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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갈 5:16-26)
 
[5월 28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갈 5:16-26)
2025-05-28 00:00:00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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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받는 구원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은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이 꾸준히 보아온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지점에서 왜 갑자기 육체의 욕심을 말하고 있을까요?

율법과 육체라니, 별로 연관성이 없는 두 단어인 것 같은데 왜 이 둘을 연결할까요?

 

그것은 은혜가 아닌 율법이 이끌고 가는 신앙의 본질이 결국 육체의 욕심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라고 하니 분명히 거룩한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율법 중심의 삶의 끝에는 놀랍게도 (16) 육체의 욕심이 버티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전개가 가능합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의도는 (14)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라는 뜻입니다.

(18) 성령의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게 합니다.

같은 표현을 하자면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율법 중심의 삶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15) 서로 물고 먹어버리려는 무한한 자기 확장의 시도입니다.

('물고 먹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동물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모양새를 말합니다인간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13절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는데

죄인인 우리 인간은 그 자유까지도 왜곡해서 육체의 기회를 삼습니다.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어디에서 공을 굴려도 아래로 저절로 굴러가는 것처럼

우리가 태생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어떤 선한 것이 주어져도 본성대로, 육체대로 굴러갑니다.

 

여기에서의 육체란 눈에 보이는 몸, 육체 자체는 물론 우리 안에 있는 죄의 경향성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내가 다 소유하려는 자기중심적 욕망이 모두 육체입니다.

온갖 좋은 것을 내가 다 차지하고 싶고 내가 주목받고 싶고 내가 위에 올라서고 싶고 내가 통제하고 싶어하는

온갖 (24) 정욕과 탐심이 곧 육체의 일입니다.

 

세상은 그 육체의 일을 교묘하게 포장해서 사랑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그럴듯해 보입니까? 정욕과 탐심이라고 대놓고 말하면 추해 보이니까 사랑이라고, 열정이라고 포장합니다.

 

(추해 보인다는 것을 알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러한 미())와 추() 의 경계선 자체가 사라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 결혼과 이혼의 무게감이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과 같은 무게감이 되어버리고

- 불륜이 사람들 모두가 즐기는 여가 활동처럼 보이고,

-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타인이 해주기를, 나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무한 이기심의 폭주끼리 충돌하고,

- 생존과 자기 확장, 자기 쾌락이 인생의 최우선 과제인 것처럼

사명도 비전도 다 상실한 채 그저 잘 먹고 마시고 잘 노는 것으로 허송세월하는,

정말 인간성이 다 사라진 동물의 무리 같은 삶입니다.

대중매체에서 앞장서서 그런 삶을 자꾸 드러내고 심지어 홍보하는 것은 통탄할 노릇입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삶이 아닙니다. 인간성이 사라져 버린 인간이 어떻게 인간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랑이 아니라 욕망일 뿐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온갖 분칠과 치장을 통해 교묘하게 사랑이라고 추켜세웁니다만

본질은 앞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상대를 (15) 물고 먹어 치워서 나를 만족시키려는 동물적 자기확장일 뿐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탐욕입니다.

 

13절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바울은 여기에서 사랑의 본질,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모범을 말합니다.

진짜 사랑입니다. 그것은 바로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종처럼 되라는 말입니다.

 

나의 자유조차도 깨뜨려서 종이 되어서 상대방을 더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종이 자유자가 되는 신분 상승을 하고 싶어서 모두 군침을 흘리는 판인데

자유자가 자기 신분을 버리고 스스로 종이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그러나 복음의 방향을 세상과 정반대를 선택합니다.

모두가 위를 향해 달릴 때 복음은 홀로 낮은 곳으로 갑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단이 가능합니까? 성령을 따라 살 때 가능합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16절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는 사건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서 사십니다.

우리가 예전에 성령을 따라 살지 않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따라 살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치열한 싸움이 일어납니다.

육체와 성령이 끝없이 부딪히는 것이 신앙인의 실존입니다.

일주일을 멋대로 욕구대로 살다가 주일에 교회 와서 두어 시간 졸다 가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겠다고 결단하는 순간 꽃길이 아니라 고생길 시작입니다.

양립할 수 없습니다. 꽃길이 아니라 고생길이고 생명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치열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役事)라고 하면 한국교회가 많이 오해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방언이나 신유나 기적 같은 초자연적인 부분을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데

(그래야 신비스럽기도 하고, 좀 더 하나님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성령의 열매는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변화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특출남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22)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 입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초자연적인, 엑스터시 적인 요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초자연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만유 위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신 것처럼

자연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초자연보다는 주로 자연으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셨으나

당신이 만유 위에 계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내시기 위해즉 표적(表迹)으로서의 기적을 보이시지,

일상 전체를 기적으로 도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감화하시고 변화시키시고 구원하시고 복음에 헌신하게 하신 방법은 기적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과 삶을 통해서였습니다. 철저하게 일상입니다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 하나님의 방식은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를 통해 충분히 드러났습니다.

 

초자연적인 부분은 성령의 역사에서 지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코끼리 같으면 화려한 상아에 해당하는 부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상아만 보고서 코끼리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턱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초자연을 외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에 더 시선이 쏠리는 우리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왜 이렇게 초자연에 집착합니까? 왜 이렇게 특출남에 집착합니까?

 

무섭게도, 이 또한 율법을 통해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육체의 소욕입니다.

나는 다르지? 나는 특출나지? 나는 (너희들보다) 우월하지? 나는 신령하지?

이렇게 자랑함으로써 나를 무한 확장하려는 더러운 정욕과 탐심입니다위의 질문이 세상의 추구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26) 헛된 영광입니다. 사라질 영광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결과는

(2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율법주의의 종말입니다.

 

이를 그냥 보고 계실 수 없는 성령께서는

그래서 이런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고 대적하시는 것입니다.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정욕과 탐심은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24)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 삶이 바로 (25) 성령으로 사는 삶이며 곧 성령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열매를 이루는 삶 살게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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