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저자는 안식일까지 기록하고 난 다음에 시계를 앞으로 돌려서 인간의 창조에 대해 다시 한번, 좀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창조된 존재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더 우월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들을 잘 다스리고, 사랑하고 목양하는 사명이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졌고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라고 정의한다는 점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인간 창조의 특별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인간 창조의 특별함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태초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7절입니다.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령(生靈)’으로 번역된 단어를 직설적으로 풀자면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동물도 살아있지만 인간의 존재방식과는 엄연히 다름이 창조 기사에서 여러번 드러납니다.
사람은 동물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단순한 피조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숨을 직접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과 직접 연관이 있고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숨을 거두어가신다면 인간은 그저 흙(원어에서는 먼지)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로 만들어진 인간이기에 그의 죽음은 즉 관계의 단절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인간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부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가족,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인간관계가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태초에 의도하신 것과는 거리가 있는 모양들입니다.
8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은 특별히 사랑하시는 인간을 특별히 준비해 둔 자리로 이끌고 가십니다.
(9절) 그 동산은 먹을 것으로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충만합니다. (10절) 강은 에덴에서 솟아나서 온 땅으로 흘러갑니다.
계시록에서도 본 것처럼 숫자 4는 동서남북 사방, 온 땅을 뒤덮는 이미지로서의 수(數)입니다.
에덴에서부터 시작된 물이 온 땅을 뒤덮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온 땅에 충만합니다.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그를 특별히 사랑하며, 특별한 자리에 두며 그와 함께 교제하며
영원히 기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9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뒤의 3:22에서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생명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처음부터 죽는 존재로 지어졌다는 점을 알게 합니다.
처음부터 영생하는 존재였다면 생명나무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이 생명나무는 성경 내내 침묵하다가 세상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7과 22:2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니까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인간의 독자적인 판단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기준을 인간 스스로가 결정하는 힘,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인간 스스로 자기 중심적인 독단적 판단을 하는 능력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핵심은 그 두 나무가 대체 무슨 나무여서 이런 힘을 발휘하는가, 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들이 하나님의 명령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태초의 인간은 그 나무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는 죽을 수 있는 존재다, 나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따르며 섬기고 교제해야 한다,
그분 안에 있을 때 참된 기쁨이 있다. 떠올렸을 것입니다.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16절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15절) 소명을 주시고 (16절) 허락하시는 부분도 있으시고, (17절) 금지하시는 부분도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명료합니다.
에덴은 무위도식하는 곳이 아니라 노동해야 하는 곳이며 멋대로 살아도 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 창조의 질서를 지킬 때 거기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19절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하나님은 동물도 인간처럼 흙을 빚어서 만드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아담에게 데려와서 아담이 그들의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작명,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지배권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갔습니다만,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일일이 이름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담의 차례입니다.
여자의 창조 과정에서의 이야기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에 있습니다.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며 동등한 동반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절) 돕는 배필이라는 표현은 구원하는, 짝을 이루는, 대등한, 동등한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말입니다.
24절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5절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한 몸은 단순한 육체적 결합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삶의 방식, 생각, 감정, 정신, 영혼이 모든 면에서 하나를 지향해야 합니다. 전인적인 결합입니다.
25절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이를 잘 보충 설명해 줍니다.
죄가 없을 때의 모습입니다. 단절이 없을 때의 모습입니다. 소통과 생명으로 충만할 때의 모습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하나님께서 처음 디자인하신 모양대로 잘 유지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옷은 가림입니다. 선입견입니다. 차이입니다. 차별입니다.
옷이 없다는 말은 거짓도 오해도 차별도 없는 기쁨만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회복하게 될 태초의 상태입니다.
부부만이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오해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되면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고 천사들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상에서는 부부관계가 가장 가깝고 친밀한, 그리고 가정의 시작인 인간관계의 기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부부관계까지도 초월하는 친밀한 관계, 연합의 관계가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의 교제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깊은 사랑으로 충만한 교제를 누리시기를 바라고,
무너진 학교와 일터의 인간관계가 소통과 생명으로 회복되기를 바라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양을 세상에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창세기의 놀라운 생명과 축복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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