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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 (계 14:1-20)
 
[2월 23일]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 (계 14:1-20)
2026-02-23 02:57:28
전소리
조회수   21

지난 13장 말씀을 통해 사탄이 세상 가운데서

얼마나 정교하게 하나님을 흉내 내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용은 성부 하나님을 모방하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죽었다가 

살아난 척 성자 예수님을 모방하며,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며 

성령 하나님을 모방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권력으로부터 인정받은 666명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제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극한의 압박 속에서

성도들은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상황속에서 오늘 14장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요한의 시선이 갑자기 바뀝니다.

짐승이 판치는 세상에서 눈을 들었더니

거기에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144,000명이 있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144,000명은 7장에서 이미 한 번 소개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 12,000명씩 선택되어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로 나왔는데,

14장에서 그들이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이마에 어린 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자들 간

이 대비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성경에서 이마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

정체성을 드러내는 곳입니다.

이마에 무엇이 새겨져 있느냐가 곧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짐승의 이름이 새겨진 자는 짐승에게 속한 자이고,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진 자는 어린 양에게 속한 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압박해도

우리의 이마에 새겨진 이름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 양의 것입니다. 그 이름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2-3절을 보면 하늘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립니다.

폭포 소리처럼 웅장하고, 우레 소리처럼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하프 연주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소리입니다.

이 세 가지 소리가 동시에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폭포와 우레처럼 두렵고 강력하지만,

그 심판 가운데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하프 소리처럼 따뜻하고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144,000명은 새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오직 그들만 배울 수 있는 노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고난과 신실함을 직접 통과한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통과한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만이 아는 감사,

그 사람만이 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4-5절에서 이 144,000명의 세 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첫째,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순결하게 지킨 자들입니다. 

세상의 유혹 앞에서 거룩함을 지켰습니다.

둘째,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간 자들입니다. 

편할 때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도 함께 걸은 자들입니다.

셋째,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진실 되고 정직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이마에는 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가?

오늘 하루 내가 따라가는 분은 누구인가?

 

어린 양을 따른다는 것은 주일 예배 한 시간이 아닙니다.

월요일 아침 직장에서, 화요일 오후 집에서,

그 모든 일상에서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6절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 천사는 모든 나라, 모든 족속, 모든 언어, 

모든 백성에게 '영원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이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 

하나님은 심판을 집행하기 전에 먼저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7절에서 천사의 외침 세 가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라.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 문장이 우리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면, 그분만이 진짜 주인이시고, 

우리의 유일한 경배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창조주이신 하나님 대신,

피조물인 돈, 성공, 사람의 인정을 경배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새벽, 이 천사의 외침이 우리에게 다시 들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8절에서 둘째 천사가 등장하여 선포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빌론이여!"

 

'무너졌도다'가 두 번 반복됩니다.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빌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권력과 체제를 상징합니다.

당시로는 로마 제국이었고,

오늘날에는 하나님 없이 인간의 욕망과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모든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강해 보여도, 아무리 영원할 것 같아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왔습니다.

바빌론이 무너졌고, 페르시아가 무너졌고, 그리스가 무너졌고, 로마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9-11절에서 셋째 천사가 경고합니다.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영원한 고통가운데 있을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이 무겁게 느껴지고 무서울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복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줍니다.

이 두려운 심판을 피할 길을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어린 양의 이름 아래로 피하는 자는 이 진노에서 구원받습니다.

 

12절에서 요한이 이 모든 내용을 선포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장에서 성도들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사고팔지도 못하고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을 봤습니다.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지금 14장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무릎 꿇으면 당장은 살 수 있지만 영원한 형벌을 받고,

믿음을 지키면 당장은 고통받지만 영원한 복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하늘의 소리가 들립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

언뜻 들으면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는 것이 복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죽음이 '주 안에서'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수고를 마치고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신실하게 살았던 삶, 

믿음으로 지켰던 순간들이 그들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았던 하루하루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앞에 상급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4-20절에서 두 가지 추수 장면이 펼쳐집니다.

먼저 14-16절에서 흰 구름 위에 인자 같은 이가 앉아 있습니다.

금 면류관을 쓰고 예리한 낫을 들었습니다.

이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자 같은 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때 

가장 즐겨 사용하신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었다는 천사의 알림에 낫을 휘두르시니 땅이 추수됩니다.

 

이어서 17-20절에서 또 다른 천사가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집니다.

피가 흘러 말의 굴레까지 닿는 엄청난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 역사의 마지막 전투를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그 전투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처참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선택이 아닙니다. 반드시 옵니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도,

짐승의 세력이 아무리 판을 치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추수의 때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그 낫은 예수 그리스도가 휘두르십니다.

 

점점 더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서 있지 못하게 하는 압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시온 산에는 어린 양이 서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믿음을 지킨 자들이 서 있습니다.

새 노래를 부르면서.

 

어린 양을 따르는 삶이 때로는 손해 같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기는 것은 어린 양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을 따르는 우리도 함께 이깁니다.

 

이 믿음을 붙잡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이 새벽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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