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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갈 1:1-10)
 
[5월 12일]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갈 1:1-10)
2025-05-12 00:00:00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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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1 - 시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쓴 배경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교회 안에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 이외에도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 식의 (1:6)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까지도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그만두고 율법에 따라 행동한 적이 있었다고

2장에서 말하고 있을 정도로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입김은 대단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 율법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향해 산 존재인 우리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복음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

 

(배경2 - 내용)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자기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갈라디아서를 꼽았습니다.

나에게는 아내가 둘 있다. 하나는 카타리나(루터의 아내)이고 하나는 갈라디아서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만 가지고 여섯 번(학기)의 다른 강의를 했고 스무 편이 넘는 설교집을 남길 만큼 갈라디아서에 대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의 맥락을 이어서 인간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책입니다.

당연히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상당히 논쟁적이고 공격적인 편지이지만 그래서 더욱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는 편지입니다.

 

(본문)

지금까지의 개론만 보면 갈라디아서는 많이 혼내려고 쓰는 편지인 것 같은데

바울은 그 시작을 (3) 은혜와 평강으로 엽니다은혜와 평강에는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복음의 본질이 들어있습니다.

 

세상에는 은혜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거래일 뿐입니다.

혹은 내 것을 적게 내어놓고 남의 것을 많이 가지고 오려는 심보만 난무할 뿐입니다.

심지어 남의 것을 티 내지 않고 그럴듯하게 많이 가지고 오는 것을적게 투자하고 많이 가져오는 것을

잘 처세하는 것이라고 칭찬합니다. 똑똑하다고 합니다.

 

이러면 당연히 평강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것을 차지하려는 검은 의도를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이 의도는 서로 충돌합니다.

피 냄새가 난무하는 레드오션입니다. 평강이 애초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평강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단어입니다.

단순 도식화 해봅시다. 은혜가 있어야 참된 평강,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도 가능합니다.

 

내 삶에 평강이 없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은혜가 아니라 거래만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내 삶에 거래만 있을까요? 한 단계 더 거꾸로 올라가 봅시다.

(1)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 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시기에

나에게는 은혜가 있습니다. 남에게 거저 내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남에게 거저 주면 손해 보고 망할 것 같은데, 놀랍게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거래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4)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고 섬긴다고 공수표를 날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대가 없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흐름을 역행하는 복음의 흐름입니다.

세상은 십자가 앞에서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4) 대속하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여기에서의 대속은 (4)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무슨 유익이 아닙니다.

세상 모두가 자기 유익을 구하는 일 즉, (1) 사람에게서 난 것이 난무한 마당인데

(4) 우리 아버지의 뜻은 (4) 우리 죄를 대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대속의 은혜는 놀라운 하늘의 평강으로 이어집니다.

문제가 없는 개인, 문제가 없는 가정, 문제가 없는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대속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서서 내 삶을 거울처럼 비추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삶에는 평강이 있습니까? 평강이 없다면 은혜가 있는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거저 주는 사랑, 실제로 내 삶을 내어주는 사랑, 손해 보는 사랑으로서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없다면, 거래만 있다면 조금은 무서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내 안에 예수가 없고, 그 예수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도 없다는 당연한 결론입니다.

(1) 사람으로부터 난 것만 난무하는 인생입니다.

 

바울이 고발하는 율법만 있는 인생이 이렇습니다. 말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고 하지만

율법에 매인 인생은 세상의 논리와 다를 것이 없는 말을 합니다. 거래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만큼 가지고 오는 것이 맞다는 등가교환(等價交換)입니다.

조건 없이 몸을 주심으로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 그 십자가를 통해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데

율법은 거기에 자꾸 조건을 끼워 넣습니다. 복음을 변질시킵니다.

 

사도는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그는 (6)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몹시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흔들릴 수가 있냐고 합니다. 큰 충격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든지 분명한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 쉽게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흔들리는 것도 복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온갖 유혹을 물리칩니다.

바울은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1)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자기의 사도직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웅변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임명받은 바울의 사도직은 갈라디아서 전체의 논리적인 기반입니다.

자기를 세운 분은 사람이 아닙니다자기의 정체성이 사람의 말이나 세상의 어떤 요소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사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무엇을 해서 구원을 받고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미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바로 그 믿음입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입니다.

그 믿음으로 악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수많은 이단과 거짓 가르침들이 우리의 구원을 흔들지만

우리의 구원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일일이 그런 것들에 대응할 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구원을, 복음을, 본질을 단단하게 붙잡는 힘에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축복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고

흔들림 없는 구원의 길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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