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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보이기 위함이며 (출 10:1-20)
 
[8월 31일]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보이기 위함이며 (출 10:1-20)
2026-08-30 15:54:55
손병호
조회수   17

 

 

고집은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자기 입장이나 자리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내가 바뀌면 내 입지가 흔들리거나 내 자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집은 타고난 무지입니다. (김기석)

배우지 못하니 수업은 계속됩니다. 배울 때까지, 알 때까지 가르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보여주신 재앙만 해도 보통 사람이면 이미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끝까지 귀를 막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로를 보시며 당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1절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바로가 저렇게 고집부리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문제가 생기고 시끄러워지는 자리와는 최대한 엮임을 피하려 합니다.

나하고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귀찮아지고 골치 아파지고 자칫하면 통제가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이 모든 난리의 원인은 나다. 라고 당당하게 드러내십니다.

사람으로 따진다면 참 여유만만한 호기로운 사람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계산 안에 넣고 움직이는 대단한 전략가 같은 느낌입니다.

 

전략(혹은 전술)은 파편이었던 앞과 뒤의 연결입니다. 좌와 우의 연결입니다.

원인과 결과, 혹은 결과와 결과의 연결입니다.

이 연결고리가 단단해지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질수록

내 의도를 상대방에게 관철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그것을 간단하게 승리라고 합니다.

 

최고의 전략가이신 하나님의 계획은 바로와 그의 신하들을 완강하게 함으로써

1절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입니다. 앞과 뒤의 강력한 연결입니다.

표징이라고 좀 어렵게 번역되긴 했습니다만 원어에서는 오히려 뜻이 분명해집니다.

확실하게 증명하기를 원한다. 입니다. 지금까지의 재앙의 동기였습니다.

 

2...내가 그들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대대로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드러내심은, 그분의 나타나심은 고집쟁이 바로가 주 대상이 아닙니다.

어차피 그가 끝까지 고집부리다가 파멸을 맞으리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바로도 당연히 가르쳐야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훨씬 중요합니다. 더 높은 목표입니다.

지금의 세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까지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당장 이스라엘의 해방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은 빛 바랜 추억의 사진으로만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추억할 때마다 그들이 선택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찾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에너지와 소망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물론이었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절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역사에 개입하시고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는 날입니다.

성탄절이, 사순절이, 부활절이, 감사절이, 기념주일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3절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 모세와 아론은 아예 경고 조로 나섭니다.

감히 왕 앞에서 누가 이런 경고를 날린단 말입니까?

실제로 그 뒤의 대화는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모세와 아론이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신하들은 모두 항복하자는 분위기이고,

바로만 끝까지 남아서 고집을 부리는 수준이지,

감히 왕 앞에서 이렇게 거친 표현을 하는데도 그 누구도 목을 치자는 말도 못 꺼냅니다.

 

7절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심지어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염려합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행동한 것은 처음입니다.

이전의 재앙 때는 아예 무시하는 식이었었는데 이제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기들의 상대가 아닙니다.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4절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절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엄청난 숫자의 메뚜기가 우박에서 살아남은 곡식까지 모두 먹어 치울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우박을 맞고 난 이후에

그래도 남은 것이 조금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남은 곡식이 있었다는 것도 오늘 말씀을 미루어 보았을 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다행이 순식간에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먹을 것이 없는 곳에 메뚜기가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곡식이 우박에 맞고 다 사라졌다면 무서운 메뚜기 재앙을 겪지 않았겠지요.

 

세상 사람들은 요행이다, 행운이다, 다행이다 같은 말을 합니다. 거기에 기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면 그것들은 다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요행은 너무나 허망하게 쓸려가고 사라질 것입니다. 붙들고 의지할 것이 전혀 아닙니다.

 

메뚜기 재앙이 무서운 이유는 미래가 사라진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씨앗이 남아야 다시 파종하고 내년을 기약할 텐데

메뚜기에게 그런 자비를 어떻게 바랍니까? 메뚜기는 정말 다 쓸어 먹습니다.

한 톨도 남지 않는 처참한, 정말 처절한 심판입니다.

 

지금까지는 피며, 개구리며, 파리며, 전염병이며, 오늘만 넘어가자. 식으로 왔습니다.

실제로 오늘만 버티면 되었습니다.

피가 사라지면, 개구리가 사라지면, 파리가 사라지면 다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뚜기 재앙은 메뚜기가 사라져도 끝이 아닙니다. 미래의 기근이 반드시 옵니다.

보이지 않는, 그리고 다가올, 심지어 확실히 다가올 재앙이기에 절망합니다.

오늘을 다 짓밟아버리고, 내일까지 먹어 치워버리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애굽 백성들은 절규했을 것입니다.

 

7절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바로의 신하들은 이미 겁에 질렸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경고가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반복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8절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11절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다시 회담이 열립니다. 그러나 양쪽의 입장 차만 확인할 뿐입니다. 바로의 고집 때문입니다.

- 바로는 남자들만 가라는 식으로 생색만 내려고 하고,

- 모세는 남녀노소는 물론 양과 소까지 다 데리고 가겠다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는 어떤 조건도 붙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순례에 참여해야만 하고,

예배의 경험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애초에 이스라엘의 해방은 양보나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모든 밀고 당김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때 따르는 큰 혼란과 고통입니다.

 

16...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17절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당당한 척하던 바로의 고집은 메뚜기 떼 앞에서 순식간에 사그라듭니다.

그는 거대한 메뚜기 떼 앞에서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는 애걸복걸합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이 표현은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입니다.

20절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삶으로 결단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다음 수업으로 넘어갈 차례입니다.

 

당신의 구원하심을 보이고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기 위해

세상 권세를 사정없이 흔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봅시다.

자녀인 우리에게는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가슴 뛰고 행복한 이야기입니까?

그 구원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과 나라와 민족 위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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