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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언약과 율법 (갈 3:15-29)
 
[5월 20일] 언약과 율법 (갈 3:15-29)
2025-05-20 03:24:31
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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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인트로) 어제 나눈 말씀에서 아브라함을 바울이 언급하며 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율법과 언약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갈라디아서 전체적인 큰 구조에서 지금 바울은 복음을 저버리고 행위, 즉 율법에 사로잡혀 있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붙잡고 있는 율법과 바울이 처음 전해주어서 본래 붙잡았던 복음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1. 율법보다 오래 된 언약(15-22)
     
    언약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의 척도가 됩니다. 즉 신뢰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뢰도는 어느 누구든 한 쪽에서 조금씩 조금씩 언약의 견고함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해버리면 그것은 언약으로서의 효력을 잃게 됩니다. 사실은 그 언약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신뢰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아브라함과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을 이어서 설명합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예수그리스도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통해 민족을 이루겠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손은 1차적으로 이삭일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후손을 이삭으로만 보지 않고 메시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유대인의 관점에서 후손을 도출한다면 예수그리스도가 됩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을 때에 맺어졌습니다. 그리고 난 후 430년이 지난 후에 율법이 나왔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는 성립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구원은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영원이라는 시간 개념에서 봤을 때 나 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이 진정한 해답에 도달하는데 도움을 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라는 이토록 중요한 이슈가 과거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관계 중심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 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목적을 깊게 들여다보면 서로가 타인으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이러한 생각의 의도가 잘 드러날 수도 있고 전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끝을 보면 그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어떤 약속을 맺으면 이것은 서로가 타협점을 도출합니다. 이러한 개념을 바울은 하나님과 성도에게도 대입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사항은 너 내 자녀 되어서 내가 영혼들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면 좋겠다! 이것은 너에게도 큰 축복이고 너를 영원으로 이끄는 중요한 약속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좋았습니다. 그 약속을 듣고 따릅니다. 이 아름다운 계약은 세상적으로 봤을 땐, 이해되지 않는 계약입니다. 신이 인간과 계약을 맺는데 왜 신이 더 손해 보는 것 같은지, 이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계약을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게 어떻게 하면 적은 임금으로 내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손해보시는 계약을 인간과 맺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참 인간의 시선으로는 불편한 계약인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자꾸 그 하나님의 본래 언약보다도 인간의 시선에서 자꾸 그 언약보다 인간적인 시선에서 좋아보이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이 좋아보여 그것을 놓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모든 행동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이행하기는커녕 더 그 관계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일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어리석고 영적 무지로 인해 언약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율법을 나중에 허락해주십니다.

      인간이 자꾸 이러한 관점을 버리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죄의 반복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연약함 투성이인 인간을 위해 예수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약속이 취소 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깨닫고 그제야 돌이켜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경험할 때까지 하나님은 약속을 끈질기게 붙들고 계시며 이 약속을 믿은 자들에게 주심을 바울은 성도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2. 구원의 주님과 율법 (23-29)
      앞에서 율법의 기능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의인화 하여 그 기능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초등교사라는 직업이 유대사회에 있었습니다. 이 교사는 어린 자녀가 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영아시절부터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를 마치기 전까지 자녀의 곁에서 함께 합니다. 이들은 노예신분이었으며 어떤 학업적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예절을 가르치고 등하교를 책임지는 등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개념으로 율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사의 역할은 분명 기한이 있습니다. 율법의 기한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만료되었습니다. 주님 오신 후로는 진정한 보호자이신 주님과 연합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고 우리의 삶의 지혜가 많더라도 늘 주님과의 동행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분과의 연합함, 즉 세례를 통해 주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를 영원토록 주님과 동행하도록 해주는 것은 주님만을 온전히 바라보고 주님만을 신뢰하고 그 주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만을 오직 우리의 유일한 길로 허락해주심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만이 우리 신앙의 여정 속에서 기준점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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