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요한계시록 7장입니다.
(어제) 6장에서 어린양께서 여섯 번째 인을 떼신 후, 일곱 번째 인이 등장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요한은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 줍니다.
연속되던 심판이 잠시 멈추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환상이 펼쳐집니다.
마치 오페라에서 1막과 2막 사이에 등장하는 막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장은 결코 부수적인 장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록 전체의 목적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시간표를 계산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니라,
종말론적 고난 한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끝까지 이기도록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7장은 사건보다 사람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보다 사람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말씀을 보아야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인, 나팔, 대접이라는 상징적 사건들 사이에서 하나님은 시선을 돌려
누가 보호받고 있는가, 누가 끝까지 서 있는가를 보여 주십니다.
당시 초대교회를 떠올려 봅시다. 사도의 편지나 설교는 대표자가 낭독하면 성도들은 앉아서 함께 들었습니다.
계시록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 7장을 들을 때, 십사만 사천, 큰 무리, 흰옷 입은 무리 같은 표현을 들으며 ‘나도 저 무리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꿈꿨을 것입니다.
우리도 계시록을 사람 중심으로 읽을 때
고난 속에서도 당신의 자녀들을 끝까지 붙드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절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四方)의 바람을 붙잡아...
요한은 먼저 땅의 네 모퉁이에 선 네 천사를 봅니다.
4는 안정감입니다. 보호입니다. 단단하게 받치고 서 있는 기둥을 생각하셔도 됩니다. 동서남북 사방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세계관은 마치 기둥 네 개가 얇고 큰 판인 하늘을 받치고 있고
우리 인간은 마치 그 거대한 식탁 밑에서 땅을 이루며 사는 모양새입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맥락을 볼 때 4라는 숫자는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하려 하기보다는,
(오늘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오히려 성경 말씀을 보니 지구가 평평하다고 외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붙잡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에서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바람까지도 꽉 잡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세상을 여전히 붙들고 운행하시는 주관자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
(3,4절) 당신의 이스라엘에게 도장을 찍어 주십니다.
인(印)침,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소유와 보호의 표시입니다.
내 것이기에 내가 책임진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세상은 요동하고 환난은 거세지만, 나의 자녀들은 우연히 방치된 존재가 아니라고
도장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호란 고난을 전혀 겪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난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붙드신다는 뜻입니다.
물론 고난은 강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더욱 강합니다.
더 강한 은혜이기에 하나님은 모든 고난으로부터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하십니다.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바람까지도 붙잡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9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이어서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를 봅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어린양 앞에 서 있습니다.
먼저 종려 가지부터 살펴봅시다. 종려 가지를 든 모습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한 나라의 왕과 장병들이 대표로 나가서 전쟁을 해서 이기고 돌아왔다고 상상해 봅시다.
노약자들이나 여자와 아이들은 집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운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왕과 장병들이 개선하면 뛸 듯이 좋아합니다. 기념하고 축하합니다.
군인들의 승리가 나라와 백성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나와 상관없는 남이라고 팔짱 끼고 있는 사람은 그날만큼은 아무도 없습니다.
종려 가지를 들고 함께 승리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입니다.
예수의 승리가 교회의 승리이며 교회의 승리가 내 승리입니다.
이 승리를 기뻐하냐, 아니냐는 나의 영적인 국적(國籍)을 말해주는 기준선입니다.
나는 영적으로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 맞습니까?
이 승리는 고난을 피해서 얻은 승리가 아닙니다.
(14절) 죽임 당한 어린양의 모범을 따라 그들 역시 죽음과 다름없는 큰 환난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이렇게 증언합니다. 승리는 고난을 통해 온다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승리하셨듯이 그분을 따르는 교회도 고난을 통과하여 승리합니다.
고난은 회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믿음으로 정면 돌파하여 이겨 내야 할 통로입니다.
다음은 흰옷입니다. 그들이 입은 흰옷은 스스로 깨끗하게 만든 옷이 아니라,
(14절)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된 옷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계시록에서 어린양의 신부가 입는 깨끗한 세마포 옷은 (19:8) 옳은 행실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하기보다, 어린양께 충성된 삶을 가리킵니다.
어린양의 신부에게 최고의 순결은 어린양을 부인하지 않는 충성, 필요하다면 순교까지도 각오하는 믿음입니다.
순금이 제련을 통해 만들어지듯, 그리스도인은 환난을 통해 정결해집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면류관도 없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성경이 말하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환난과 큰 환난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이 시간은 편안함을 선택하지 않고 어린양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은 결국엔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6절) 더 이상 굶주림도, 목마름도, 뜨거운 해도 없을 것입니다.
(17절) 하나님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보다 강한 은혜의 결말입니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승리하셨고 수많은 구원받은 무리가 그 뒤를 따를 것이고
나도 그 무리 안에 반드시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고난보다 강한 은혜를 붙들고,
끝까지 어린양 예수를 따르겠다고 삶으로 고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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