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데살로니가후서의 시선은 종말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때와 시간은 예수님께서도 선을 그으신 것처럼 ‘인간이 알 바 아닙니다’
이미 이 기준에 걸려 탈락한 이단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성자 예수님도 자신의 재림의 시기는 아버지께 달려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단은 자꾸 때와 시간을 언급합니다. 하지 말라면 안하면 되는데 기를 쓰고 합니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2절)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편지를 쓰고 주장을 하고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이미 주님의 날이 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교회는 큰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두려워하는 교인들을 진정시키고 바로 잡기 위해서
실제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이단이 주님의 오심을 그 자체로 누리고 기쁨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시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마음이 흔들리고 두렵고 미혹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하면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신다는데, 그게 중요하지, 언제 오시는 것이 대체 무엇이 중요한가?
어차피 오늘도 주와 동행, 내일도 주와 동행, 심지어 내일 주님이 정말 오시더라도
어제와 오늘과 내일 주와 동행이라는 내 삶은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무쌍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기준이 조석(朝夕)으로 변한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그래서 평안입니다.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들은 본인 마음도 불안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가만히 보면
무시무시해 보이는 껍질 안에 너무나 두려워하는 자아가 있습니다.
(끔찍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그들 각자의 아픈 과거와 상처가 있습니다.
과거 없이, 상처 없이 갑자기 괴물이 되는 경우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면 그 자신도 이미 미혹의 영에게 넘어가 있습니다.
(3절)
사람을 흔들고 두렵게 하고 미혹하는 영의 뒤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입니다.
불법(不法)이라는 개념은 합법, 즉 법이 있어야지만 성립이 가능한 개념입니다.
오지(奧地)에 도로교통법 자체가 없는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온통 산이고 숲이고 강일 뿐입니다. 미발견된 원시부족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 곳에서 차선 위반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까?
도로교통법이 없는데 법 위반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나라라면 만에 하나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도 전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애초에 법이 없으니까요. 불법이 있다는 말은 법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안심입니다.
우리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인 사탄을 보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법자인 사탄을 보면서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더 선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질서인 그를 보면서 질서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멸망과 죽음의 아들인 그를 보면서 구원과 참 생명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4절)
그는 짐짓 하나님인척 하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일 뿐입니다.
자기를 높입니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똑같습니까?
돈은 자신이 하나님인양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합니다.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돈을 써서 높아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명예도 부귀도 권세도 세상의 수많은 영화들이
나만 붙잡으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외칩니다. 나를 붙잡고 높아지라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개인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집단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철학과 사상과 과학이 하나님 행세를 했습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의 뿌리까지 파 들어가봤을 때의 본질은
결국 참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품이 아닙니다.
진품을 질투하는 모조품일 뿐입니다.
(8절)
그러나 그의 운명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끝납니다.
예수께서는 입의 기운으로, 하나님의 숨결로, 성령의 바람으로
불법의 모든 역사를 무너뜨리시고 나타나실 것입니다.
(11절)
종말 이전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라시면서
왜 사탄이 마음대로 설치도록 하셔서 인간을 괴롭게 하시나.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난해한 질문이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11절에서는 사탄의 역사는 분명 하나님의 허락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 아래 움직이는 것일 뿐
결코 사탄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할 수도, 진로를 바꿀 수도, 대적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12절)
그 이유가 충격적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의가 아닌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의는 우리 모두가 알 듯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과 구원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사모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달리고 싶다는 것이
오늘날 세대의 소리입니다. 그 결과는 명확합니다. 심판입니다.
우리는 심판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너무하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는 세대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바로 심판입니다.
심판은 너무나 사랑하시는 인간들을 위해,
그런데 자신을 거역하는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여주시는 역설의 사랑입니다.
(16절)
그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고
(17절)
구원의 일과 말에 있어서 저와 여러분 또한 굳건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번호 | 제목 | 설교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2751 | [9월 1일] 아름다운 동역 (딤후 1:1-18) | 전소리 | 2025-09-01 | 4 | |
2750 | [8월 30일] 하나님은 요시야을 준비시키십니다. (왕하 22:1-13) | 최종운 | 2025-08-29 | 11 | |
2749 | [8월 29일] 짧은 인생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왕하 21:19-26) | 최종운 | 2025-08-28 | 24 | |
2748 | [8월 28일] 신앙의 유산을 물려줘야 합니다. (왕하 21:1-18) | 최종운 | 2025-08-27 | 12 | |
2747 | [8월 27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딤전 6:1-21) | 전소리 | 2025-08-27 | 16 | |
2746 | [8월 26일] 모두를 살리는 교회 (딤전 5:1-25) | 전소리 | 2025-08-26 | 17 | |
2745 | [8월 25일] 성령으로 분별하고 말씀과 기도로 가르치라 (디모데전서 4:1-16) | 전소리 | 2025-08-25 | 17 | |
2744 | [8월 23일]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딤전 3:1-16) | 손병호 | 2025-08-23 | 18 | |
2743 | [8월 22일]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15) | 손병호 | 2025-08-22 | 20 | |
2742 | [8월 21일]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딤전 1:1-20) | 손병호 | 2025-08-21 | 20 | |
2741 | [8월 20일]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 3:1-18) | 손병호 | 2025-08-20 | 20 | |
2740 | [8월 19일]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살후 2:1-17) | 손병호 | 2025-08-19 | 24 | |
2739 | [8월 18일]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 1:1-12) | 손병호 | 2025-08-18 | 29 | |
2738 | [8월 16일] 건강한 교회 (살전 5:12-28) | 전소리 | 2025-08-16 | 28 | |
2737 | [8월 15일] 절망과 두려움을 기쁨과 소망으로 (살전 4:13-5:11) | 전소리 | 2025-08-15 | 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