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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죽은 자들이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고전 15:35-58)
 
[3월 19일] 죽은 자들이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고전 15:35-58)
2025-03-18 16:53:57
손병호
조회수   20

 

 

35절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바울은 죽은 자들이 어떤 몸으로 부활할지를 대답하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고깃덩어리에 불과한데 육체가 무슨 수로 부활을 한단 말이냐?’

이처럼 육체를 악하고 천한 것으로 여긴 영지주의자들에게 '부활' 개념은 트집 잡기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바울은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합니다.

 

부활한 몸, 즉 부활체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것이기에

유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을 얻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부활을 부정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장 자연만 봐도 그 가운데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과 신비로움을 인간이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현상이거나 혹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만 모를 뿐 세상은 너무나 거대하고 놀라운 신비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 못 할 뿐 주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어제 우리가 나눈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슨 영인 상태로 오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육체가 돌아가셨고, 다시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 전과 분명히 다른 영광스러운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의 육체가 십자가 이전과 다르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21:4) 부활하신 주님을 제자들이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20:14)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하신 주님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코 앞에 서 계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들이 멀리서만 주님을 보던 무리도 아니고 최측근인 제자들이고

그들이 늘 바짝 붙어 따라다니던 주님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성경의 기사들은 예수님의 외모나 외형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이전과 이후가

분명히 어떤 영광스러운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입니다. 그 이상은 성경에서 침묵하고 있기에 우리가 추측만 할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인간이 무지함으로 다 모를 뿐, 분명히 부활은 있고 몸으로 부활하며

그 몸의 상태가 일반적인 인간의 몸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벽과 문을 그냥 뚫고 들어오십니다.

간단한 물리학 개론만 배워도 알 수 있는 이야기지만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시간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현상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일 뿐입니다.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는 것일 뿐 현상이 변하고 공간이 변하고 물질이 변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간 이전에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느냐 하는 질문도 어찌보면  성립불가능한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순수과학의 관점으로만 봐도 시간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충분히 존재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런 최소한의 공부를 다 무시해 버리고 근본주의, 문자주의에 매달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면 세상은 우리에게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들을 전도하고 싶다면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대단한 공부가 아닙니다. 최소한의 공부입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합니까?최소한의 배려를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만이 여전히 그 제한선 안에 있을 뿐주님께서는 원래의 모습, 영광스럽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부활한 우리 인간 또한 더 이상 이 세상의 제한선 안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하시고 있습니다.

 

현세의 공간과 시간 같은 중요한 개념까지 부활 앞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인간 세상의 근본적인 고정관념가장 밑바닥에서 인간 세상을 받치고 있는 개념까지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22:30) 사람들이 더 이상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유치한 개념이 아닙니다.

인간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결혼까지도 뛰어넘는,

(결혼이 있어야 가정이라고 할 수 있고, 부부 사이가 있어야 자녀도 낳는 것 아닙니까결혼이 없다면 가정도 자녀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생각을 완전히 초월한, 인간이 생각하는 관계를 완전히 초월한 새로운 관계가 펼쳐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치 아이가 집과 학교와 약간의 친구만 알고 지내던 학창 시절을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인간관계가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관계들이 내 인생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수많은 선후배와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은사들의 등장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직원, 거래관계, 유익한 관계, 불필요한 관계 등등

갑자기 인간관계의 차원이 1, 2차원에서 3, 4차원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확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 어디 이런 관계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맞이할 충격파는 아마 이것보다 더할 것입니다.

바울은 편지의 앞부분에서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우리의 앎이, 우리의 관계가 지금은 불완전하지만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때에는 온전해진다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39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짐승의. 새의. 물고기의. 육체요

그래서 부활은 신비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이 주제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씨를 뿌리고 나면 시간이 지나 다른 형체가 나타납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눈으로 봐서는 예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하고 그 사이에서 또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이 신비 아닙니까?

이처럼 씨와 같은 현재 우리 인간의 몸은 죽은 후에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의 신비의 영역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53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부활의 몸은 영광스러우며 신령한 몸입니다.

육신은 어차피 쓸모없으니 영혼 개념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의 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지주의자들의 개념이 얼마나 편리한 개념입니까?

- (56) 육체가 타락하고 저급하니 아예 버리고 극단적으로 금욕주의자가 되든가,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뜻하는 죄가 마음대로 휘두르는 그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금욕주의자가 되고 율법주의자가 될수록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진다는 진리입니다.)

- 극단적으로 쾌락주의자가 되든가 하면 속은 편하고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를 끌어안고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몸으로 부활하셨고 이 세상의 몸과 연속성을 가졌지만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몸, 부활체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부활 논쟁에서 우리는 바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의 의지를 통해

미혹의 영이 여전히 날뛰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견고하게 붙잡아야 할 믿음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미혹의 영은 몸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간단해지지 않습니까?

주일의 예배는 주일로 남겨두고 오로지 교회 교인, 일요일 교인으로만 남는,

몸을 포기한, 삶을 포기한, 지식만 그득한 영적 영지주의자로 남으라고 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이 = 삶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우리를 자꾸 설득하려 합니다. 부활을 버리라고 합니다.

세상과 씨름을 시작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삶에서 자꾸 적용하려 하면 힘듭니다.

그러나 다 버리면 아주 간단해집니다. 얼마나 큰 유혹입니까?

 

그러나 부활은 열매입니다. 실재(實在)입니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자기의 몸을 다 찢어지도록 내어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생각을 양보한 것이 아닙니다. 이념이나 사상이나 의지를 희생한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자기의 몸을 죽도록 내어주셨습니다.

부활은 우리를 헛것으로 이끌고 가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철학이나 사상이나 종교나 학문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구원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48절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우리는 죄인인 아담의 형상을 입은 흙에 속한 자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형상을 입게 된 하늘에 속한 이들입니다.

누구의 능력입니까? 그 아들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이며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인 신비의 영역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또한 부활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 사순절을 경건하게 보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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