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목회의 선배이지만 영적 아들이나 다름없는(그를 많이 아낀다는 이야기입니다)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권면합니다.
목회서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목회자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어제 우리가 나눈 것처럼 우리는 가정의 목회자, 캠퍼스와 직장의 목회자, 구역의 목회자, 이웃의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양(羊)이 있습니다.
목자의 심정으로 그들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1절) 바울은 마치 <기도학 입문>을 가르치는 느낌으로 디모데에게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2장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기도의 내용은 ‘간구’와 ‘도고’(중보를 말합니다) 그리고 ‘감사’입니다.
기도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치지도자들을 위한 기도 (2) 모든 백성이 구원받기를 위한 기도 (3) 파송 받은 자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선적으로 중보 기도할 때
(2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하고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는데 왜 정치지도자들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라고 합니까?
정치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언제나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는 야만이 남았을 뿐이고 언제나 끔찍한 비극이 뒤따라 왔습니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꼭 정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외에도 참 많이 있습니다. 경제, 문화, 사회 등등 여러 가지 요소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치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거나 결정짓는데 상당한 시일과 에너지가 들어가지만
정치만큼은 순식간에 사람의 삶을 바꾸거나 결정짓는 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사람을 살리는 방향이든 죽이는 방향이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는 이처럼 힘이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살던 시대도 당연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교회의 가장 악랄한 적이었습니다.
바울은 네로를 위해서까지 기도하는 것이
(3절)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직접 원수를 갚아서는 안 됩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고 우리는 오히려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4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게 악당인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천사입니다.
나의 모습도 돌이켜 보십시오. 나도 누군가에게는 악당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악당일 수 없다. 나쁜일 한 적 없다고 확신하는 분들이
가장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인입니다. 확신은 신앙의 가장 강력한 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인간의 기준으로 심판과 징벌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과연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영원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직접 나서서 소리를 높이고 권력을 쟁취하고
적을 양산해내고 심지어 물리력을 행사했을 때 그 역사는 반드시 교회의 흑역사로 이어졌습니다.
원하는 목표를 못 이루었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문이 닫혔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지점이 아닙니까? 구원의 문을 닫으면서까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결국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것이 최고의 왕도입니다.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교회가 (2절) 경건하고 단정하고 고요하고 평안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5절) 기도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예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6절) 기도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예언한 때가 차고, 기약이 이르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마치 기도의 마무리 문구인양 가볍게 생각하지만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면 이 기도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기도의 의미를 알수록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기도가 자기 자랑의 수단이나 공로가 되어버렸다면 은혜를 몰라보고 까부는 것입니다.
기도는 거룩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8절) 분노와 다툼은 모두 욕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남자들이 그 욕망을 내려놓고 거룩한 손을 든다는 것은 꼭 쥐려고 하는 그 욕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을 쥐려는지 손이 으스러져라 주먹을 쥐고 있지만
겨우 펴보면 그 안에는 땀과 꼬질꼬질한 땟국물과 먼지만 있을 뿐입니다.
인생 전체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듭니다. 우리의 계획과 욕심과 욕망을 다 내려놓는다는 말입니다.
(9절) 여자가 단정하게 옷을 입고 소박함과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왜 화려하게 치장합니까? 욕망은 있는데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백만장자 같은 부자들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 이상을 봅시다.
전세계를 움직이는 재벌 총수들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조만장자들을 보십시오.
정작 그들은 평범하게 입고 다닙니다. 그들의 부에 비하면 평범한 차를 타고 다닙니다. 부에 비하면 평범한 집에 삽니다.
굳이 나를 꾸미거나 으스대지 않아도 내 이름 자체가 브랜드여서 주눅들 일이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무슨 꾸밈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가 욕망을 버리고 (10절) 선행으로, 구원의 일로 내 삶을 채운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 가운데 당당하게 세우실 줄로 믿습니다.
11절부터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입니다.
여자들은 순종하고 조용히 배우고 가르치지 말고 남자를 주관하지 말라는 것은 부당한 권면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당시 디모데가 있던 에베소의 배경을 알고 들으셔야 합니다.
당시 에베소는 여인들이 치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과도한 치장과 화려한 옷이 신전의 여사제들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이었지요.
오늘날 아이돌 가수들이 청소년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그림입니다.
수많은 남자의 흠모를 받고 인기도 있지만 난잡하기 그지없는 삶을 동경하는 세상 여성들과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것이 사도의 권면이었습니다.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사제들이 출산하지 않으면 계속 음란한 삶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데
출산하면 신전에서 퇴출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즐기고 사회의 흠모를 추구하고 타인의 시선을 즐기며 음란하게 혼자 지내느니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영적으로는 훨씬 더 성장하고 성화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도 똑같습니다. 내 욕망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음란하게 혼자 지내는 것보다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훨씬 하나님을 만나기 쉬운 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들을 다 무시하고 다짜고짜 한 문장만 가지고
여자는 출산을 해야하다니? 그런 주장을 하는 성경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본인의 무식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슨 결혼이다 출산이다. 이것이 아니라
'욕망으로 달려가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고 교인들을 가르치라'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그것입니다.
(세상의 제사장이며 목회자인 내가) 먼저 그런 삶을 살면서 세상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도를 통해 디모데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그 사명 감당하심으로서 영원한 천국을 경험하고 또 증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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