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어제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예후를 통해
아합 가문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신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 심판이 어떻게 전 이스라엘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참혹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참 전하기도, 듣기도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 그리고 그 열심에 동참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먼저 사마리아에 남아있는 아합의 자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합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고, 그 자손들이 사마리아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후가 이제 왕이 된 이후,
그는 이 아합의 아들들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후가 사마리아의 지도자들,
즉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들들 교육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3절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너희가 왕의 아들들 중에 가장 좋은 자를 골라 왕으로 삼고 나와 싸우자”
이 말은 겉보기엔 마치 도전장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심리전이었습니다.
예후는 이미 이들이 감히 왕을 세워 싸울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보세요.
그들은 두려워하며 말합니다.
4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 왕(요람과 아하시야)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그리고 그들은 예후에게 굴복합니다.
5절(b)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그런데 예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6절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 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하필 이 편지가 사마리아 지도자들에게 도착할 때, 왕자 칠십명이 함께 있었다.
어떻게 합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왕자 칠십명을 붙잡아서 죽이고, 그 머리를 예후에게로 보냈습니다.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이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안을 향해 선포하신 심판의 성취였습니다.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셨던 말씀이, 예후를 통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됩니다.
그들은 70명의 아합의 자손의 머리를 상자에 담아 이스르엘에 보냅니다.
10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을 이룬 것이다” 라고 해석하며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후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싶이 하나님은
바벨론도, 앗수르도, 심지어 바로의 완악함조차도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셨다고 해서 그들이 선하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도 필요에 의해서 들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쓰임받는 다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후는 하나님께 쓰임받았지만, 안타깝지만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은
예후가 유다의 아하시야 왕의 형제들을 죽이는 장면입니다.
예후는 사마리아로 향하던 중에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납니다.
알다 싶이 이들은 북이스라엘의 이세벨의 피로 얽힌 친족들입니다.
예후는 이들을 알아보고 어떻게 합니까?
42명을 한꺼번에 죽입니다
14절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명이 하나도 남지 아이하였떠라
여러분? “하나님이 이것 까지도 시키신 걸까요?”
아니다. 예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아합 가문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후는 그 명령의 선을 넘고 있습니다.
아합 가문을 넘어 남유다 왕실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호세아 1장 4절에서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흘린 피에 대해 내가 갚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후가 선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 자기 의와 정치적 욕망을 섞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신앙생활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실수를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순종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안에 내 감정, 내 의지, 내 욕심이 스며듭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시작한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정죄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유로 편가르기도 하고,
그 안에 내 열심이 전부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입니다.
예후의 심판은 점점 사적인 보복처럼 진행되고 있습니다.
16절 보시면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나님을 위한 열심인데, 여호와를 위한 열심인데
“나의 열심.” 이것을 뭐라고 부릅니까? “자기 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런데 자기의 열심은, 자기의는 사람을 죽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은 도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을 원하십니다.
예후는 하나님께 쓰임받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아 결국 버려집니다.
다윗은 실수도 있었고 범죄도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끝까지 붙드심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으십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무엇을 했는가가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 했는가입니다.
내 열심이 하나님의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항상 주님의 뜻을 묻고,
겸손히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내 뜻, 내 열정, 내 명분이 아무리 타당해 보여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면 그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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