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말씀에서 아달랴의 시대가 무너지고
요아스 왕이 보좌에 앉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제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왕도 세워졌고, 질서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하나님 중심의 나라가 되었는가?”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세요.
2절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이 짧은 한 구절 안에 요아스 인생의 모든 영광과 비극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요아스의 신앙은 여호야다라는 제사장이 곁에서 붙들어 줄 때는 꽤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제사도 잘 드리고 성전도 고치자고 앞장섭니다.
그런데 제사장 여호여다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다~~”
요아스의 신앙은 “누군가의 영향력 안에 있을 때 유지되는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다시 요아스는 우상을 숭배하고,
심지어 자신을 살려준 은인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교회, 훌륭한 목회자, 좋은 공동체, 좋은 환경 안에 있으면
우리도 제법 잘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환경이 사라지면 내 신앙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항상 자신에게 질문해야 되요.
“나는 누구의 신앙으로 살고 있는가?”
특히나 우리 자녀들...
어릴적 부모 손에 이끌리어 신앙생활 잘 했지만
그것이 자녀의 신앙이 되지 않는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호야다가 곁에 없어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광야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자기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의 하나님을 넘어 '나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영적 독립이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 4절과 5절을 보면 요아스가 성전을 수축하려는 열망을 품습니다.
이전에 아달랴때 성전이 파손된채로 그대로 방치했거든요.
4절 그 후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고
5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해마다 너희의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 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한지라
근데 신기하다. 5절 끝에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한지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왜 레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았을까요?
열왕기하 12:6절에 보면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무려 23년이 지체되도록 미적미적 거립니다.
왜 그럴까요? 레위 사람들은 성전 전문가들입니다. 매일 성전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성전에 가장 가까이 있다 보니깐
성전이 파손되어 있는 것에 가장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벽이 갈라지고 기와가 내려앉아도
"늘 그랬는데 뭐", "나중에 하면 되지"라며 익숙함의 덫에 걸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익숙함을 탈피해야 합니다.
지금 예배가 죽어가고, 기도가 끊기고, 내 안에 거룩한 열망이 사라져가는데
"난 모태신앙이니까", "난 직분자니까"라는 신앙의 외적 껍데기에 안주하는
영적 태만이 우리를 내버려두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 심령의 부흥은 언제 찾아오는지 아십니까?
'익숙한 것들'과 결별할 때 온다.
요아스가 선택한 방법이 기가 막힙니다.
8절 이에 왕이 말하여 한 궤를 만들어 여호와의 전 문 밖에 두게 하고
9절 유다와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정한 세를 여호와께 드리라 하였더니
성전 문밖에 '궤' 하나를 만듭니다.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대신,
모세가 광야에서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자원함으로 예물을 드리라고 선포합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0절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지니라
요아스는 율법으로 정해진 반 세겔의 세금을 강요하면서 걷은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 자발적인 사랑' 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들은 성전 수리라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나도 하나님 나라를 재건하는 '축제'에 초대받았어!!! 이 기쁨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느순간 우리의 신앙생활이 왜 힘들어지기 시작합니까?
자원함이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봉사도 의무, 십일조도 의무, 예배도 의무가 되면 그것은 고역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에 '기쁨'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면
다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나라의 재건의 놀라운 사명에
내가 하나님께 초대받았다는 이 기쁨이 다시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13절 기술자들이 맡아서 수리하는 공사가 점점 진척되므로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하게 하니라
여러분, 이 장면을 잘 보셔야 합니다.
성전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진 것이 아니듯이
성전이 한 번에 회복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점점 진척된다.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이게 진짜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재건하는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뜻을 두십시오. 다시 결단하십시오.
기쁨으로 동참하십시오.
우리 마음의 성전도 하나님께서 점점 회복시켜주실것이고,
우리 공동체도 이전보다 점점 더 살아나는 우리 교회될줄 믿습니다.
| 번호 | 제목 | 설교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2923 | [3월 21일]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헌신의 기쁨 (대하 24:1-14)_ | 최종운 | 2026-03-20 | 3 | |
| 2922 | [3월 20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대하 23:16-21) | 최종운 | 2026-03-19 | 5 | |
| 2921 | [3월 19일] 7년의 기다림, 마침내 왕이 나타나다 (대하 23:1-15) | 최종운 | 2026-03-18 | 8 | |
| 2920 | [3월 18일]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2:4-25) | 손병호 | 2026-03-16 | 13 | |
| 2919 | [3월 17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 1:24-2:3) | 손병호 | 2026-03-16 | 13 | |
| 2918 | [3월 16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23) | 손병호 | 2026-03-15 | 20 | |
| 2917 | [3월 14일] 나를 망하게 하는 조언, 나를 살리는 말씀 (대하 22:1-12) | 최종운 | 2026-03-13 | 21 | |
| 2916 | [3월 13일] 나는 사람들이 아까워하는 인생이었습니까? (대하 21:1-20) | 최종운 | 2026-03-12 | 20 | |
| 2915 | [3월 12일] 찬양이 시작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대하 20:14-30) | 최종운 | 2026-03-11 | 18 | |
| 2914 | [3월 11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1-21) | 전소리 | 2026-03-11 | 20 | |
| 2913 | [3월 10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소망 (계 21:1-27) | 전소리 | 2026-03-09 | 19 | |
| 2912 | [3월 9일]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가 됩시다 (계 20:1-15) | 전소리 | 2026-03-09 | 25 | |
| 2911 | [3월 7일]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 | 최종운 | 2026-03-07 | 22 | |
| 2910 | [3월 6일]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대하 20:1-13) | 최종운 | 2026-03-05 | 27 | |
| 2909 | [3월 5일] 징계 너머의 회복 (대하 19:1-11) | 최종운 | 2026-03-04 | 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