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관련한 재앙부터 시작해서 땅과 짐승과 사람이 모두 고통을 받고
하늘의 기상이변까지 재앙은 점점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천체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처음 몇번 재앙은 마술사들도 짐짓 흉내나 내는 척했지만 이제는 웅크리고 벌벌 떨 뿐입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까지 처절한 수업이 계속되는데도 바로는 아직까지 배운 것이 없습니다.
온 세상이 바로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로를 위한 하나님의 아홉 번째 수업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고삐를 더 강하게 조이십니다. 단도직입적입니다.
이전의 재앙들처럼 내 백성을 보내라 는 안내도 없고, 경고의 말씀도 없습니다.
과정을 건너뛰고 재앙이 바로 쏟아집니다.
창세기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둠과 혼돈 가운데
“빛이 있으라(창 1:1)” 선포하시면서 역사의 시작을 열어젖히셨습니다.
위대한 시작이었고 생명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모세를 통해 흑암을 불러오십니다.
혼돈도 질서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많은 신(神)을 섬겼으나 그 중에서도 태양신을 가장 으뜸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어둠을 깨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태양신은 부활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믿었고
태양이 있기 때문에 모든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처럼
태양신을 창조 세계의 원동력이자 중심으로 숭배했습니다.
바로는 태양신의 아들입니다. 그의 위세도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선언에 따라 온 땅에 흑암이 임합니다. 태양신은 힘을 잃습니다.
그들이 가장 믿고 신뢰하던 으뜸가는 신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힘없는 우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양신을 비웃으십니다. 태양신의 화신이라는 바로도 망신을 당합니다.
21절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22절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23절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단순한 일식(日蝕)이나 흐린 날씨 따위가 아닙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더듬거리고 다녀야 하는 흑암입니다.
얼마나 두려웠는지 애굽 사람들은 자기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이쯤 되면 우연한 자연현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3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자연, 즉 자연 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태초에 빛을 만드신 분이 태양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온 땅에 드러내십니다.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애굽은 울며 슬퍼하며 공포에 떨지만 이스라엘은 기뻐하며 큰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흑암 재앙은 애굽 사람들의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큰 사건입니다.
가장 믿고 떠받드는 태양신마저도 힘을 잃었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엉뚱한 상상이지만 만약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거짓 신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등장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실망과 망연자실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온 세계의 교회가 패닉에 빠질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애굽 사람들의 상태가 딱 그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끝까지 거래하려고 합니다. 정말이지 지독한 사람입니다.
협상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의도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인간의 의도이기에 하나님께서 여기에 응하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24절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이전보다 나은 조건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여전히 양과 소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전에 양과 소를 다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모세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음에도
바로는 짐짓 딴전을 부립니다.
말만 나가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지, 실제로는 나가지 말라는 교활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세는 단 한발짝도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25절) 당신이 왕이어도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셔야 합니다. 라는 담대한 선포를 합니다.
28절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바로는 지금 매우 어리석은 결정을 했습니다.
좋든 싫든 모세는 바로에게 유일한 구원의 통로입니다.
만약 모세가 사라져 버리면 바로는 빌고 사정해서 재앙을 멈출 창구도 사라져버립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이 통로를 스스로 닫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흑암으로 걸어들어간 셈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은 인간이 원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강제로 집어넣으시는 곳이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 들어가는 곳일 뿐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바로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 그의 마술사들을 통해, 그의 신하들을 통해,
심지어 (앞으로 있을) 마지막 재앙 때는 그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바로는 끝내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합니다.
이제 모세까지도 강제로 쫓아내 버렸으니
바로가 재앙을 피하면서 이스라엘을 보낼 수 있는 문은 아예 닫혀버렸습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믿지 않는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 캠퍼스와 직장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려 있을 때 그 문으로 들어가 구원받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중보자로 서서 기도할 때 구원의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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