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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회개하고 엎드릴때 살길이 열립니다. (왕상 20:35-43)
 
[4월 4일] 회개하고 엎드릴때 살길이 열립니다. (왕상 20:35-43)
2025-04-03 15:05:52
최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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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은혜부어주시길 원합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과의 첫 번째 전투에서 패배한 아람왕 벤하닷은

패배의 원인을 어디서 찾았냐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두 번째 전쟁을 평지(아벡)에서 치르면 자신들이 유리할 거라 착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략이나 지형의 유리함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순종으로 승리를 주신다는 사실을 북이스라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제가 무엇이었나요?

아합 왕이 그 놀라운 승리를 주도하신 하나님을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특히 가뜩이나 북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무너지고 있는데,.,,

아람과 화친을 통해 아람의 우상의 문제가

이스라엘의 영혼을 옭아매는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람도 가차 없이 끊어내도록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합왕이 마치 자기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은 채, 아람왕 벤하닷을 자기 임의로 살려주었습니다.

이 승리의 근원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고,

아람왕 벤하닷을 자기 생각대로 살려줍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이한 사건을 통해 아합왕을 경고하시는데,

바로 선지자들이 등장을 합니다.

어떤 선지자가 동료에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명하니, 나를 치라!”라고 간청합니다.

 

이게 얼마나 황당합니까, 친구끼리 이유도 모르고 나를 때려라라고한다.

첫 번째 친구는 어떻게 친구를 때려?” 하고 거절했다가 사자에게 물려 죽습니다.

참으로 무섭고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 이해되지 않는 이 사건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분명해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난 선지자는 어땠나요?

그는 앞선 사건을 듣고 두려움으로, 선지자를 때리는데

이번엔 심각할 정도로 치면서 상처를 냅니다.

아니, 정말 하나님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마음이었겠지요.

이렇게 해서 그 선지자는 변장하고 길가에 숨어 아합 왕을 기다립니다.

 

왕이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목에서

큰 소리로 왕이시여, 저를 좀 돌아봐 주십시오!” 하며 주목을 끌죠.

 

그리고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저에게 포로 하나를 맡긴 군관이 있었는데, 잠깐 한눈 파는 사이 그 포로가 도망갔습니다. 근데 그 군관이 그 포로를 잃어버리면

제 목숨으로 대신하거나, 엄청난 빚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왕에게 묻습니다.

 

아합 왕은 왕으로서 당연히 재판관의 역할도 해야했거든요.

아합왕은 이 병사가 약조를 어겼으니,

마땅히 죽거나 엄청난 은 한 달란트를 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 선지자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뭔가?

바로 아합 왕의 불순종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비유였죠.

 

이 군관은 하나님

병사는 아합왕

포로는 아람왕 벤하닷을 상징하는거다.

 

하나님이 아합왕에게 하나님께서 진멸 대상으로 아람왕 벤하닷을 맡겼는데

이 벤하닷을 놓아준거죠.

 

네가 책임진 포로를 놓쳐버렸으니, 네가 죽어야 해!”라는 왕의 말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눈을 풀고 변장한 모습을 벗자,

아합 왕은 그제야 , 당신이 선지자였구나!” 하며 깜짝 놀랍니다.

 

곧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게 되죠.

42절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죽음의 심판이 선포된 것입니다.

 

그럼 그 말씀을 들은 아합 왕은 어떻습니까?

회개하거나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근심하고 답답해하면서 왕궁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억울하다!”는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의 길, 다른 하나는 생명의 길입니다.

죽음의 길을 가는 대표적인 태도가 바로 아합 왕의 모습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드러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내 생각과 감정이 우선이라 여깁니다.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 살기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생명의 길을 찾는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다윗이 비슷하지 않았나?

밧세바를 범하고도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있을 때

나단선지자를 통해서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그 죄를 범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때 뉘우치고 하나님앞에 자복합니다.

그때에 살길이 열럽니다.

 

죄가 드러날 때 회개하고, 낮아지며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주님이 진짜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심지어 벌이 떨어지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그 모든 결정을 신뢰합니다.

 

여러분, 어쩌면 우리 삶에 여전히 내버려둔 벤하닷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분명히 이건 끊어야 된다, 놓아야 한다, 내려놔야 한다하시는데,

혹시라도 아니요, 이거 갖고 있으면 저한테 이익이 될 것 같은데요?”

하고 놔두고 있진 않습니까?

결국 그것이 우리를 삼키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때로는 이해가 안 돼도, 감정이 따라오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멘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말이지요.

 

이미 사순절 기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순종의 모범을 보이셨다.

곧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감당하심으로 모든 죄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죽을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의 은혜를 신뢰하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그 앞에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아합 왕은 결국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어서요.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드러내신 죄의 모습을 보고 도망가지 않고, “하나님, 제 잘못입니다. 회개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제 인생의 참된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고백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생명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내 삶의 우상, 내 안의 숨겨진 불순종,

그리고 아직 손 놓지 못한 벤하닷을 발견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동시에, 우리를 끝까지 찾아오셔서

구원의 기회를 여러 번이나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앞에서,

감사와 순종으로 반응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명으로 가는 길, 진정한 구원의 길을 걸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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