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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로 마무리하다 (왕하 12:1-21)
 
[7월 4일]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로 마무리하다 (왕하 12:1-21)
2025-07-03 16:17:59
최종운
조회수   8

 

어제 본문에서 요아스가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장면을 보았죠.

그는 다윗 왕조가 절멸될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요,

그렇게 은혜로 시작된 인생이 끝은 안타깝게 마치게 됩니다.

 

이 요아스의 삶은, 은혜 안에 머물러야 할 인생이

어떻게 은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경고판과도 같습니다.

 

1절을 보시면 요아스는 7세에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극적으로 구출받아서 그는 6년동안 여호야다 대제사장의 돌봄 속에서 성전에서 자라났어요.

어린 요아스는 말씀의 공간, 예배의 자리, 기도와 제사의 현장에서 자란 인생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이 말이 씁슬한 것이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했다는 것은,

여호야다가 죽고 난 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잖아요?

실제로,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의 신앙이 급격히 무너집니다.

 

안타깝지만,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신앙을 흉내는 냈지만,

그 신앙을 자신의 뿌리로 삼지 못했던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짜 신앙은 누가 없어도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신앙입니다.

 

처음에는 우리 신앙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또 그에게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나의 진짜 신앙은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들 많이 경험할거다.

 

어릴적에 신앙생활 잘했는데, 지금은 교회안나오는 자녀들 얼마나 많나?

그 신앙생활이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나와야지 진짜 믿음이 됩니다.

 

보면 그래도 요아스는 성전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전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아스가 잘한 일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성전 보수였습니다.

 

4-5절에 보면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말합니다.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아무래도 아달랴가 성전을 방치하고 파손시켰을 것이다

요아스가 이것을 보수하라고 명령하는데

 

그런데 6절에 보면 뭐라고 돼 있죠?

요아스 왕 제23년에 이르도록 성전의 파손한 대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무슨 말입니까? 왕이 명령했는데도, 제사장들이 안 움직인 겁니다.

23년이나 시간이 흘렀는데 성전 수리가 진척되지 않아요.

 

왜 그랬을까요?

백성들이 가져오는 속건제와 속죄제 헌물의 일부를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이 중 일부가 성전 유지·보수에 사용돼야 했지만,

제사장들이 그것을 자신의 몫으로 여기고 손을 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안에 사명감을 다 잃어버립니다.

성전은 여전히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고,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었던 겁니다.

 

그들이 성전을 사랑하지 않았고, 무너진 하나님의 집을 회복하려는 열정이 없었습니다.

여호야다와 몇몇 지도자 외에는

전체 제사장 조직이 부패와 나태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이런일이 있을 수있다.

예배는 습관적으로 드리고, ‘형식적으로 지켜지지만

그속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중심이 사라지진 않았는지 늘 점검합시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 건축, 시스템, 헌금제도, 사역조직은 다 있는데,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경외함이 없다면,

그건 신앙이 아니라 종교생활에 불과합니다.

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결코 놓치지 않길 소망합니다.

 

 

요아스는 이 상황을 보다 못해 성전 헌금함을 만들어 성전 문 곁에 두게 합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드려진 헌금이

제사장에게 들어갔다가 나오는 구조가 아니라, 바로 성전 수리에 사용하게 하죠.

그 결과 13절부터 보시면 목수와 석수, 철공과 동공들이 성전 수리를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은 요아스가 처음에는 성전보수를 위해서 좋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런데 본문의 마지막은 너무나 안타까운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17절에 보면, 아람 왕 하사엘이 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때 요아스는 어떻게 대응하느냐?

18절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람왕 하세엘이 침공하자.

하나님앞에 엎드리거나 지혜를 구한게 아니라

급한마음에 성정곳간과 왕궁에 있는 것...

하나님께 드려졌던 모든 것을 꺼내서, 적군에게 상납했다는 말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의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겁니다.

 

결국, 요아스는 그의 신하들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20)

여러분,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극적으로 이 요아스가 왕이 된 이유는 하나님이 살려주셨기 때문인데,

그 하나님을 버리니,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예요.

끝이 좋지 않으면, 시작이 아무리 은혜로워도 의미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로 시작했으면, 은혜로 살아가야 한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세 가지 도전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내 신앙은 누군가의 그늘 아래만 있는 의존적 신앙은 아닌가?

여호야다 있을 때는 잘했지만, 그가 없으니 무너진 요아스처럼,

우리도 사람에게 기대고만 있는 신앙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이제는 스스로 서는 신앙,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동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예배의 껍데기만 남고, 중심은 무너져 있진 않은가?

성전을 수리하려는 요아스의 모습은 좋았지만,

제도에만 집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점점 흐려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형식은 있는데 열정이 사라지진 않았는지 점검합시다.

 

셋째, 위기의 순간에 누구를 찾고 있는가?

하사엘이 쳐들어올 때 요아스는 하나님이 아닌 금을 꺼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올 때 누구를 먼저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내 방법, 내 계산, 내 인맥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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