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합 왕과 아람 왕 벤하닷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제 20장부터 22장까지는 아합 왕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왕들이 등장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도
하나님께 돌아서지 않고 완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어리석고 악한 왕이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고도 끝까지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이 바로 아합왕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식으로 아합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십니다.
돌이키고 회개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은 구원의 손을 내밀어주시는데
아합은 끝까지 그 손을 외면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죄를 더욱 심각한 지경까지 몰고 갑니다.
지금 북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인가 하면
1절 아람왕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곳을 치며
아람 왕 벤하닷은 자기 군대를 모으고,
무려 32명의 다른 왕들과 연합하여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완전히 에워쌉니다.
당시에 아람은 다윗 시대만 해도 이스라엘의 속국 비슷한 위치에 있었지만,
점차 세력을 키워 주변 여러 소국들과 동맹을 맺을 정도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대함을 과시하듯이,
아람왕 벤하닷은 막대한 군사와 수많은 동맹자들을 이끌고 와서 사마리아 성을 둘러쌉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양육강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으로 제압할 때 약자는 속수무책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굴복해야 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지금 아합이 그런 상황입니다.
이 위기에 아합은 어떻게 반응하나?
“납작 엎드려버립니다. ”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아합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보다는, 아람 왕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사실 아합왕이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자신앞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는커녕,
자기보다 강한 사람앞에 아부하고 엎드리는 아주 나약하고 비참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무리 세상이 강하고, 힘으로 주의 백성들을 제압하려 한다 할지라도
어떤 강자도 하나님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강한 무기를 들고 와서 압박해도,
하나님의 주권이 그 모든 것 위에 있음을 믿시기 바랍니다.
이제 2절부터 12절까지를 통해, 벤하닷 왕이 무리한 요구를 세 번이나 반복하는데,
아합이 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봅시다.
(1) 첫 번째 요구와 반응
3절 네 은금은 내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벤하닷은 사신들을 보내어,
“네가 가진 금은과 네 아내들, 그리고 자녀들은 모두 내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합니다
조공을 더 달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마리아와 왕궁 안의 모든 재산과 가족을 다 넘기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은금은 그러다 쳐도. 아내와 자녀들도 넘기라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가족을 건드리는 너무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
아합은 4절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거의 자포자기 상태의 대답을 합니다.
완전히 겁에 질린 채 아람왕을 향해서 "내 주 왕이여 내 모든 것은 다 당신것입니다."
완전히 굴복하는 연약한 모습이 드러나죠.
아합에게 있어서 진짜 왕은 하나님 한분이다.
그런데 이 아합이 하나님앞에 무릎꿇지 않으니 결국 사람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성도님들!!
기억하십시오. 반대로 하나님앞에 무릎꿇으면 사람 앞에서 당당할 있다.
하나님앞에 무릎꿇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2) 두 번째 요구와 반응
두 번째로 훨씬 더 극단적인 압박을 가합니다.
6절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쁘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이제는 아합 왕뿐 아니라 신하들의 집까지 모조리 뒤져서,
눈에 띄는 귀한 물건이란 물건은 전부 다 빼앗겠다는 것입니다.
아합왕은 그제야 나라의 장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이 문제를 의논합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조언을 구한 것이죠.
그러자 장로들과 백성은 “그 말은 들을 필요도 없고, 절대 들어주어서도 안 된다”고
강력히 말립니다(8절).
이에 아합은 두 번째 요구만은 거절하겠다며,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첫 번째 요청은 받아들이겠지만, 두 번째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답변합니다
이 역시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갑자기 담대함이 생겨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계산에서 나온 결정입니다.
정치적으로 눈치를 보고, “누가 강한가, 누가 내게 유리한가” 이것을 계산하면서
일시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움직였을 뿐,
여전히 아합은 하나님께 무릎꿇지 않고,
왜 하나님이 이 상황을 내게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 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습니다.
(3) 세 번째 요구와 반응
결국 아합의 거절을 당한 벤하닷은 화가 폭발합니다.
10절 그 때에 벤하닷이 다시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따르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무슨말입니까?
사마리아가 손에 잡혀지는거 하나 없도록 완전히 산산조각 흙먼지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이다.
12절을 보면, 벤하닷은 다른 왕들과 술자리를 벌이다가
“당장 그 성읍을 공격하라”고 명령해버립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살펴보시면서
이 본문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 아무리 ‘세상 강자’처럼 보이는 존재들이 아무리 교만을 떨고 위협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영원히 득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일 새벽에 살펴보실텐데, 아람의 벤하닷이 얼마나 큰 군대를 이끌고, 얼마나 의기양양하게 사마리아를 포위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합 왕에게 극적인 승리를 주십니다. 다시한번 놀라운 도움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이는 아합이 특별히 신실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심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둘째,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앞에만 무릎꿇어야 합니다.
아합은 강자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고, 백성들의 조언에는 우유부단하게 끌려다녔습니다.
정작 그가 의지해야 할 분, 즉 여호와 하나님 앞에는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반대로 하나님앞에 무릎꿇으면 사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무릎꿇으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은, 어떤 강한 세력도 주님보다 강할 수 없으며,
지금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주변 환경이 너무나 강해 보이고, 도무지 내 힘으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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