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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하나님은 아직 끝이 아니십니다. (왕하 4:17-37)
 
[5월 24일] 하나님은 아직 끝이 아니십니다. (왕하 4:17-37)
2025-05-23 16:52:53
최종운
조회수   12

어제 말씀에 엘리사에게 자신의 집의 방도 내주고,

자신의 삶에 깊숙이 엘리사를 초대해준 수넴여인을 살펴봤다.

 

엘리사가 그 귀한 섬김에 너무 감사해서

어떤 예언을 해주나?

내년 이맘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 수넴 여인에게 엘리사가 예언을 하잖아요?

 

17절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남편도 나이가 많고, 이제 거의 자포자기했던 아들아닙니까?

그런데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귀한 아들이겠나?

 

18절을 보면, 이제 아이가 자라서 추수 때 밭에 나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며 쓰러지죠.

 

급하게 집으로가서 어머니의 무릎에 안긴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허망하게 죽게 하실거면 왜 이 가정에 이 소중한 생명을 주셨나?

갑자기 이렇게 죽게 하는 법이 어디있습니까?

 

참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서 수넴 여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21절을 보세요. 죽은 아들을 어떻게 합니까?

 

아이를 안방에 눕히는 게 아니라, 엘리사 선지자가 머물게 했던 빈 방 침대에 눕힙니다.

그리고 문을 닫아요.

여러분,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지금 수넴여인은 이 상황을 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다면, 하나님이 끝을 내셔야 한다.”

그 믿음이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보세요.

남편에게도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내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 가겠다"고 말합니다.

 

남편은 영문도 모르고, 왜 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냥 아들이 좀 아파서 엘리사를 찾아가나 그정도로만 여겼을 거다.

 

그녀는 끝까지 이유를 말하지 않고

23절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남편에게 평안이 있길~ 하면서 떠납니다.

이 히브리어는 샬롬”~~ 이러면서 떠난거다.

 

이 어미된 수넴 여인의 마음은 속이 타들어가도,

하늘이 무너졌을거에요.

 

그럼에도 어떻게 그속에서 샬롬~ 하면서 인사할 수 있을까?

이 여인안에 믿음이 있어서 그러다

 

하나님이 시작하셨다면, 하나님이 가장 좋은길로 여실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실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역사하실줄 믿습니다.

 

이 수넴여인이 갈멜산에 도착하자

멀리서 그녀를 보고 그의 종 게하시를 보내 그녀를 맞이합니다.

 

여기까지 여인이 찾아온 거면

엘리사도 분명 무슨 일이 있구나!! 짐작이 됩니다.

종을 보내서 물어보게 하죠

 

26절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신기한 것은, 이 수넴 여인은 게하시에게도 자초지경을 말 하지 않습니다.

종앞에서도 평안하다 얼버무리고는

오직 엘리사만을 향해 나아갑니다.

 

왜요? 이 여인은 안다.

이 문제는 사람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게하시가 아무리 선지자의 종이라도,

지금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앨리사를 보자마자 이 여인이 엘리사의 발을 끌어앉습니다.

복받쳤던 눈물이 터져나왔을겁니다.

꺼이꺼이 울었을거다.

 

게하시가 당황스러워서.,.. 가까이와서 지금 뭐하시는거냐고 제지를 하는데

엘리사가 가만두라~ 그러면서 엘리사가 하는말이

27절 말미에 보시면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하나님도 엘리사에게 왜 이 여인이 찾아왔는지 알려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선지자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한계가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대언한다 하는 사람,

주의 종들 또한,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 마세요.

그 역시 한계가 있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제서야 이 여인이 설움속에 대답합니다

28절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 엘리사가 그제서야 알게됩니다.

이 아들이 죽었구나.

 

이제 엘리사가 아이가 죽은 수넴여인 집으로 함께 가기로 합니다.

먼저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들고 달려가라고 하죠.

그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대가 놓으라 합니다.

 

31절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왜 엘리사의 지팡이를 가지고 갔는데도

어떤 능력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이 이 지팡이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팡이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게 아닙니다.

그 지팡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그 지팡이 자체에 무슨 신령한 뭔가가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도구된 우리,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받는 우리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는게 아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한낯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엘리사가 도착해서 방에 들어갑니다.

죽은 아이가 누워 있어요. 엘리사는 문을 닫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아이 위에 올라가, 눈과 눈, 입과 입, 손과 손을 맞댑니다.

 

이 모습은 응급처치가 아닙니다.

생명을 전이하는 장면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육체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의 몸이 따뜻해집니다.

 

그러나 아직 살아나진 않았어요.

엘리사는 다시 방을 오가며 기도합니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나요.

아이가 재채기를 일곱 번 하고, 눈을 뜹니다!

 

왜 하필 재채기를 일곱 번일까요?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함을 상징하죠.

하나님이 완전히 그 생명을 회복시키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불러 아들을 안기게 합니다.

그녀는 감격하여 엘리사 앞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방을 나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때로 우리 인생속에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분명 주셨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을 빼앗아가버리거나,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 같은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마치 수넴 여인이 갑자기 잃어버린 아들처럼 말입니다.

 

이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요?

바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가장 최악의 상황도 가장 최선으로 역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이 믿음입니다.

 

수넴 여인이 아들을 잃었을 때, 그녀는 절망이나 슬픔에 빠져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그분께 맡길 때,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분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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