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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2:5)
 
[7월 23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2:5)
2025-07-23 00:00:00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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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우리가 본 13~23절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골로새 교회에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구원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렇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 구원의 뜻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말하는 부분입니다.

사랑에 대한 반응, 사랑에 대한 증명입니다.

 

사랑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남녀의 사랑이든, 부자간의 사랑이든, 사제지간이든, 친구이든그 어떤 사랑의 형태와 관계없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늘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언제나 사랑이 울고 웃는 우여곡절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이 확인하려고 하는, 혹은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의도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면 그냥 그 자체로 만족해도 그만일 텐데

사람은 사랑 앞에서는 대체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 구원의 뜻을 이루시면서 우리의 반응을 요구하십니다.

확인하려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무엇이 부족해서이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반응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늘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랑의 특성상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에 대한 사랑 증명하기를 원하십니다.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에서도 한 줌 먼지 같은 인간의 사랑을 (대체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보탬이 된단 말입니까?)

원하신다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로맨틱한 역설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께 증명해야 할 사랑의 마땅한 바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25) 사역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24) 자신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바울의 육체에) 채운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덜 완성되었습니까?

예수님의 고난은 분명히 다 이루어진 것이 맞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인간과 세상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고난을 더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름을 받은 우리의 사명은 이제 시작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채운다라고 표현합니다.

물이 병의 아귀까지 차올라서 넘쳐흐를 때까지 계속 차올라야 합니다. 그제야 끝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우리가 이웃의 구원을 위해 받는 모든 고난은 이어질 것입니다다 차오르면 그제야 끝입니다.

 

이 고난은 부름을 받은 우리의 몫입니다.

-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몫이고

-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한 고난이기에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아직 남았다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삶과 사역이 (29)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예수의 힘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장으로 넘어가서 1~5절은 바울이 이방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라고 할 정도로 애써 수고하며 사역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고생을 교인들이 (1) 알기를 원한다고 합니다생색을 내는 것입니까?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까?

(2) 바울의 바람은 단순한 자기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받아야 할 위로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야만 (4) 아무도 그들을 속이지 못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의 관심사는 자기 고난을 어떻게 벗어날까. 이런 것이 아니라 교회의 안위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고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흘러나오고,

자기의 수고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리는 데 쓰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오늘날 우리는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고난은 피하고 싶어 합니다.

사역의 짐은 가능한 한 줄이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읽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수고하노라”(1:29)

외치는 사도의 고백은 우리가 정말로 지향해야 할 섬김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지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이나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이루어 집니다.

그 수고는 교회 안에서의 섬김이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웃에 대한 인내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증명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고백이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리스도와 같은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로 이어지기를 기다리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께 사랑을 증명하고 계십니까?

나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나의 수고가 아니라 복음을 위한 수고를 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향해,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방의 성도들을 향해

눈물과 고통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곧 복음의 놀라운 은혜를 절대로 빼앗기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고난과 수고를 당하면서도 전혀 자기의 몫을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염려합니다.

 

예수님과 사도에 이어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를 통해 채워지기를, 교회가 그 사랑의 증거를 삶으로 반응하기를,

여러분 각자의 자리에서 순종과 헌신으로 그 복음 증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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