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우리는 요한계시록 강해의 마지막 장에 도달했습니다.
요한에게 계시해주신 것을 그가 서신으로 기록한 편지를 통해
우리는 사탄이 참으로 정교하게 하나님인 척 하며
우리 삶에 찾아온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들 뿐인 세상 한 가운데서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깨어 있으라는
소망을 갖게 하심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마지막 장입니다.
계시록 22장은 그 모든 여정의 종착지입니다.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켜온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이 본 것은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의 강입니다.
이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옵니다.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은 하나님의 생명 자체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생명나무는 창세기 3장에서 등장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인간은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을 다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요한이 보니, 그 나무를 다시 보여주십니다.
창세기에서 닫혔던 그 문이,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열립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잃어버린 것,
막혔던 길이 다시 열리는 이야기이며
그 회복을 이루신 분이 바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나무는 달마다 열매를 맺습니다. 계절이 없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그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합니다.
이 땅은 살면 살수록 참 많은 상처와 고통이 우릴 괴롭힙니다.
늘 목이 마르고 육신과 영혼의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나라에는
우리 모든 필요를 채우고도 남을 풍성함 있음을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3절과 4절을 보면,
3절 다시 저주가 없으며...
4절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두 가지가 선언됩니다. 저주가 없어진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본다는 것입니다.
저주가 없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대불림 되어 오던 죄의 고통이 끊어짐입니다.
땀 흘림의 수고와 고통, 죽음과 이별.
이 모든 것의 뿌리는 그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고,
그 결과 영원한 나라에서는 다시 저주가 없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모세조차 구름속의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습니다.
대제사장도 1년에 딱 한 번, 온몸을 떨며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그 얼굴을 직접 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기도할 때, 예배할 때,
말씀 앞에 앉을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것도 고린도전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직은 희미한 거울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고전 13:12).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봅니다. 이것이 영원한 나라의 핵심입니다.
아름다운 성이나 황금 길이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만나는 것, 그것이 하늘나라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7절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환상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직접 들립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말씀이 22장에서만 세 번 반복됩니다.
그런데 이 속히 는 몇 년 안에 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라는 의미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때가 시작되면, 그 전개는 빠르고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2,000년은 기다림의 시간이 아닙니다. 은혜의 시간입니다.
12절에서 주님은 덧붙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주님이 오실 때 상이 함께 옵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통해 봐왔던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겠습니까? 짐승의 표를 거부했다가 사고팔지 못하고,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자처럼 보였던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새벽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줄 상이 있다. 너희의 믿음을 내가 기억한다.
13절에서 주님은 자신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주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모든 시간의 주관자이시며
전지 전능하신 분이심을 스스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주님을 따라하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또한 그 주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인생을 허송세월하며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이 오시는 그 날 하나님의 성 밖에서 슬피 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는 상을 받습니다.
거룩하게 두루마기를 빨아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자들에게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은혜와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자격을 받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시는 다윗의 자손이시며,
밝에 빛나는 새벽 별이십니다.
1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오라. 신부 된 교회가 말합니다.
오라.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도 함께 외칩니다. 오라.
값이 없습니다. 생명수는 공짜입니다. 이미 어린 양의 피로 그 값이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만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초청은 이것입니다. 오라.
하나님은 끝까지, 마지막까지 초청하고 계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이 속히 오리라 말씀하시자, 요한이 즉각 응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짧은 한 마디가 계시록 전체를 읽은 요한의 고백입니다.
두려움이 아닙니다. 간절한 기다림입니다.
주님의 오심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임을 알기에,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성도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는 아직 싸우고, 아직 인내하고, 아직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21절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장엄한 심판과 영광의 환상들이 다 지나고,
계시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은혜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무섭고 어두운 책이 아닙니다.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나는 책입니다.
오늘 22장 말씀이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첫째, 완전한 회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어떤 고난도, 어떤 상처도,
그날의 영광 앞에서는 사라집니다.
둘째,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 보여도,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셋째, 지금 이 시간이 은혜의 시간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초청하십니다.
오라. 목마른 자는 오라.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고난과 상처의 삶이지만 결국 이기는 것은 어린 양이십니다.
그리고 어린 양을 따르는 우리도 함께 이깁니다.
오늘 하루,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나가십시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이 새벽 되기를 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설교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2923 | [3월 21일]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헌신의 기쁨 (대하 24:1-14)_ | 최종운 | 2026-03-20 | 2 | |
| 2922 | [3월 20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대하 23:16-21) | 최종운 | 2026-03-19 | 4 | |
| 2921 | [3월 19일] 7년의 기다림, 마침내 왕이 나타나다 (대하 23:1-15) | 최종운 | 2026-03-18 | 8 | |
| 2920 | [3월 18일]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2:4-25) | 손병호 | 2026-03-16 | 13 | |
| 2919 | [3월 17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 1:24-2:3) | 손병호 | 2026-03-16 | 13 | |
| 2918 | [3월 16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23) | 손병호 | 2026-03-15 | 20 | |
| 2917 | [3월 14일] 나를 망하게 하는 조언, 나를 살리는 말씀 (대하 22:1-12) | 최종운 | 2026-03-13 | 21 | |
| 2916 | [3월 13일] 나는 사람들이 아까워하는 인생이었습니까? (대하 21:1-20) | 최종운 | 2026-03-12 | 20 | |
| 2915 | [3월 12일] 찬양이 시작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대하 20:14-30) | 최종운 | 2026-03-11 | 18 | |
| 2914 | [3월 11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1-21) | 전소리 | 2026-03-11 | 20 | |
| 2913 | [3월 10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소망 (계 21:1-27) | 전소리 | 2026-03-09 | 19 | |
| 2912 | [3월 9일]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가 됩시다 (계 20:1-15) | 전소리 | 2026-03-09 | 25 | |
| 2911 | [3월 7일]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 | 최종운 | 2026-03-07 | 22 | |
| 2910 | [3월 6일]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대하 20:1-13) | 최종운 | 2026-03-05 | 27 | |
| 2909 | [3월 5일] 징계 너머의 회복 (대하 19:1-11) | 최종운 | 2026-03-04 | 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