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13절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마게도냐로 갔노라
우리가 무엇인가 좋아 보이는 것, 실제로 좋은 것을 버린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나은 가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문이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일이 해결되기를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문이 열리고 일이 해결되고 길이 뚫리면 그것으로 참 다행이다 싶을 텐데
바울은 그 열려 있는 문, 해결된 일, 괜찮은 상황을 버리고 떠납니다.
드로아에서 그는 괜찮은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나은 가치를 위해 그곳을 떠나 마케도니아로 떠납니다.
그 이유는 (13절) 디도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나눈 것처럼 바울의 관심사는 디도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만나야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텐데 뉴스를 듣지 못하니
아무리 괜찮은 상황이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 집념, 애정이 어느 정도로 특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랑은 집중하는 힘입니다.
목적지까지 걸어가는데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끝까지 쫓아가는, 집중하는 힘입니다.
최고의 가치,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가치에 내 가치를 합쳐서 달려가는 인생이 복된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쫓아가고 있습니까? 영혼 구원의 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그 가운데 다른 유혹, 제법 괜찮아 보이는 상황이 있어도
더 위대한 가치인 영혼 구원의 가치를 위해
그 유혹을, 그 상황을 떨치고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위대한 선택을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4절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갑자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도 사람인데 좋은 상황을 버리고 일어나는 것이 좋았겠습니까? 아쉬움이 남았을 것입니다. 심령이 편하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14절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런데 오히려 그는 승리를 말합니다.
심령이 편하지 않은 상황이 곧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과 하나님의 임재는 별개의 문제인데도 우리는 자꾸 둘을 연결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생각에 내 마음을 맞추는 것이지
하루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하찮은 내 감정, 인간의 감정에 맞춰 하나님의 뜻을 감히 운운하는 것이 아닙니다.
14절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15절 우리는...그리스도의 향기니...16절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바울은 자기의 진심을 말하며 ‘냄새’를 말합니다.
우리말에서 냄새로 번역된 단어는 원어에서는 좋은 향기를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는 서양의 속담도 있습니다만 향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승리와 냄새, 승리와 향기가 직접적으로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로마는 수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 폭발적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과 바울 시대에는 지중해를 제국의 호수로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영토를 자랑하게 되었지요.
동서남북 사면팔방에서 금은보화와 노예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의 행렬이 수도 없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 개선의 행렬에 있는 병사들을 위해 시민들은 향을 피웠습니다. 승리자들을 위한 향입니다.
반면 패배자들, 개선 행렬의 뒤에서 끌려오는 포로들에게 이 향기는 죽음의 향기입니다.
내가 평생 노예로 살 수도 있다는 정신적 사형선고의 향기입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신세가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는 영광스러운 향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저주와 치욕의 향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6절에서
16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향기가 난다는 사실은 하나의 사실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복음은 생명의 향기이지만
-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 복음은 죽음의 냄새입니다.
냄새, 향기인 것이 맡기 싫다고 안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처럼 복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선택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복음은 구원으로의 부르심인 동시에 심판의 선포입니다.
17절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여기에서 혼잡하게 한다는 말의 원어는 말 그대로 ‘장사한다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장사를 왜 합니까.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고상한 이유를 붙여도 본질은 이익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에 매우 충실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돈을 벌어도 그만 안 벌어도 그만인 사람에게는 절대 돈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바울 당시 거짓 교사는 복음을 혼잡하게 했습니다.‘이익을 챙기기 위해’ 복음을 왜곡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본인도 압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아니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다만 멈추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버렸고 밥그릇을 내려놓을 자신이 없어서, 자기가 그동안 한 말을 부인할 용기가 없어서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지 못할 뿐입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태도는 순전함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고 순전하게 전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는 멀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 향기의 전달자인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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