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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계 3:1-6)
 
[1월 19일]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계 3:1-6)
2026-01-19 00:00:00
손병호
조회수   7

 

 

요한계시록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할 수 있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잠시 요한계시록의 주제와 묵상 방향을 먼저 나누고자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따로 시간을 들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은 수많은 환상적인 표현과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며 생각해야 하는 종말론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책입니다.

진입장벽이 높은 내용이 많다고 해서 역사를 막론하고 이단의 전유물처럼 되었지만

사실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말씀도, 수수께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말씀을 주실 때 말씀이 결국 우리에게 드러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스]는 이전에는 감추어져 있던 것을

이제는 볼 수 있도록 드러내는 드러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정부 기관이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언론을 상대로 거는

엠바고, 즉 보도유예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 엠바고가 풀리면 모든 언론이 벌떼같이 보도를 할 것입니다아포칼립스는 그런 드러냄입니다.

지금은 엠바고처럼 잠시 유예되어 있으나 결국 말씀의 목적이

(이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숨기고 감추는 비밀이 아니라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듣고 구원을 받는 데 있다는 주님의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이라 하니 요한이 주님께 무슨 계시를 받았나,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물론 그 생각도 옳습니다만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제목을 좀 더 원어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요한의 드러냄> 정도로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이 말씀의 열쇠가 누구인지를 선언하고 시작합니다.

수많은 이단과 교주가 나설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요?

내가 메시야다, 내가 재림주다, 언제 종말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떠들어대지만

계시록은 오로지 이미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드러날 것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기준이고 그분이 곧 기준이십니다.

그 이야기를 요한이 드러낸다고 해서 요한의 계시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게 될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오로지 예수님을 중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책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인 주후 90년 이후는 참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교회에 대한 로마의 박해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제국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데 교회는 너무나 연약해 보이고,

수많은 교회의 지도자가 처형당하고 교인들의 믿음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1. 세상의 역사 또한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분명히 있으며

2. 악한 세력이 아무리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잠깐일 뿐이며

3. 주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심판과 재앙이 기다리고 있으며

4.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이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 바벨론 같은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교회를 공격해도

- 최후의 승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한 것처럼 교회는 승리할 것이다!

담대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왜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까미래에 일어날 전 지구적인 엄청난 사건들을 예언한 책이라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는 동네에서 동장도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왕국과 지도자들, 더 나아가 온 세상의 흥망성쇠가 대하소설처럼 나열되는 이 계시록이나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할 것이다 = 교회는 승리할 것이다 = 나도 승리하리라! 입니다.

 

계시록은 단순한 미래를 말하는 유치한 개념의 예언서 따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예언은 예언(豫言)이지만 성경의 예언은 예언(預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계시록이 미래의 벌어질 일을 언급하는 수준의 책이라면

그 예언 때문에 이익을 보는 사람과 그 예언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이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단순한 미래 예측, 부동산 예측, 돈 벌리는 방법전도유망한 투자종목 따위의 이야기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도가 충돌합니까?

세상의 미래가 달린 예언이라고 하면, 비밀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예언을 성취하려는 자와 예언을 막으려는 자의 의도끼리 충돌해서

예언과 관계없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쑥대밭이 되고 나서 예언이 이루어진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계시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천명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입니다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붙들고 계시고 마지막도 친히 수놓으실 것입니다.

 

* 과거 : 이미 있어 왔던 성경의 유구한 승리의 역사,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역사인 동시에

(그래서 어린양이 자꾸 등장하는 것입니다그분은 무력하고 순수한 어린양처럼 죽으셨으나 부활하셨고

지금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러한 과거의 승리의 역사를 요한이 굳이 다시 꺼내 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 현재 : 오늘 온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역사, 승리의 역사,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복음이 전해지고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오늘 나는 어떻습니까? 작은 교회로 부름 받은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꺾으려 하고 이기려 하고 죽이려 하고 죄짓게 만들고 낙담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나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고 함께 싸우는 믿음의 동료들과 함께,

결정적으로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았고 승리할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가 켜켜이 쌓여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 미래 : 마침내, 우리가 아는 세상이 끝나게 될 때 이 승리의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고 심판과 구원의 날이 올 것입니다.

 

계시록의 이 엄청난 이야기를 오늘로 끌고 들어올 때 이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됩니다.

어린양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고그 뒤를 따르는 교회 또한 역전의 역사, 승리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교회는 역사의 수많은 난관 즉, 로마의 박해를 이기고, 동서교회 분열의 시기를 지나서,

중세 암흑시대를 뚫고, 종교개혁의 빛을 쏘아 올리고자유주의와 인본주의의 공격을 이기고, 대부흥과 대각성운동을 거쳐

끝내 살아남아서 지금은 80억 인류 중에서 1/3이나 되는 26억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며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교회의 뒤를 따르는 나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오늘도 승리하리라소망을 가지게 하는 책이 바로 계시록입니다.

 

요한은 계시록을 시작하자마자 일곱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교회입니다.

이 일곱교회는 각자의 배경이 다 다릅니다. 자리를 잡은 지역도 다르고 그러다 보니 모이는 사람들도 달랐을 것입니다.

주님께 칭찬받는 내용도 다르고, 책망받는 내용도 다릅니다.

이 일곱교회는 오늘날 세상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의 모형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 교회, 한국 교회에게 하실 주님의 칭찬과 책망이 어떠할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도 이기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을 지키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저와 여러분에게도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소망 가지고 오늘 하루를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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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사데라는 도시의 배경을 봅시다.

사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난공불락의 도시로 여겨졌습니다.

양털 염색과 보석산업도 발달해서 큰 부를 누린 도시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사치와 향락산업이 발달했습니다얼마나 풍요롭습니까? 얼마나 생명력이 넘쳐 보입니까? 그러나

 

1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주님께서는 사데를 향해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자라고 책망하십니다.

풍요로운 도시처럼 사데교회는 겉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지만

실상은 죽어가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죽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3) 심판이 도둑같이 다가올 것이라고 무섭게 경고하십니다.

 

주님께 경고를 받고 무섭다고 떨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후회를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회개하라고 하니까 자꾸 후회를 합니다.

- 후회는 ‘ 내가 잘못했습니다.’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이지만

- 회개는 ‘ 내가 돌아서서 이렇게 하겠습니다.’ 까지 이어지는 결단입니다.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명확하게 아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 생명의 근원이시며 예수님께서 생명의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 앞에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먼저 드러내십니다.

 

1절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성과 충만함, 일하심과 임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천지창조도 7, 모세에게 만들라고 하신 성막 안의 금촛대도 일곱,

이사야 11장에서도 여호와의 영을 이야기할 때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경외 등등 일곱을 말합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여호와의 영과 여섯 속성을 합쳐 일곱이라고 셉니다.)

이처럼 일곱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일하심을 나타낼 때 자주 등장한 숫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영을 가지셨다는 사실과 사데교회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성령의 임재, 성령의 일하심과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일곱 영은 성령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죽은 교회를 다시 살리시는 성령의 완전한 생명력을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네가 죽었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과 일곱 영이신 성령을 언급하시는 것이 연결이 됩니다.

사데교회를 가리켜 죽었다고 책망하시는데 그것이 일곱 영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멋있어 보이시려고 아무 말씀이나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사데교회처럼 겉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참된 생명력성령으로부터 오는 생명력은 상실한 것이 아닙니까?

참된 생명력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명성도 아닙니다. 숫자도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에서부터 옵니다. 교회의 생명은 성령충만에 있습니다.

회복은 형식의 개선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새롭게 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로지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1절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使者)를 가리킵니다.

원어에서는 [앙겔로스] 천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천상적 존재인 천사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인간 지도자를 가리킬 때도 앙겔로스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일곱교회의 인간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겠지요.

 

영적 지도자는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해 책임을 묻는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지도자들까지도 모두 내 손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별을 가지신 주님은 지도자를 심판하기도 하시고, 회복시키기도 하시는 주권자라는 선언입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있는가 하면 별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해서 비추는 별들도 있습니다.

전자는 항성(恒星), 후자는 행성(行星)입니다. 태양은 항성이지만 지구는 행성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들린 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스스로 빛을 내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의 손에 들린 별들은 그분의 손에 들려 있을 때 빛납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의 일탈과 타락은 내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지도자들만 욕할 일이 아닙니다그들의 죄는 드러난 죄이고,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의 죄는 드러나지 않은 죄일 뿐입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앞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신다면 우리 중 떳떳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교회의 문제는 구조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용의 문제도 아닙니다.

지도자의 영적 호흡의 문제입니다. 주님께 붙어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영적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올바로 알기만 해도 우리의 살길이 있습니다.

 

4절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가 전반적으로 죽은 행실로 온전하지 못하였다고 책망받았지만

그중에서도 몇 명은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처음으로 흰옷, 순결한 옷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제사장의 세마포 옷입니다.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관을 쓰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서 있어야 하는 제사장의 옷은 누구의 옷보다도 깨끗하고 희어야 합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실 때 (9:3)

세상에서 빨래하는 사람이 그렇게 희게 빨래할 수 없었다고 마가가 기록합니다.

계시록에서도 흰색은 승리한 자들의 색입니다.

순교자들은 흰 두루마기를 받습니다. (6:11) 구원받은 큰 무리가 흰옷을 입습니다. (7:9)

 

- 인간인 제사장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성결합니까?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해주셔야 합니다. 교리에서는 이 부분을 칭의(稱義)라고 합니다.

- 예수님은 그분 자체가 의()이십니다. 칭의도 필요 없습니다.

- 계시록에서 언급하는 순교자와 큰 무리는 구원의 무리입니다.

 

그래서 흰옷은 구원에 이르는 (성도의) 옳은 행실을 상징합니다.

대다수가 그릇된 행실로 더럽혀질 때도 말씀을 따라 행실을 깨끗하게 하며 믿음을 지킨 이들은 주님께까지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이 누리는 복을 5절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5절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우리가 사데교회의 흰옷 입은 자들처럼 순전한 믿음과 온전한 행실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상급을 우리도 받아 누리시기를 다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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