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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1-11)
 
[3월 17일]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1-11)
2025-03-17 00:00:00
손병호
조회수   20

 

 

우리는 고린도교회가 마주한 여러 문제와 씨름하는 교인들과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경의 정신에 근거해서 권면하는 사도 바울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들의 연속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부딪히는 문제는 끊이지 않고 심지어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난의 시대를 보내는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의 모범을 봅시다.

 

복잡한 문제에 직면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도는 부활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제 우리가 사흘에 걸쳐 살펴볼 고린도전서 15장은 장 전체가 부활을 다루는 장입니다.

바울은 편지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문제를 하나씩 풀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명확하게 하자는 말입니다.

(3)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4) 장사 지내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5) 열두 제자와 (6) 수많은 증인에게 자기를 보여주셨으며 (7) 나에게까지 나타나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전해야 할 메시지는 바로 부활입니다다시 살자는 생명의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초대교회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살한 이후 그를 대신할 사도를 뽑은 이유도 (1:22) 예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고 할 만큼,

(여기에서 사도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그는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활은 교회가 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임이 분명합니다.

 

고린도교회처럼 한국교회도 힘을 잃고 교인이 빛을 잃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활의 메시지가 약해져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 공부하려고 학교로 모았는데 공부하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학생입니다.

- 일을 하려고 회사로 모았는데 일을 하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직원입니다.

- 부활을 전하라고 교회로 부르셨는데 부활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교회로서의 생명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부활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 하는데 부활을 빼고 무슨 말을 한단 말입니까?

 

이 사실을 잘 아는 마귀는 부활을 아예 빼버리거나 약화함으로써 복음을 무력하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신앙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의 마음 안에 영원히 살아있다. 영생은 그런 것이다 는 식으로

부활의 본질을 흐리는 세상의 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지어 교인 중에서도 부활과 재림의 개념이 흐릿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하냐는 투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예수를 그렇게 열심히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와 다를 것이 없이 똑같이 죽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믿어야 한단 말입니까?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주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이 모든 일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부활) 교회의 뿌리를 다 무시하고 (재림) 교회가 뻗어나갈 방향을 지워버린다면 지금 교회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주님은 정말로 부활하셨고,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1-11절에서는 부활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라고 웅변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으나 12절에서) 아직도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서 부활을 의심하는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심한다고 하니까 마음 안에서의 어떤 소극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심은 곧 삶이고 결정입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절 너희가 받은 것이요...2절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1절에서 받았다. 라는 말과 2절에서 믿었다 라는 말은 동의어입니다.

믿음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지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됩니다.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됩니다. 예수가 죽으신 것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나도 세상을 위해 나의 십자가를 져야겠다. 까지 발전이 되는 것입니다.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지요. 복음이 이끄는 삶입니다.

복음은 무슨 미래의 가정(假定)이 아닙니다. (2) 현재화된 구원입니다.

깨달음과 더불어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의심은 복음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복음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오래 다녔고 이것저것 했다고까지 하지만 예수의 부활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그런 삶입니다.

예수는 부활했다는데 나는 죽어갑니다예수는 생명인데 내 삶은 사망의 파편과 부산물들로 가득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까?

 

2절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결국 복음을 굳게 붙들지 않으면, 즉 완전히 내 삶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것은 헛믿음과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 접두어 []은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무서운 위력의 단어입니다.

손질도 있고 발질도 있지만 헛이 붙는 순간 헛손질, 헛발질이 됩니다.

허공을 가를 뿐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영향력도 없습니다.

헛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쯤 되면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4절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그러나 부활은 사실입니다. 사실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부활이 사실이 되려면 예수님이 확실히 죽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도 아니고 아예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4절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의학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망선고입니다.

심한 구타로 인한 뇌진탕에, 채찍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심지어 창에 찔리고 과다출혈에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엄청났을 텐데

정말 예수님이 강철 같은 몸을 가지고 계셔서 죽지 않고 겨우 살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아무런 구호나 치료 조치 없이 사흘을 서늘한 무덤 속에 방치했다면

과연 그 사람이 회복될까요, 아니면 죽을까요?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입니다. 사흘은 예수님의 확실한죽음을 말하는 숫자입니다.

 

그분은 확실히 죽으셨고 확실히 살아나셨습니다. 그 복음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삶의 많은 문제와 어려움, 개인의 기도제목, 가정의 난관, 교회의 위기, 나라의 위기 앞에서

(1) 우리가 더욱 단단하게 발을 디디고 서야 할 기초는 복음이며 그중에서도 부활입니다.

(2) 굳게 잡아야 할 것도 복음이며 그중에서도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의 능력과 권세로 저와 여러분을 붙드시고

모든 역경과 환란, 위기를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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