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    새벽기도회
[7월 21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어 (골 1:1-14)
 
[7월 21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어 (골 1:1-14)
2025-07-21 00:00:00
손병호
조회수   14

 

 

오늘 말씀을 읽는 우리는 골로새에도 교회가 있었다고 하니  골로새가 큰 도시가 아니었을까 지레짐작하기 쉽습니다만

골로새는 라오디게아의 남쪽에 있는 비교적 작은 도시입니다. (오늘날 튀르키예의 남부)

골로새에서 더 남쪽으로는 산지가 있고 그 산지가 끝나면 바로 지중해 바다가 펼쳐졌기 때문에

골로새에 무엇인가 대단한 것이 들어서기에는 지정학적인 매력이 없습니다.

이렇게 작은 도시였음에도 확실한 것은 바울이 전도하면서 교회를 세웠고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따로 기억할 정도로 애정을 보인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는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2:18), 유대교의 율법주의(2:16-17),

금욕주의(2:21), 천사 숭배(2:18) 같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분열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분열의 위기 같으면 바울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개인도 가정도 학교도 회사도 교회도 나라와 민족까지

위기가 있을 때는 원인을 분석하거나 혹은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 것 같은데

바울은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일일이 언급하는 것을 과감하게 지나고 곧장 지향점으로 나갑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철학과 율법과 사상과 천사보다 더 우월하신 분이므로

그분으로 만족하고 그분께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 사람이 됩니다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충만하여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철학, 율법, 사상과 대적하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니

마치 지식과 지식의 싸움, 사상적인 논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골로새서가 특별한 것은 앎에서 삶으로 발전하는 가르침의 반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골로새서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골로새서의 개론이었습니다. 이제 1장을 봅시다.

 

(3)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아버지께 감사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4) 그리스도 예수 안에...믿음과 사랑을 그리고 (5) 소망의 (6) 열매를 맺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열매를 맺는다고 하니 교회가 수적으로 부흥하는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수적 부흥이 아니라 삶의 열매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것이고 내가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이 열매입니다.

이 나무가 아무리 좋은 종자다, 좋은 나무다, 말만 하면 무엇합니까?

나무의 진가는 어떤 열매를 맺느냐입니다.

그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 눈으로 보면 우리는 그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숫자 뒤에, 다수 뒤에 교묘하게 숨으려고 하는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십니다.

삶의 열매가 하나도 없는 영적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1,000명을 10,000명을 모여서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고 소리를 높인들 무슨 구원의 열매가 있겠습니까?

대형 교회에 매주 들락거리고, 유명 목사의 설교를 매주 현장에서 들으면

마치 교회의 크기가 내 신앙의 크기인 것 같고 마치 설교의 수준이 마치 내 신앙의 수준인 양 착각하기 너무나 쉽습니다.

(대형 교회라고 하니까 나는 아니겠지 싶은 생각이 드십니까?

인간의 죄의 공장이고 우상의 공장이라는 칼뱅의 말이 딱 맞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도망칠 생각만 하고 숨을 생각만 하고 나는 빠지려 합니다.

태초의 인간이 타락하고 난 다음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숨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서 1,2시간 앉아서 졸다가 깨서는 밥 먹고 집에 오는 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일에는 누구나 속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까지 속습니다.

진짜는 월요일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았다는 진정한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구체적으로 내 삶 가운데열매를 맺는지의 여부입니다.

 

남 이야기, 정치 이야기, 무슨 한국교회가 어쩌고 하면서 범위를 희석하지 말고

극단적으로 시야를 좁혀서 내 삶을 보셔야 합니다.

거대 담론을 다루면 화자도 덩달아 대단해 보이는 반사효과가 있어서인지

이제는 너도 나도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부끄러움도 없이 펼치는 세상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SNS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이기를 축복합니다. 영적 쓰레기의 바다입니다.

쓰레기의 바다에서 헤엄치면 내가 나 자신을 아무리 가꾸어도 결국 나도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바다를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언제나 성경은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라고 말씀합니다. 늘 시작은 그곳입니다.

유럽의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미국의 대각성 운동, 영국의 부흥, 가까이는 평양 대부흥까지

부흥의 역사를 가만히 돌아보면 나라와 민족 보고 회개해라, 무슨 정치가 잘못되었다.

국제 관계 어쩌고, 보수와 진보, 개혁, 구제 등의 구호를 교회가 내걸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라나 민족이나 정치나 경제나 사회 개념이 없어서 선배들이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민족도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더 거칠었고 더 어두웠습니다.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짓밟는 일이 줄어든 것도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입니다.

완전히 엉망인 세상이었다가 최근 상대적으로 덜 엉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흥은 그런 이슈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습니다. 모든 시대가 똑같습니다.

부흥은 언제나 성경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남 지적이 아니라철저하게 회개하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선배들의 모범에서 벗어나 얼마나 헛다리를 짚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시작점이 엉뚱한데 무슨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결국 교회가, 우리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세상은 괴로울 것입니다우리의 어리석음이 자초하는 안타까운 결과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따라 구원의 길로 나아오는 비결은 내 삶의 열매입니다.

설령 한국교회가 아무리 엉망이라 하더라도 이웃 사람의 구원은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여전히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에 출석하고 회심하는 이들의 간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일이 한국교회가 정말로 대단해서 일어나는 일입니까? 천만에요.

그들의 곁에서 삶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수많은 헌신자 때문입니다.

나의 열매입니다. 오늘도 이어지는 행진입니다.

 

그렇다면 이 열매는 어떻게 맺는 것입니까?

 

먼저는 (9)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바울은 여기에서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신령한 지혜는 기계적으로 직역하면 성령적인 지혜입니다. 즉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많은 지혜라고 자부하는 것들이 난무하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는 다릅니다.

모든 것이 숨겨져 있고 가려져 있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는 만물을 꿰뚫어 봅니다.

그래서 총명입니다. 원어에서는 샅샅이 훑어보는 힘이라고 합니다.

당장 내가 가야 할 길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마음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총명은, 지혜는 모든 것을 밝힙니다. 어두우면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지는데

반대로 모든 것이 밝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면

 

주님을 (10)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심지어 (11) 모든 것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지식을 넘어서 삶의 열매로까지 가기를 기도합니다.

(9) 하나님의 뜻을 알고

(10) 모든 일에 그분을 기쁘게 하며 사는 삶입니다.

(11) 그러면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견디고 참는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힘있게 되어서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산다고 합니다.

아우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오히려 우리는 기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삶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지식과 삶이 이어질 때

바로 (13)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그분의 나라가 실현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열매를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어지고

교회가 부흥하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설교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2721 [7월 28일] 성도의 가치관 전쟁 (골 2:6-15) 전소리 2025-07-28 4
2720 [7월 26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더니 (왕하 17:24-41) 최종운 2025-07-25 10
2719 [7월 25일]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다 (왕하 17:1-23) 최종운 2025-07-24 10
2718 [7월 24일] 작은 타협이 가지고 온 결과 (왕하 16:1-20) 최종운 2025-07-23 11
2717 [7월 23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2:5) 손병호 2025-07-23 11
2716 [7월 22일] 예수님은 누구신가 (골 1:15-23) 손병호 2025-07-22 12
2715 [7월 21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어 (골 1:1-14) 손병호 2025-07-21 14
2714 [7월 19일] 악한 시대에도 하나님의 손은 멈추지 않습니다. (왕하 15:23-38) 최종운 2025-07-18 18
2713 [7월 18일] 혼란한 시대, 하나님이 찾으시는 왕 (왕하 15:1-22) 최종운 2025-07-17 13
2712 [7월 17일] 우리의 인생이 연장되는 이유? (왕하 14:17-29) 최종운 2025-07-16 15
2711 [7월 16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편지가 되십시오 (빌 4:1-23) 전소리 2025-07-16 16
2710 [7월 15일]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부활을 기다리는 자 (빌 3:10-21) 전소리 2025-07-15 17
2709 [7월 14일] 주님과 나의 관계를 최고로 여기는 삶 (빌 3:1-9) 전소리 2025-07-14 41
2708 [7월 12일] 성공의 자리에서도 내가 아니라 주님을 고백하기 (왕하 14:1-16) 최종운 2025-07-11 19
2707 [7월 11일] 엘리사는 죽어도 하나님은 죽지 않습니다. (왕하 13:14-25) 최종운 2025-07-10 22
1 2 3 4 5 6 7 8 9 10 ...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