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 여호사밧이 말씀으로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고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18장 1절은 또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소식을 전합니다.
1절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여러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는것이 인생의 위기는 언제 찾아오나?
내가 너무 잘 나갈 때, 내 힘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때 우리는 방심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분별력'을 잃어버릴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오늘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람과 손을 잡고,
세상적인 계산으로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이 여호사밧의 '잘못된 선택'을 통해, 다시금 우리가 지켜야 할 영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나눠보고자 합니다.
여호사밧은 유다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 힘을 가지고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사돈을 맺었습니다.
유다를 강하게 만든 것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지금 마치 내가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것처럼 교만해져서
동맹을 맺어서는 안될 아합과 사돈을 맺게 된것이다.
여러분 아합이 누구입니까?
이세벨과 함께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가득 채운 자입니다.
여호사밧은 아마 "동족끼리 화합해야지, 북쪽과 친하게 지내면 국방이 더 튼튼해질 거야"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인생에 주시는 첫 번째 경고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유익이 있다해도 우리의 영적 정체성을 팔면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자존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내 사업을 위해, 혹은 자녀의 결혼을 위해 선택의 기준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관계와 억지로 멍에를 메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여호사밧은 아합의 환대를 받으며 함께 길을 떠나지만,
그것은 사실 사지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와 밥을 먹고, 누구와 비즈니스를 하고, 누구와 깊은 관계를 맺느냐?
이것이 내 신앙의 현주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절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냐 하니 여호사밧이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하는지라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여러분,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어떻게 예배자인 여호사밧이 우상 숭배자인 아합과 '우리는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영적 혼탁' 상태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세상과 섞여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나 나나 다를 게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거룩함'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기쁨의 근원이 달라야 합니다.
오늘 다시금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십시오.
우리는 아합의 친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동맹도 맺었겠다.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자고 제안하자 여호사밧은 덜컥 승낙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4절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소서 하더라
이미 마음은 다 정해놓고, 나중에 하나님께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는 꼴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기도의 모습 아닙니까?
이미 우리가 다 결정해놓고, 다 선택해놓고, 하나님께 이제 책임져달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선택에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도록 처음부터 내어드려야 한다.
진짜 신앙은 '선 기도, 후 결정'입니다.
이 여호사밧의 부탁에 아합이 400명의 선지자를 부르는데
이들은 다 거짓선지자다.
거짓선지자의 특징은? 왕의 입맛에 맞는 소리만 합니다.
듣고 싶은 말을 한다는 말이다.
5절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하니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여러분, 내 귀에 달콤한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내 계획을 정당화해주는 환경을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 일에 여호사밧은 찜찜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아합은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지만 그는 항상 흉한 일만 예언한다고 싫어합니다.
400명이 "성공한다"고 외칠 때,
미가야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준엄한 진실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진짜 좋은 믿음의 동역자는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틀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를 막아서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미가야처럼 불편한 진실을 전하는 말씀이 들려지더라도
그 앞에 귀를 여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수많은 여론과 성공 신화가 여러분을 충동질할 때,
오히려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를 묻는 단 한 사람의 미가야를 곁에 두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사밧은 부귀와 영광에 취해 가장 중요한 '영적 거리두기'에 실패했습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적의 칼날이 아니라 '잘못된 만남'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조용히 하나님 앞에 올려드려 보십시오.
혹시 아합과 같은 세상의 가치관과 너무 깊이 섞여 있지는 않습니까?
미가야의 쓴소리보다 400명의 달콤한 응원을 더 좋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말씀의 잣대를 높이 드십시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는 길에는 단호히 멈춰 서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끝까지 지켜주는 유일한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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