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본문은 예후가 바알 숭배를 철저하게 제거하는 장면으로 매우 인상 깊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소 씁쓸합니다.
예후가 하나님의 열심에 쓰임받았지만,
결국 마음의 중심은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에 쓰임받는 인생”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하는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후는 아합 가문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람, 아하시야, 아합의 자손들을 죽이고, 이세벨을 제거했으며,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진멸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알 숭배 자체를 완전히 뿌리 뽑는 대대적인 작전을 펼칩니다.
18절부터 19절을 보시면 예후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바알선지자들을 척결하기 위해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미끼로 모읍니다.
심지어 뭐라고 합니까?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내가 이제 바알에게 큰 제사를 드리겠다”
라고 말합니다.
20절에서 예후는 큰 절기를 선포하며,
드디어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한자리에 모읍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몰려들었습니다.
예후가 바알을 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예후는 본격적으로 바알의 성전에 80명의 병사를 배치합니다.
아무도 그속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준비합니다.
결국 바알의 제사장과 선지자들, 그 우상들을 철저하게 멸절시킵니다.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바알 숭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예후는 이 일에 있어서 만큼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철저하고 치밀하게 준비했고
지금까지 많은 선지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예후가 해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예후와 같이 한 시대의 악을 도려내기 위한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세우기 위해 어떤 사람을 일으키시고,
또 어떤 시대에는 칼처럼 쓰시기도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후는 그런면에서 하나님의 열심속에 합당하게 쓰임받은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열심을 위해 쓰임받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예후는 부분적으로 순종했으나, 끝까지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예후의 이야기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는 바알 숭배는 제거했지만,
여러보암때부터 있어왔던 금송아지는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치적인 이유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나뉘어질 때
성전은 남유다에 있었다.
정통성이다.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드리러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유다로 마음이 쏠릴 것을 두려워해서
그래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예후도 금송아지를 제거하면
결국 이들이 남유다로 이탈할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금송아지는 놔두자.”결정하게 됩니다.
가만히 보면, 그는 “종교 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종교 정치”를 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순종한 것이죠.
3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예후의 행위를 긍정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였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예후가 바알 숭배를 철저히 없앤 것에 대한 칭찬입니다.
하지만 이어서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은 갈라졌습니다.
예후는 “전심으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후는 “부분적으로 순종”에 그쳤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완벽’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신다, 우리가 완전하지 않고 실수할 수 있음을 아신다.
하지만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 “하나님, 제가 온 마음을 드립니다.”
이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께 향해있지 않으면
어제 말씀드린것처럼 자기 열심으로, 자기만족으로, 자기의로 다한
나의 열심, 나의 최선일 뿐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전심을 찾고 계십니다.
결국 예후는 하나님앞에 칭찬은 받지만
북이스라엘 전체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영적 회복의 도구는 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우리의 ‘전심’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이란 전부의 순종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유익될 때만 따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불리할 때에도 따르는 것입니다.
이후 32절부터는 예후 통치 말년에 이스라엘에 벌어진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땅을 점점 줄이시매…”
하나님은 예후를 통하여 바알 숭배를 제거하는 영적인 개혁을 이루셨지만,
그의 불완전한 순종 때문에 이스라엘 땅은 점점 줄어듭니다.
하사엘이 요단 동편의 모든 지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그 축복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복도 약속하셨습니다.
사대까지 왕위가 이어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라 자체는 점점 약화됩니다.
하나님은 반짝하는 믿음이 아니라, 끝까지, 꾸준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찾고 계십니다.
예후는 시작은 멋졌지만, 끝이 흐릿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앙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후는 절반의 순종으로 시작했고 절반의 순전함으로 끝났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개혁은 열매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전심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배웁니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
넘어졌어도, 다시 하나님께 나아와 순종을 결단하는 사람.
그 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다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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