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있다면 반드시 실체가 있습니다.
실체가 없이 그림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창세기 14장에 등장한 멜기세덱을 부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4절)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멜기세덱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브라함보다 더 우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멜기세덱이 낯설 수 있지만 히브리서를 받아서 읽었을 정통 유대인들에게 멜기세덱은 매우 친숙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저자가 멜기세덱을 설명의 재료로 선택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많은 유대인이 율법과 성전, 제사와 제사장에게 소망을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그렇게 목을 매고 있는 존재보다 더 우월한, 더 믿을만한 존재를 이야기하려면
그들에게 친숙한 내용으로 설명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멜기세덱은 구약에서 정보 자체가 잘 없는 신비에 싸인 인물입니다.
(3절) 부모도 누구인지 모르고 족보도 없는 사람이며 아무도 그의 삶과 죽음을 모릅니다.
그런데 창세기 14장에서는 느닷없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그를 설명합니다.
대홍수 후에 노아의 후손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하나님을 향한 제사도 다 끊어지고
어수선한 세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막 부르셨을 때입니다.
하나님 신앙이 여기저기 두루 퍼져있던 세상이 아닌데
난데없이 나타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니, 의아할 뿐입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받고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도 이름난 족장입니다. 힘 있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14장에서 벌어진 부족 간의 대전쟁(오늘날로 따지면 세계대전 같은 느낌입니다)에서 아브라함은 큰 승리를 거둡니다.
얼마나 기세등등했겠습니까? 그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을 헌물하고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십시오.
저자의 말처럼 (7절)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자체가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서열이, 관계가 어떻게 잡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자의 장황한 설명은 멜기세덱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절) 의의 왕, 평강의 왕, (3절) 부모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이런 표현은
결국 멜기세덱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참된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많은 믿음의 영웅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왜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까? 왜 그들의 이야기가 있는 설교를 듣습니까?
왜 그들의 이야기로 성경 공부를 합니까? 왜 이름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교육합니까?
따지고 보면 세상의 위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용감함? 지혜? 통찰력? 휴머니즘? 그런 것들은
굳이 하나님 신앙과 상관없는 세상의 일반적인 위인들에게도 모두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신, 구약성경에서 만나는 믿음의 선배들, 역사에서 만나는
신앙의 영웅들을 기릴 수 있는 이유는, 그리고 기려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자, 중보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대제사장과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기념하고 있는 아홉 분의 순교자들도
신앙과 교회와 교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위대한 이유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놓으신 예수님의 모범,
히브리서에서 수차례에 걸쳐 강조하는 그분의 모범을 따라가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위인들의 덕목은 타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약합니다.
그들의 삶이었을 뿐이고 후세가 위대하다고 기리는 정도입니다.
일반인이 위인처럼 살면 대단하네, 여겨주는 정도이고
필부(匹夫)로 살아도 뭐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그림자는 다릅니다. 위인전과는 권면의 강도가 다릅니다.
나와 세상의 구원이, 생명이 여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아론의 후예인 레위 지파 대제사장들이 이룰 수 없는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인들의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7장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향해,
그리고 믿음이 흔들리고 시험당하는 오늘의 우리를 향해 권면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누구를 의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전통입니까? 여러분의 관례입니까? 경험입니까? 중론(衆論)입니까?
혹은 힘 있는 사람입니까? 이 모든 것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일 뿐입니다.
인간 제사장에게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 또한 다 죽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은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때가 되면 역사의 무대에서 다 퇴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죽음을 너머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예수를 바라보시고 의지하심으로서
오늘도 천국의 소망과 기쁨, 능력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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