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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왕상 20:22-34)
 
[4월 3일]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왕상 20:22-34)
2025-04-02 19:16:55
최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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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아람의 벤하닷 왕 사이에 벌어진 전쟁 중

두 번째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시지만,

그런데 아합왕이 승리 이후에 어떻게 하나여전히 하나님을 외면한다.

우리 인생에 주어진 싸움도 조심해야 될것이, 승리뒤에 자만해서는 안된다. 

더욱 겸손하게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는 믿음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 아합왕과 벤하닷 왕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주시는 깨달음을 붙들고자 합니다.

 

먼저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통해 아합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전쟁 이후에 찾아온 이 선지자는 아합왕에게

"스스로 힘을 기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준비하라. 곧 아람 왕이 다시 쳐들어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합왕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이미 아람이 언젠가 다시 침략할 것을 아시고 미리 경고하신 거예요.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이제 좀 쉬나?' 싶으면 또 다른 시험이 찾아오고,

그 시험을 이겼나 싶으면 다른 형태의 유혹이 오는 법이지요.

 

그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되나?
사람들은 어떤 왕이 힘이 더 센지, 어느 나라가 더 부유한지,
병거와 말이 얼마나 많은지 계산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런 외적 조건이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면 이기고, 막으시면 막히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계산법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 참된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23절부터는 아람 쪽 진영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람의 왕 벤하닷과 신하들은 자신들이 1차전쟁의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기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의 신이라서 우리가 산지 전투에서 졌다.

그렇다면 평지에서 싸우면 우리가 유리하지 않겠느냐?”라고 판단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 하나쯤으로 여겼던 거예요.

세상은 하나님을 제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나 역사하시지, 회사나 일상에서까지 영향력이 있을까?

하나님이 내 직장 문제나 가정 문제, 재정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예배당 안이든 밖이든, 산이든 평지든 어디서든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지형이나 환경에 가두어질 수 없으신 분입니다. 

아람이 이것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의 전략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아람은 2차 전쟁에서 군대를 대대적으로 다시 충원하여 전쟁에 임합니다.

그들은 이제 제대로 준비했으니 평지에선 틀림없이 이기겠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고 철저하게 준비했어도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쪽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보게 됩니다.

전쟁에 유리하다고 여겼던 아벡 평지에서 이스라엘과 붙게 됩니다(26).

이스라엘 군대는 숫자로 보아도 매우 적었고, 말씀에 보시면 염소 두 떼같이보잘것없어 보이는 정도였습니다(27).

 

반면 아람은 평지를 빼곡히 메울 정도로 대규모 병력을 앞세웠습니다.

28절에 또다시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내가 이 큰 무리를 너희 손에 넘기리니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을 얕보고 제한했던 아람의 생각이  철저히 무너질 것을 선포하신 거예요.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전쟁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아람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전쟁은 나 하나님이 주관한다. 내가 여호와임을 보여 주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메시지였던 거죠.

 

결국 7일째 되는 날 전투가 시작되자,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 보병 10만 명을 쳐부수고(29),

남은 27천 명 역시 성벽이 무너져 다치며 패배하게 됩니다(30).

그 뒤 벤하닷 왕은 도시의 골방으로 숨는 신세가 됩니다.

 

숫자나 지형, 모든 전략면에서 아람이 앞서 있었지만,

최후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31절부터는 전쟁이 완전히 기울자, 벤하닷이 이제 살길을 모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하들이 이스라엘 왕들은 인자하니, 우리가 스스로 항복해 사정을 하면 살 길이 있을 것이다라며 꾀를 냅니다.

그래서 벤하닷과 신하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머리에 밧줄을 두른 상태로 애걸하며 항복 의사를 밝힙니다(32).
 

그런데 아합왕은 뜻밖에도 그가 아직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다!”라고 선언합니다.

곧바로 벤하닷을 살려주고, 자기 병거에까지 태워 대등한 왕으로 대우해 주지요.

 

우리가 보기에 이 장면이 불편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인데,

아합왕이 전쟁의 주인인 척하며 권한을 멋대로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전리품과 포로에 대한 결정권을 자기 권력이라 여겨,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벤하닷과 조약을 맺습니다.

겉으로 보면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윈윈 조약같으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에 인간적인 계산만 앞세운 처사였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난 이후가 훨씬 더 중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직장에서 승진하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일도

분명 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승리이후에 과연 하나님이 더 드러나고 계신가요?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예배하며, “이 모든 승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당당히 고백하고 있나요?

이 부분을 놓치면, 결국 내가 주인 자리에 앉게 됩니다.
한순간 높아진 것 같다가도 급격히 무너질 수 있어요. 우리의 믿음은 결코 과거의 은혜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을 더욱 알아 가며, 그분 앞에 엎드리는 계속적인 예배와 순종되어야 합니다.

 

은혜받았을 때, 큰 문제를 해결받았을 때, 그걸 내 공로인 양 가로채서는 안 됩니다.

아합왕은 정확히 그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대로,

결국 아합은 더욱 깊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치닫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한 번의 승리를 경험했을 때일 수 있습니다.

그 승리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몰락이 시작됩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이전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신앙 성숙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겸손히 엎드리고,

주인 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제안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맙시다.

그 어떤 영역도 하나님보다 클 수 없고,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제약할 수도 없습니다.  

, 아합왕처럼 한 번의 큰 은혜로 모든 것을 이룬 양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주님을 예배하는 자,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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