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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악을 이기는 교회 (고후 1:12-2:4)
 
[3월 26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악을 이기는 교회 (고후 1:12-2:4)
2025-03-26 04:24:57
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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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서신을 다시 보내게 된 첫번째 이유

어제부터 시작한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성도들을 향한 사랑 가득한 그의 마음을 함께 보았습니다. 또한 가장 먼저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 앞에서 우리의 좁은 길을 걷는 인생을 주님만이 참된 위로자 되시고 소망이 되심을 감사하는 고백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성도들과의 관계 속에 어떤 큰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일지 고민한 서신의 내용입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만나고자 세웠던 계획을 바꾼 과거의 일에 대해 설명하면서 방문을 연기한 까닭을 설명합니다. 본문에서 성도들과 바울 사이에 존재해던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 부족과 오해였습니다. 결국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과의 믿음의 관계를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서신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자랑=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언행(12-14)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2절부터 이제 그는 서신을 쓰게 된 이유를 차근 차근 써 내려갑니다. 바울이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가장 먼저는 사도바울 자신과 함께하는 사역자들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동안 보였던 모든 언행의 뿌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정확하게 그가 교회와 어떤 갈등속에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린도후서 10장에서 그가 자기 사도권에 대해 변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삶에서 자랑은 다름 아닌 교인들, 고린도 성도들이고, 성도들의 자랑은 반대로 바울 자신이라는 점을 언급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사역의 근간이 흔드는 어떤 큰 관계의 단절, 나아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큰 문제를 교회가 직면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큰 근심거리였을까요? 상상해보면 이것은 사역자로서 동력을 잃을 만한 아주 큰 상처가 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12절에서 그가 성도들에게 보였던 그간의 모든 언행은 육체의 지혜, 즉 세상의 지혜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모든 행실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에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오해 속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성도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았는가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진실성과 신뢰를 얼마나 받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해보면, 사실 저조차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한 삶으로 당신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이 참으로 망설여지게 됩니다. 우리가 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선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주님 외에는 그 누구도 선한 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헤와 사랑으로 새생명 얻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그러한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것은 은혜와 사랑을 받은 수혜자로서 온전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 입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스스로가 그런 오해를 받음에 있어서 주님의 복음이 무능한 것으로 취급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복음을 자랑하는 신앙의 자존감이 회복되기를 간구하는 기도로 오늘의 기도가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2. 여행을 변경한 이유(15-2:4)

바울은 15절에서 고린도 성도들 만나길 바랐던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2장 2절에서 자신을 근심하게 한 자가 있고 그 사람이 바울 자신을 만났을 때 큰 갈등을 겪을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신을 향한 불만이 있는 자가 오해를 풀고 회복 된 시점에서 만나는 것이 그가 실족하지 않는 길이라 여기며 방문을 미뤘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고린도전서에서 다루었던 여러 문제들 중에서 어떤 문제로 인해 교회의 지도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바울의 사도권과 그가 가르치는 복음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그 성도를 향해서 질책하거나 자신의 권위로 그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계획을 미루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한 영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그에게 있어서 아무리 핍박하는 자일 지라도 자신으로부터 복음을 들은 성도라면 그를 향해 사랑으로 인내하며 그와 함께 화목하려 힘썼습니다. 저 같은 목회자도 그렇고 교회에 여러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계신 모든 성도님들, 그리고 온 교회가 함께 이러한 사랑으로 서로를 귀하게 여길 때 아무리 어떤 풀기 어려운 관계의 문제도 갈등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 될 줄 믿습니다.

결국 바울은 정말 육체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끝까지 교회를 섬기는 자로서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주고 있음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결론: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의도에 나 자신과 교회를 내어주지 맙시다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복음을 뿌리로 한 사역과 그의 인생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찾아온 시험, 악한 의도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성도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라서 언제든지 이런 갈등을 겪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었던 서로를 오늘 갑자기 서운한 감정이 생길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신앙마저도 흔들릴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해왔던 섬김이나 사랑의 교제가 모두 헛것인 걸까요?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정말 기쁘고 행복했던 그 모든 시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여정을 함께 이어온 흔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러한 사랑 가득한, 믿음이 충만한, 하나님만을 높이는 공동체로 하나님께서 세워주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새벽,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흔드는 악한 요소들로부터 보호해 주시며 오직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행실이 채워지고 믿음이 견고한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갈망하며 그렇게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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