 하면 모두가 실소를 터트릴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와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우리나라 이단의 성경해석을 사도가 듣는다면 천국에서 크게 웃겠지요.

철저하게 성경 당시 시대의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야만 모든 것이 말이 됩니다.

 

10절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일곱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 어떤 이들은 실존했던 로마의 황제들을 여기에 맞추는 사람도 있지만 연대기의 문제부터 잘 맞지를 않습니다.

숫자를 억지로 맞춰 끼우려 하니 파열음만 납니다.

- 세계사의 일곱 대제국에 맞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섯 번째 제국이 (요한 당시의) 로마라면 일곱 번째는 무엇입니까?

로마만큼 영광을 떨친 후대의 비잔틴 제국, 이슬람 제국, 오스만 제국, 몽골 제국,

오늘날의 세계의 강대국들도 있는데 어디에 맞춰야 합니까역시 억지스럽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왕은 세상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입니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힘, 가장 많은 부귀영화, 가장 높은 지성 등을 총동원한 집합체가 바로 왕입니다.

일곱 산을 끼고 시작한 로마 제국 또한 극한 쾌락으로 치달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의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이게 무엇이냐, 이게 누구냐 식으로 지루한 논쟁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10절 반드시 잠깐 머무르리라... 11절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2절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악의 세력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확실한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음녀가 누구인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왕이 누구라고 밝혀지면, 위로가 됩니까?

제국이 어느 나라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면 믿음이 막 생깁니까?

그 나라를 망하게라도 하겠습니까? 그 지도자를 해코지라도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종말을 막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죄악은 꼭 로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혹은 근미래의 특정 인물, 특정 단체, 특정 국가를 지목하면 안 된다는 점도 여기에서 근거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모양을 달리해도 죄의 배후에는 영적 존재인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똑바로 보아야 할 것은 사탄·마귀의 권세이지

특정의 무엇에 함몰되는 것을 오히려 마귀는 더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 그 단체, 그 국가의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화려함으로 치장하고 사람을 홀리는 음녀는 마귀의 존재 양태를 잘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우리가 그럴듯하게 포장된 세상의 논리를 구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음녀처럼 음란하고 더러운 세상 가운데서

거룩하고 순결한 어린양의 신부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5) 그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바벨론이 받게 될 재앙까지 같이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전의 소돔 성이 그러했고, 역사가 계속해서 반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입니다.

 

16절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음녀의 위세가, 세상 나라의 위세가 대단한 것 같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음녀는 결국 그 뒤에 숨어 있는 사탄·마귀 권세의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그 누구와도 권세를 나누지 않습니다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오히려 음녀를 버릴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독재자, 제국, 사상과 철학이 일어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했으나

오히려 교회는 아직도 건재하지만 그들의 비참한 운명은 역사 박물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17절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란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리심 아래 있습니다.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승리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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