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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히 4:1-16)
 
[9월 30일]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히 4:1-16)
2025-09-30 00:00:00
손병호
조회수   22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지 않으면 혼난다! 할 때 그 말의 핵심은 무엇이겠습니까?

a. 나는 너를 혼낼 것이다. 입니까? b. 공부를 열심히 하라. 입니까?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겠지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OO하지 말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벌을 받을 것이다.

경고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의 핵심은

a.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너희는 벌을 받는다. 이겠습니까? 아니면

b. 하나님은 네가 (OO하지 않음으로써) 구원받기를 원한다. 이겠습니까?

경고의 메시지의 핵심은 당연히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1)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있어도 이르지 못할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을 받고도 즉 믿지 않는 자입니다. 1절의 핵심은

a.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라는 경고이겠습니까,

b.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안식에 들어오기를 원하신다. 이겠습니까?

 

우리는 말씀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말씀도 계명도 모두 짐이고 경고고 부담이고 심판일 뿐입니다.

- 잔머리만 굴려서 벌을 면하려고만 하는 제자를 보면 선생님이 과연 행복하겠습니까?

- 걸리지 않으려고, 혼나지 않으려고만 용쓰는 자녀를 보면 부모가 과연 기쁠까요?

 

오늘 말씀의 핵심은 심판이 아니라 초대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안식에 초대하십니다.

심지어 이 안식은 (3)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우리에게 열려 있는 기회이지만

하나님의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은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1절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인간은 늘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과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인생은 대부분 해야만 하는 것들로 점철(點綴)되어 있음에도 하고 싶은 것은 참 달콤해 보입니다.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은 그래도 수준이 나은 사람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해야만 하는 일은 파악 자체를 못하고

늘 하고 싶은 것만 쫓아가다가 자신과 주변 사람을 모두 불행으로 몰고 갑니다.

 

인간은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워하는 내면을 한 꺼풀만 벗겨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실제로는 그 욕망은 이루어져도 그만, 안 이루어져도 그만인 것이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해치고 죽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본인만 모릅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거짓된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엄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신실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우리를 참된 안식으로 데리고 가기 위함입니다.

 

과거 광야의 이스라엘이 그 모형이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한 세대가 전멸하는 무서운 심판을 당하고 겨우 다음 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히브리서를 받아보는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보다도

더 우월하신 예수님은 과거 광야의 이스라엘의 실패를 뛰어넘어

영적 이스라엘, 새로운 이스라엘을 참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이 정도라면

우리 또한 참된 안식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서 말하는 것처럼 두려워할 정도로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단어가 두려움이라고 하니 부정적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이 두려움은 사실 우리는 살리는 두려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해야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11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절을 보면 참된 안식이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순종입니다.

왜 순종이 안식이란 말입니까? 순종은 내가 힘들고 피곤한 이야기 아닙니까?

하나님께 나를 맞춰야 하는, 내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삶 아닙니까?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당당하게 순종이 안식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2,13절을 유명한 말씀으로 알고 사랑하고 암송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십시오. 12, 13절을 드러내기 위해 히브리서 4장이 있는 것입니까, 4장의 설명이 이어지다 보니 12,13절이 나오는 것입니까?

심지어 12,13절은 핵심 구절이나 중요 내용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3~4~5장까지 전체를 흐르는 큰 물결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말씀 자체가 하잘것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핵심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가장 앞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드러내신다면 드러내어서

a. 망신을 주시고 수치스럽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b.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시고 구원하시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구원이기에 우리의 속마음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실제로 주인이라고 믿고 있었던 존재가 누구인지 결국 다 드러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모든 부분에서 인정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는 모두가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내 신앙은 내 말이 아니라 삶이 증언합니다.

- 내 물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는 입으로 하는 고백이 내 믿음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내 지갑이 할 것입니다. 내 씀씀이를 아무도 모를 것 같습니까아무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내가 있을 뿐입니다.

- 내 자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는 입으로 하는 고백이 내 믿음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내 자녀가 직접 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정확한 거울입니다.

   내가 심고 뿌린 그대로 자녀를 통해 거두게 될 것입니다. 원망할 것 하나 없습니다.

- 삶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라는 입으로 하는 고백이 믿음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삶의 분기점에 내가 하는 결정은 내가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지 여과 없이 모두에게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이 수군거리지만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냐' 그 누구도 당신에게 와서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입니다.

 

연약한 우리, 흔들리는 우리에게 히브리서의 저자는

(14)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소개합니다. 그분은

(15)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참 인간이셨기에 인간과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이스라엘처럼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의지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힘입어 (16)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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