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가 얼마 전까지 요한계시록을 보았습니다만
창세기 1장으로부터 시작하는 창조 기사는 계시록만큼이나 논쟁이 뜨거운 장입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 뿐만 아니라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도
창세기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창세기는 더더욱 많은 사람이 보겠지요.
특별히 과학의 눈으로, 역사의 눈으로 창세기를 보는 사람들은 딴지를 많이 겁니다.
오늘은 과학과 역사의 눈으로 창세기,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현대과학이 지구와 우주의 어두웠던 영역을 계속 밝히고 있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될수록
창세기와 맞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서 신앙을 가진 우리로서는 참 난감합니다.
우리가 굳이 대단한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기본적인 논리나 자연법칙과도 어긋난다는 점은 엄중한 사실입니다.
첫째 날을 봅시다.
(3절) 이날 창조된 빛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무엇입니까?
(14절) 하나님께서 광명체, 즉 빛나는 별을 만드신 날이 넷째 날입니다.
첫째 날이면 별도 하나 없을 시점인데
무한한 암흑인 우주, 그 거대한 공간을 비추는 빛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끼리 하는 말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결코 하나님의 언어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입장에서는 천박하고 더딘 인간의 언어로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천국의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세상의 언어를 무시한 채로 그들에게 다가가면 전도의 문은 더 닫힐 뿐입니다.
성경에 의문을 제기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냥 믿으라’는 식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말로 함께 대화를 나눌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 바울은 헬라 철학자 무리와 1대 다수로 논쟁이 가능할 정도로 당대의 지성인이었습니다.
- 후대의 위대한 전도자와 선교사 중에서도 고도의 지성인들은 즐비합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처럼 치열하게 세상과 부대껴야 복음 전파의 문이 열립니다.)
둘째 날을 봅시다.
(6절) 물 가운데에 궁창, 즉 하늘(sky)처럼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구 전체를 둘러싸는 물층이라니, 중력을 무시한 거대한 물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요?
(7절) ‘위와 아래’라는 개념 자체가 중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궁창 위의 물이라는 표현은 이런 물리법칙과 맞지 않습니다.
그 엄청난 양의 물이 무슨 수로 허공에 떠 있단 말입니까?
(성경과 안 맞는다고 해서 자연법칙이 별것 아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 위에 계신다는 식으로 대충 눙치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자연법칙도 하나님의 엄연한 창조물입니다. 그 자연법칙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주라는 거대한 허공에서 땅에 발을 붙이고 숨 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성의 없이 넘어가 버리면 세상은 교회와의 대화를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셋째 날을 봅시다.
(11절) 하나님께서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신 날이 셋째 날입니다. 그런데
(14절) 우리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광합성이 필수입니다.
빛이 없이는 자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면 셋째 날 창조된 식물들은 넷째 날 창조된 해(sun)가 없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광합성을 하고 성장을 했단 말입니까?
넷째 날을 봅시다.
(14절) 계절(season)과 날(day)과 해(year)를 구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전까지 첫째 ‘날’, 둘째 ‘날’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날 개념으로 이런 구절들을 이해한다면
셋째 날 하루 만에 식물들이 다 자라서 온 땅을 덮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 다른 단어도 아니고 같은 단어를 왜 헷갈리게 쓴단 말입니까?
아직 넷째 날밖에 되지 않았고, 20절도 채 읽지 않았는데
하루에 한 개씩 치명적인 오류가 보입니다. 완전히 엉터리로 보일 지경입니다.
삐딱한 마음을 먹고 따지려고 들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 의문은 과학책을 좋아하는 초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제기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러면 창세기는 대체 무엇입니까? 재미있게 읽는 신화(神話)일 뿐입니까?
신앙인인 우리는 다 신화에 매달려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신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역사의 눈으로 보는 창세기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를 이야기하는 책은 우리가 아는 성경 창세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의 수많은 신화와 설화는 세상의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창세기가
기존 다른 민족들의 창조 설화와는 다른, 독보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민족의 신화나 설화에는 창조신이 둘, 셋, 혹은 그 이상의 숫자입니다.
다양한 신들이 서로 협력한다든지, 전쟁한다든지, 사랑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얽히고 섥힌 와중에 그 부산물로 세상이 창조됩니다.
어떤 신화는 유일한 창조신이 있긴 한데, 무슨 재료를 사용해서 창조했다든지 식으로
반드시 외부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 재료는 어디에서 왔단 말입니까?
인간에 대한 관점도 성경의 창세기는 다른 신화와 비교했을 때 독특합니다.
다른 신화에서 인간은 창조의 과정 가운데 엉겁결에 나온 부산물이거나
(마치 진화론 강의를 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신이 의지를 가지고 만들기는 했으나 인격적인 교제라는 개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치 주종관계, 심지어 적대적 관계 같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엉겁결에 창조는 했으나 신은 인간을 없애버리려 한다. 인간도 신에게 저항한다.
식의 이야기들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다른 민족의 신화와 비교했을 때 성경의 창세기는 독보적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엉겁결에 만드신다든지, 다른 누군가와의 협력도 아니고 투쟁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관점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신의 인격적인 교제 대상이라든지,
인간이 신의 사랑을 받고 신의 권한을 위임받아 세상을 다스린다는 개념은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 독보적인 점입니다.
창세기를 과학책으로 보면 과학적인 오류가 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안 맞는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닙니다. 과학 그 이상을 이야기하는 말씀입니다.
(과학적으로 보이는 증거를 성경에서 찾아서 이 구절이 이런 사실이라는 식으로
논박할 일이 아닙니다. 어쩌다 얻어걸려 맞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많습니다.
과학책이 아닌 책을 가지고 과학 이야기를 하면 어쩌자는 말입니까?)
창세기를 역사책으로 봐도 역사적인 오류는 즐비합니다.
오늘 말씀만 해도 앞뒤가 안 맞는데 너무나 태연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뒤로 가면 연대기나 족보도 구멍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창세기는 역사책이 아닙니다. 역사 그 이상을 이야기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는 과학도 아니고 역사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며,
그 인간에게 능력과 사랑을 부어주시며 온 세상을 잘 운영하라는 엄청난 사명을 주셨다는
은혜의 선언입니다. 세상의 신화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오류가 보입니까? 성경이 사실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
내가 살아 숨을 쉬고 있고, 우주가 정교하게 운행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입니다.
기독교에 아무리 적대적인 과학자들도 우주 자체가 결코 생명이 살기 쉽지 않은 환경인데
인류가 파멸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다, 우연이다,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정도로 정리하면서 두 손 두 발을 들고 있습니다. 굴복에 가까운 인정입니다.
인간의 오만과 오류까지도 뛰어넘어서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온 우주를 뒤덮는 창조주의 의지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줄로 믿습니다.
창조는 선언입니다. 선언은 내가 받아들이면 나에게도 유효한 사실이 됩니다.
- 어두움 가운데 빛을 선언하시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창조의 빛으로 내 삶을 비추실 줄로 믿습니다.
- 하늘과 물의 위 아래를 바로 잡으시고 질서를 주시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창조의 질서로 내 삶을 잡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 세상의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해보다 먼저 등장한 식물의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세상의 논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을 푸른 생명으로 뒤덮을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을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은 (22절) 번성하고 충만한 것입니다. 생명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창조의 능력과 생명을 받아서 마음껏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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