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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하나님은 숫자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왕상 20:13-21)
 
[3월 29일] 하나님은 숫자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왕상 20:13-21)
2025-03-28 16:50:49
최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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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말씀에 아람 왕 벤하닷은 이미 여러 동맹국(32명의 왕들)을 끌어들여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처음에는 아합이 가진 은과 금, 그리고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놓으라고 했고,

이어서 아합과 신하들의 집안 전부를 샅샅이 뒤져서 원하는 것을 다 빼앗겠다고 협박합니다.

이러한 폭력적이고 교만한 벤하닷 앞에서 아합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벤하닷은 사마리아를 치라고 명령합니다.

이 전쟁통에도 아람왕 벤하닷은 진영 안에서 술을 마실 정도로

얼마나 거만하고 오만한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위기의 상황앞에 아합의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사실 아합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적을 행하는 장면을 이미 경험한 자입니다.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땅에 하나님의 역사로 비가 쏟아지는 극적인 체험도 했다.

누가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신지 눈으로 확인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일은 아합왕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한 선지자가 찾아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본문 13절을 보면,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성경은 이 선지자가 누구인지 이름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긴급하게 나타나서,

아합에게 전혀 뜻밖의 선언을 합니다.

 

그 말인즉 하나님이 이 큰 무리를 아합왕 손에 넘겨주시겠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놀랍지 않습니까? 아합이 회개했다는 구절이 없다. 하나님께 다시 의지했다라는 구절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승리를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은혜입니다.

아합은 우상 숭배의 최전선에 섰던 왕입니다.

왕비 이세벨과 함께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 했고, 백성들을 죄악으로 몰고 갔습니다.

지금도 사면초가상황속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격없는 자에게 은혜를 또 베푸신다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58절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합의 모습이 사실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도 살수있다고 교만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무너지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붙들분이 주님 한분인 것을 다시 고백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자격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이런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면...

하나님의 목적은? “이것으로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14절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를 통하여 임하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봅니다.

누구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겠느냐?”라고 묻자,

선지자는 각 지방 고관들의 청년들로 하리라라고 답합니다.

 

또 한 번 그렇다면 누가 전쟁을 먼저 시작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선지자는 왕이 해야 한다라고 가르쳐 줍니다.

 

아합이 이렇게 하나님께 직접 묻는 것이 이제야 정신차렸나? 싶지만

그 중심에서의 회개와 돌이킴이 아니라

지금 이 당면한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때만 잠시 하나님앞에 물어보는 듯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았습니다.

 

너무 우리 모습 아닌가?

위험할때만, 위기때만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있다.

언제그랬냐듯이, 이 위기가 사라지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아합은 내가 필요할때만 하나님의 능력만 이용하려는악한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합은 이름 없는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실제로 행동에 옮깁니다.

 

15절을 보면, 아합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수하니 총 232명이었다고 합니다.

청년 232명이라니, 상당히 작아 보이는 숫자입니다.

 

반면 벤하닷은 32개국의 동맹군을 이끌고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게임이 안 되는 듯한 전력 차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무리를 통해 큰 승리를 이루실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숫자가지고 일하시는 분 아니시다.

이미 갈멜산에서도 엘리야 한 사람을 통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꺾으셨듯이,

여기서도 숫자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승부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의 숫자가 적고, 우리가 약할수록,

하나님이 누구이신지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가 더욱 드러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치는 영적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문제나 상대가 아무리 커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그 결과는 전적으로 달라집니다.

 

16절 이하를 보면, 벤하닷이 동맹한 32명의 왕들과 술을 마시며 전장을 태평하게 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전쟁에 대한 긴장감도 없을 만큼 이스라엘을 우습게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17절에서 얼마 안 되는 수의 이스라엘 군이 성읍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도,

벤하닷은 그들이 화친하러 나왔든, 싸우러 나왔든 전부 사로잡아라라고 명령합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태도를 보이죠.

 

하지만 이어지는 19-20절에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고관의 청년들이 나가서 적군을 치자, 아람 군대가 갑자기 도망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술에 취해 정신이 흐릿했던 데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두려움이 덮친 것이겠지요.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을 추격했고,

결국 벤하닷은 말 타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21절에서는 아합 왕이 아람의 말과 병거를 치고 아람 사람을 크게 격파했다는 말로

이 전쟁의 승리를 확정해 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승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선지자가 약속한 승리는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헛된 말씀이 아닙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람은 대군이었고 이스라엘은 청년 232명과 나머지 7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도 상황과 스펙만 보면 상대가 안 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숫자로 일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부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말씀을 주시는 이상, 승리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그 약속을 온전히 붙들고, 날마다 기도의 무릎을 꿇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걸음을 내딛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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