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
그도 결국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4절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엘리사도 병들었습니다. 그것도 죽을 병이 든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많은 기적을 행했던 선지자도
하나님앞에 정말 귀하게 쓰임받는 그 한 사람도, 결국 병들고, 결국 죽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앞에 귀하게 쓰임받는다고
그의 인생에 고난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아플 수 있고, 실망할 수 있고, 약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삶의 무게에 눌리고 질병과 어려움 앞에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은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아니기 떄문입니다.
여기가 영원한 완성된 하나님나라라면
누가 저 천국을 사모하고, 저 하나님나라를 갈망하면서 가겠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고, 죽음이 있는 이 땅가운데
우리의 연약함을 보고, 인생의 아픔도 만나고, 인생에서 어려움도 만날 때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봅니다.
그리고 더욱 이 곳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눈물로 외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14절)
이 말, 낯익지 않으십니까?
바로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가 하늘로 들려 올라갈 때 외쳤던 말입니다.
이제는 그 말을 요아스 왕이 엘리사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엘리사의 존재는
이스라엘에 있어 눈에 보이는 막강한 군사력보다,
더욱 강하고 의지했던 영적 지주였다는 뜻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흔들리면서도,
또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나마 여기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것도
엘리사라는 큰 영적인 선지자가 계속해서 훈계하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요아스도 아는 것이다.
엘리사가 떠나면 누가 우리를 바른길로 이끄는가?
누가 우리를 영적으로 돌봐줄 수 있는가?
자신들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던 겁니다.
그러면서 엘리사는 숨이 넘어가는 그 상황속에서도
왕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믿음을 시험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15절부터 보시면 활과 화살을 들고 동쪽 창문을 향해 쏘게 합니다.
멀리 휙 쏘았어요.
그러면서 중요한 말을 합니다.
엘리사가 왕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17절)
이 화살에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한다.
왕의 믿음을 이끌어내는 장면입니다.
이 행위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메시지 앞에 너는 어떤 태도로 반응할 것이냐는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다음 명령을 합니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치고 그친지라. ”(18절)
이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합니다.
이 화살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함께 하는 화살입니다.
몇 번만 치고 마나? 화살로 땅을 세 번만 딱치고 멈춥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안타까워하며 외칩니다.
“다섯 번, 여섯 번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아람을 진멸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 번만 치리이다.” (19절)
이 횟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횟수안에 든 왕의 마음이 아쉬운것입니다.
만약 요아스 왕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나와 함께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전쟁을 이기게 하신다 라는 강력한 확신이 있었다면
화살로 수차례 내쳤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데 뭐가 걱정이겠나?
그런데 그속에 여전히 내가 해야한다. 내가 이루어야 한다라는 부담감 속에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까? 이 주저함이 생겨서
세 번 밖에 못내리쳤습니다.
이 상징적인 세 번이라는 숫자는
결국 우리 마음속 ‘망설임’과 ‘주저함’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말씀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선포되었을 때,
그 앞에 우리는 얼마나 담대하게, 확신 있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신다 해도,
내 안의 의심과 불신이 그 손을 붙들지 못하면
우리는 반드시 축소된 응답, 제한된 열매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은 전심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우리의 한계속에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여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믿음에 합당한 승리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성경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아주 특별한 사건입니다.
결국에 엘리사도 병들어 죽고 장사되었는데,
어느 날 도적들이 그 땅에 들이닥친 것이다.
때마침 누가 죽어서 시신을 장사하던 사람들이
도적때를 보고 장사를 못치루고 그 시신을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버립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 사람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21절)
이 사건을 여기에 왜 기록했을까?
이건 죽은 엘리사의 뼈에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다라는 것을 말해주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엘리사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엘리사의 육신은 무덤에 묻혔지만,
그의 사역을 통해 흘렀던 하나님의 권능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이 사건은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신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무덤 같은 현실, 죽음 그 자체마저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한계, 우리의 끝이라 생각되는 지점에도
하나님은 생명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그분의 능력은 무덤도 뚫습니다.
가장 큰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살아났고,
부활의 권능이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새 시대가 도래된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무너져 있어도, 내 기도가 끊어진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이스라엘이 여전히 아람의 공격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23절에서 중요한 진술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운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쫒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2절에 보시면 이들이 하루 이틀만 괴롭힌게 아니라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했다.
징계의 막대기다. 회초리다.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돌아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 망하지 않은 것이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회개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단 하나,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돌보시고 긍휼로 회복시키십니다.
그분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넘어져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죽음도 무덤도 이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끝까지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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